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분쟁 억제가 최우선”…트럼프 2기 안보전략, 韓에 인태전략 역할 확대 압박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을 둘러싸고 인도·태평양 전략 재편과 한국의 역할 확대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대만해협 억제에 선택과 집중한 미국 전략이 한반도 안보와 미중 전략경쟁 구도 속에서 어떤 부담과 기회를 동시에 안길지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5일 현지시간 새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특히 대만 침공을 차단하는 데 전략의 무게중심을 뒀다. 문건은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서반구 안정화를 통해 미국 국경안보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업으로 규정하면서, 이른바 트럼프식 먼로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아시아 파트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함으로써 대만 분쟁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명시했다. 이어 “우리는 제1 도련선 어디에서든 침략을 저지할 수 있는 군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히며 오키나와에서 대만, 필리핀, 믈라카해협으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 방어를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문건은 미국 단독 부담을 분명히 경계했다.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은 이를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동맹은 국방지출을 늘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방어를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제1도련선 내 동맹국 및 파트너국가들에게 미국의 항구 및 기타 시설 접근권 확대, 자체 방위 지출 증액, 그리고 무엇보다 침공 억제를 위한 역량 강화에 투자하도록 촉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제1도련선 안에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만 침공 억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방위 투자 확대와 군사 역량 강화, 역할 증대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대만 유사시 일본, 한국 등 역내 동맹국의 지원과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전략 구상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주목되는 부분은 인도·태평양 안보 위협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온 북한 관련 내용이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아예 삭제됐다는 점이다. 과거 문건에 포함됐던 북한 비핵화, 한반도 비핵화 목표 문구도 사라졌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일에 제공하는 핵우산 공약은 유지하되, 대북 방어의 실질적인 책임은 한국에 상당 부분 전가하고 미국은 중국 견제와 대만해협 억제에 집중하려는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가안보전략은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문건은 대만의 반도체 생산 역량과 함께 대만이 제2 도련선으로 불리는 일본 이즈반도와 괌, 사이판,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라인에 대한 직접적 접근을 제공하는 점, 그리고 동북아와 동남아를 2개 전구로 구분 짓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대만 중시 기조의 배경으로 들었다. 대만을 둘러싼 군사·경제·지정학적 요인이 맞물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축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문건은 대만 유사시를 상정한 동맹국 역할에 대해서도 구체적 요구를 담았다.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의 비용 분담 증가를 강력히 요구함에 따라, 우리는 이들 국가에 적국을 억제하고 제1도련선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역량에 초점을 맞춰 국방 지출을 늘릴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을 표적으로 한 동맹 방위비 인상 요구와 함께, 그 재원이 대중국 억제 역량 확충에 투입돼야 한다는 점을 못 박은 셈이다.
이 같은 대만 중시 기조는 한국 안보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으로 대만을 둘러싼 긴장 고조가 미군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묶어두는 효과를 내면서, 한반도 방위의 기반인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새 국가안보전략은 “서태평양에서 우리의 군사적 주둔을 강화할 것”이라고 명시하며 한국과 일본 등 인도·태평양 동맹국에서의 미군 주둔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때문에 2만8천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병력 규모가 단기간에 축소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커졌다. 다만 문건이 감축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차단하지 않은 만큼, 향후 방위비 분담 협상과 연동한 주둔 수준 조정 논의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공존한다.
또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 강화를 독려하는 흐름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포함해 한국의 독자적 방위 역량 강화에 기여할 여지도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 입장에선 이를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대북 억지력 증강과 국방 자율성 확대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국가안보전략이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위한 한국의 역할 확대를 분명히 시사한 만큼,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 새로운 딜레마가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지하는 입장을 내비친 상황에서,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과 첨단 전력을 통해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려 하고 미국은 강화된 한국 군사역량을 대중국 억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구상을 가질 수 있어 양측의 인식 차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변수도 부담이다. 중국이 앞으로 한국에서 추진될 각종 군사력 강화 조치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압박해 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드 배치 갈등을 거친 경험이 있는 만큼, 한국으로선 한미동맹 강화와 대중관계 안정 사이에서 또 한 차례 고강도 줄타기를 요구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 정부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큰 판을 직시하면서 한미동맹을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국 견제 역할, 한중관계 관리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특히 미중이 무역 전선에서 최근 휴전에 가까운 흐름을 보이고 내년 최대 4차례의 정상회담을 검토하는 등 갈등과 경쟁 구도를 잠시 숨 고르기하는 양상을 보이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미·대중 정책을 포괄하는 중장기 안보 전략 수립 필요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 관련 기술이 전면적으로 빠진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국 외교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집중력을 유지시키고, 동맹 차원의 대북정책 공조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대체적 관측이지만, 북한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 비핵화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해석이 확산될 경우 대북 억지와 관리 중심의 접근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대미 조율과 외교적 설득력이 한층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앞으로 한미동맹의 새로운 역할 분담 구조와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국가안보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다. 특히 국회는 향후 인도·태평양 전략 관련 현안 보고와 청문 절차 등을 통해 정부의 대응 방안을 점검하고, 다음 회기에서 안보·외교 정책 방향을 둘러싼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