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 약가 40퍼센트로 인하”…제약업계 R&D·고용 위축 우려 확산
제네릭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투자 축소와 인력 감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제네릭 약가 기준을 기존 상한가의 53.55퍼센트에서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출 경우, 국내 주요 제약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면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고용에까지 연쇄 충격이 파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재정 절감을 위한 약가 인하가 장기적으로는 신약 개발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국내 제조시설을 보유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회원사 184개사 가운데 59개사가 참여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해당 기업들의 총 매출 규모는 20조1238억원이며, 이 중 혁신형 제약 인증기업이 21개사, 미인증 기업이 38개사다. 설문은 2012년 제도 개편 이후 약가 조정 없이 최초 산정가 53.55퍼센트 수준을 유지해온 기등재 제네릭 의약품을 40퍼센트대로 인하하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피해 규모를 추산했다.

조사에 따르면 59개사 기준 연간 예상 매출손실액은 총 1조2144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당 평균 매출 감소액은 233억원 수준이다. 매출 감소율을 보면 중소기업이 10.5퍼센트로 가장 높고, 중견기업이 6.8퍼센트, 대형기업이 4.5퍼센트로 나타났다. 제네릭 약가 인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 수는 총 4866개이며, 이 중 중견기업 소속 품목이 3653개로 75.1퍼센트를 차지해 가장 큰 비중을 보였다. 대형기업은 793개, 중소기업은 420개 품목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영업이익 감소 폭은 매출보다 훨씬 크다는 경고가 나왔다. CEO들은 평균 51.8퍼센트의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응답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견기업의 예상 영업이익 감소율이 55.6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대형기업은 54.5퍼센트, 중소기업은 23.9퍼센트로 집계됐다. 제네릭 중심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일수록 약가 인하가 수익성에 직접 타격을 주는 구조여서 생산 중단이나 품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투자 심리 위축은 연구개발과 설비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은 연구개발비를 2024년 1조6880억원에서 2026년까지 4270억원 줄여 평균 25.3퍼센트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기업당 평균 축소액은 366억원이다. 중견기업의 연구개발비 축소율이 26.5퍼센트로 가장 컸고, 중소기업은 24.3퍼센트, 대형기업은 16.5퍼센트 순이다. 혁신형 제약 인증 여부에 따라서는 인증기업 21.6퍼센트, 미인증 기업 26.9퍼센트로, 상대적으로 재무 여력이 취약한 미인증 기업에서 투자 위축이 더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설비투자는 연구개발보다 더 급격한 감소가 예상된다. 응답 기업들은 설비투자 규모를 2024년 6345억원에서 2026년까지 2030억원 줄여 평균 32퍼센트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 설비투자 감소율은 52.1퍼센트로 절반 이상을 줄이겠다는 응답이 나왔고, 중견기업 28.7퍼센트, 대형기업 10.3퍼센트 수준이었다. 제네릭 의약품의 가격이 내려가면 생산 마진이 줄어 신규 생산라인 증설이나 품질 관리 설비 고도화에 대한 투자 유인이 약해지기 때문에, 공장 자동화나 고위험 공정 개선 등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고용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예고된다. 설문 대상 59개사의 현 종사자 수는 3만9170명인데, CEO들은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1691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전체 인원의 9.1퍼센트 수준이다. 규모별로는 중견기업에서 1326명의 감원이 예상돼 가장 많았고, 대형기업 285명, 중소기업 80명 순이었다. 평균 인력 감축률은 중견기업 12.3퍼센트, 대형기업 6.9퍼센트, 중소기업 6퍼센트로 나타나, 국내 제약산업의 허리를 구성하는 중견기업의 고용 안정성이 특히 위협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업 전략 차원에서도 제네릭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응답 기업의 74.6퍼센트에 해당하는 44개사는 약가 인하가 시행될 경우 제네릭 의약품 출시를 전면 또는 일부 취소하거나, 출시 계획을 변경·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중견기업이 31개사로 다수를 차지했고, 중소기업 8개사, 대형기업 5개사가 뒤를 이었다. 제네릭은 대규모 임상 없이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출시할 수 있어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 역할을 해왔는데, 가격 인하가 수익성을 잠식하면 신제품 개발 자체가 축소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약가제도 개편 시 가장 우려되는 항목으로는 채산성 저하에 따른 생산중단이 52개사로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연구개발 투자 감소를 꼽은 기업도 52개사에 달했고,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 감소가 42개사, 원가 절감을 위한 저가 원료 대체가 20개사로 조사됐다. 비용 압박이 심해질수록 품질보다 가격이 우선되는 조달 구조가 강화돼, 장기적으로는 공급 안전성과 품질 관리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정부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국가 전략과 충돌하지 않도록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고용까지 동시에 위축될 경우 국내 기업의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이 줄어들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술 협력과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제네릭 약가 인하가 단기 재정 절감 효과는 가져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혁신 투자 기반을 약화시켜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 창출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약가 제도 개편이 실제로 어떤 수준과 방식으로 확정될지, 그리고 정책 설계 과정에서 연구개발 인센티브와 공급 안전성 확보 장치가 얼마나 반영될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