IT/바이오

“정밀의료로 소아암 치료 지원”…재단, 기부금 기반 데이터 확대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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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진료에 정밀의료와 첨단 항암 신약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치료비 부담을 완화할 민간 재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유전체 분석과 표적 치료제, 면역항암제 등 최신 IT·바이오 기술이 생존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고가 치료비와 장기 추적 관리 비용을 키우고 있어서다. 소아암 전문 비영리기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이러한 산업 환경 변화를 반영해 기부금을 단순 생계비가 아니라 치료비와 데이터 기반 맞춤 치료 지원에 집중 투입하는 방향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밀의료 확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료 접근성 격차를 메워주는 민간 펀드 역할이 향후 소아암 치료 생태계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은 1991년 설립 이후 소아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항암 치료비, 조혈모세포 이식비, 장기 입원에 따른 경제적 손실 보전 등을 지원해 왔다. 최근에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을 기반으로 한 유전체 검사, 표적 항암제, 정밀 방사선 치료 등 첨단 의료기술이 국내 대학병원과 어린이병원에 확산되면서 지원 범위를 데이터 기반 맞춤 치료 영역으로 넓히고 있다. 재단이 조성하는 기금과 기부금은 병원 내 소아암센터가 제시하는 치료 계획 중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 임상연구 참여를 위한 선제적 검사 비용 등에 우선 투입되는 방식이다.

정밀의료는 환자 개개인의 유전자, 임상 정보, 생활습관 데이터 등을 통합 분석해 최적의 치료 전략을 설계하는 의료 패러다임을 가리킨다. 소아암 분야에서는 종양 조직과 말초혈액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과 RNA 발현 분석을 통해 재발 위험도, 특정 약물 반응성, 고위험군 여부를 조기에 분류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기존에는 병리조직 검사와 영상의학 소견에 주로 의존했다면, 최근에는 한 명의 소아암 환자에게서 수천만 개의 유전 정보를 읽어내 재배열과 돌연변이 패턴을 찾는 방식으로 치료 효율을 높이는 추세다.

 

특히 국내 대학병원 소아암센터는 암 패널 검사와 전장유전체 분석을 결합해, 같은 진단명이라도 분자생물학적 특성이 다른 아형을 세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군에서 특정 유전자 융합이나 암 유발 변이가 확인되면, 해당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나 분자표적제 투여를 1차 또는 2차 치료 라인에 조기에 배치하는 식이다. 정밀의료 도입으로 같은 약을 일괄 투여하던 과거 방식에 비해 약효가 낮은 환자군을 사전에 걸러내고, 불필요한 독성과 입원 기간을 줄일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유전체 분석과 표적치료제 사용이 늘어날수록 소아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은 함께 증가하고 있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반 암 패널 검사는 일부 급여화가 진행됐지만, 병원에 따라 비급여 항목과 추가 분석 비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면역항암제, 세포치료제, 희귀질환 의약품은 건강보험 및 산정특례 제도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실질 비용은 수천만 원 단위까지 늘어날 수 있다. 재단이 기부금을 치료비에 집중 배분하는 이유도 정밀의료 도입이 가져온 임상적 이득이 소득 수준에 따라 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외에서는 정밀의료 기반 소아암 치료 지원 구조가 이미 국가 전략 차원에서 설계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소아암 게놈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환아의 유전체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축적하고 대학병원과 연구소가 이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시험 설계를 고도화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영국 보건당국 역시 국가 유전체 프로젝트를 통해 소아암 환자에게 전장유전체 분석을 제공하고, 분석 비용과 데이터 인프라 예산을 국가 재정에서 부담하는 방식으로 접근성 격차를 줄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일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정밀의료 플랫폼이 구축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민간 재단과 기업 기부가 사실상 보완재 역할을 맡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는 소아암 정밀의료에 필요한 데이터 활용 규제와 보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가 남아 있다. 유전체 데이터는 고도의 민감정보로 분류돼 엄격한 비식별화와 저장·이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수의 소아암 환자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야 신약 타깃 발굴과 바이오마커 검증이 가능하지만, 병원 간 데이터 연계가 법적·기술적 제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또한 희귀 변이와 소수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고가 항암제의 보험 급여 기준을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확립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소아암 정밀의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병원 중심 데이터 인프라와 민간 재단, 제약사가 연계된 삼각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 본다. 병원은 환자의 임상·유전체 데이터를 품질 관리해 축적하고, 재단은 기금과 기부금을 통해 고가 검사를 받을 수 없는 환자를 지원하며, 제약사는 이를 바탕으로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 개발을 가속하는 구조다. 이러한 모델이 작동하면 환자에게는 치료 기회가 넓어지고, 제약사에는 실제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기반이 넓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의료 데이터 관련 연구자는 소아암 정밀의료 인프라에 대해 소아암은 발병 환자 수가 적고, 개별 사례의 임상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한 명의 데이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환자 의료비 지원과 동시에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투입되는 공공·민간 재원이 늘어날수록 장기적으로 신약과 맞춤치료 개발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계는 정밀의료와 디지털 기술이 소아암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리고 민간과 공공의 재원이 어떻게 균형 있게 투입될지 주시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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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소아암정밀의료#유전체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