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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양자상태로 본다"…UNIST, 현대물리 통합 새 틀 제시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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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시공간 해석 차이를 메우려는 이론 연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상대성이론은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4차원 시공간으로 다뤄온 반면, 양자역학은 공간에 대해서만 양자상태를 정의하고 시간은 변화의 과정, 즉 채널로 남겨둬 두 이론 간 언어가 달랐다. 국내 연구진이 시간에 따른 양자 동역학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양자상태로 다루는 새로운 수학적 틀을 제시해 양자정보과학은 물론 양자중력 연구까지 파급력이 주목된다. 업계와 학계는 현대물리 통합을 향한 개념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울산과학기술원 UNIST는 물리학과 이석형 교수가 시간 위에서 전개되는 양자역학적 동역학 전체를 하나의 다자 양자상태로 표현하는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했다고 22일 밝혔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는 물리학 분야에서 인용과 영향력이 특히 높은 저널로, 1995년부터 2017년까지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 가운데 약 28.5퍼센트가 해당 저널에 실린 논문을 토대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의 핵심 개념은 시간 위의 다자 양자상태, 영어로 multipartite quantum states over time이다. 기존 양자역학에서는 서로 떨어진 공간상의 여러 계를 하나의 다자 양자상태로 기술해 왔지만,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양자과정은 별도의 수학 구조를 사용해 과정, 채널로 구분했다. 이석형 교수는 여러 시점에서의 양자계들을 모두 하나의 초고차원 양자상태로 묶어 기술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간적으로 떨어진 계와 시간적으로 떨어진 계를 동일한 수학 구조 안에서 다룰 수 있도록 했다.

 

이 접근은 공간상의 양자 상태와 시간상의 양자 과정이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이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둘을 하나의 통일된 수학 언어로 정식화하려는 시도다. 연구진은 물리적으로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직관적 조건만을 설정하고, 이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시간 양자상태의 수학적 구조가 유일하게 결정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복잡한 보조 가정을 계속 덧붙이는 대신, 최소한의 물리 가정으로부터 가능한 구조를 하나로 압축한 셈이다.

 

이 결과는 제안된 시간 위의 다자 양자상태가 주어진 물리 조건 하에서 유일한 정답에 해당함을 의미한다. 양자정보이론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 따른 여러 연산과 상호작용을 단일 상태 벡터로 환원해 표현하는 새로운 표준형을 제공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존 이론에서 시간에 대한 비가역적 과정이나 측정이 별도 취급돼 왔던 점을 고려하면, 시공간 전체를 상태 중심으로 바라보는 해석이 한층 수학적으로 정교해졌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연구진은 또 새롭게 정립된 시간 위의 다자 양자상태가 커크우드 디랙 준확률분포와 일대일로 대응함을 증명했다. 커크우드 디랙 준확률은 양자계에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는 물리량 사이의 상관을 표현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으로, 음수가 될 수 있는 확률과 유사한 수치다. 이번 대응 관계 증명으로 시간 방향으로 전개되는 양자 상태를 이러한 준확률분포로 재해석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최근 개발된 퀀텀 스냅샷 등 고정밀 양자 측정 기술을 활용해 시간 양자상태 자체를 실험적으로 관찰하거나 추정할 수 있는 길을 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장과 산업 측면에서 보면, 시간에 따른 양자상태의 일관된 수학 틀은 양자정보과학과 양자계측 분야에서 설계 효율을 높일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에서 연속된 논리게이트의 열을 단일 상태로 치환해 분석할 수 있다면, 오류 상관 구조를 더 명확히 파악해 오류정정 코드 설계나 회로 최적화에 도움이 된다. 또한 양자센서에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신호를 포착하는 과정을 시간 양자상태로 통합 기술하면, 잡음 억제와 민감도 향상 알고리즘 개발에도 새로운 수학적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연구 동향과 비교하면, 시공간을 통합적으로 다루려는 양자정보학적 접근은 해외에서도 꾸준히 시도돼 왔다. 양자회로를 상태로 치환하는 초회로, 프로세스 행렬, 시공간적 양자장 이론의 정보이론적 재정식화 등 다양한 틀이 제안됐지만, 시간 위의 다자 상태를 유일한 수학 구조로 고정한 연구는 드물다. 특히 커크우드 디랙 준확률과의 엄밀한 일대일 대응을 증명해 실험적 접근경로까지 함께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제도 측면에서는 양자중력이나 차세대 양자정보 인프라 같은 장기 과제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와 같은 기초 이론 연구의 전략적 지원 필요성이 부각된다. 초전도 양자칩, 양자통신망 등 하드웨어 중심 투자가 이어지는 한편, 이를 관통하는 정보이론적 기반이 부족하면 기술 확장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번 연구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등 국내 연구지원기관의 후원을 받아 수행된 점은 양자정보 인프라와 이론 연구를 연계하려는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석형 교수는 양자정보과학과 양자계측, 나아가 양자중력처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려는 궁극의 통일이론 연구에서도 이번 이론이 새로운 도구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공간 전역을 상태 중심으로 바라보는 이 틀이 향후 양자장 이론의 재정식화나 양자코스모로지와 같은 분야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연구에는 중국 하이난대학교 수리통계학과 제임스 풀우드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는 UNIST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산업계와 학계는 시간 위의 양자상태 개념이 실제 양자정보 시스템 설계와 현대물리 통합 논의에까지 확산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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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형교수#unist#양자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