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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한랭질환도 미리 본다"…질병관리청, 저체온증 위험 예측 강화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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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한파가 거세지면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한랭질환 예측 체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는 저체온증과 동상은 노년층에서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기 쉬워, 실시간 기상 데이터와 건강 데이터를 결합한 디지털 감시 시스템이 새로운 공중보건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다. 업계와 의료계는 한랭질환 예측 인공지능이 고위험군을 사전 식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질병관리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발생한 한랭질환자는 66명으로, 이 가운데 93.9퍼센트가 저체온증이었고 66.7퍼센트는 65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전남에서는 80대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숨져 올겨울 첫 사망 사례가 보고됐다. 방역당국은 매년 겨울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만큼, 기온과 바람, 체감온도, 시간대, 연령과 기저질환 정보를 연계한 예측 시스템을 공중보건 정책에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저체온증은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떨림,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 장애, 의식 혼미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심한 경우 심장과 호흡기 기능이 저하되고 혈압이 떨어지며 쇼크와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상은 차가운 환경에 의해 손과 발, 귀, 코 같은 말단 부위 피부와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초기에는 붉어졌다가 창백해지며 통증과 얼얼함, 화끈거리는 작열감이 동반된다. 수포가 생길 수 있고, 계속 추위에 노출되면 조직이 검게 변하며 괴사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이번 겨울처럼 짧은 기간에 기온이 급강하하고 강한 바람이 더해질 때에는, 개인의 주관적 추위 감각만으로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 이 지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상 정보와 생활 패턴, 연령, 기저질환, 복약 정보 등을 분석하는 인공지능 기반 한랭질환 위험 지수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전에 축적된 환자 데이터에서 온도, 풍속, 노출 시간과 저체온증 발생 간 상관관계를 학습한 뒤, 고위험군에게 맞춤형 경보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예측 기술은 기존 감시 방식이 주로 환자 발생 이후 통계에 의존했다는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실시간 기상 데이터와 이동통신사 위치 정보,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체온 및 심박수 정보를 연동하면, 고령층이 새벽 시간대 야외에 장시간 머무르는 상황을 포착해 미리 경고를 보낼 수 있다. 특히 심뇌혈관질환이나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은 혈관 반응이 떨어져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해지므로, 같은 환경에서도 저체온증 위험이 더 높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상 빅데이터와 의료 데이터를 연계한 위험 지도 구축이 진행 중이다. 북미와 유럽 일부 도시는 한파 경보 발생 시, 인공지능이 고령층 거주 밀집 지역을 우선 선별해 난방비 지원과 보건 인력을 우선 배치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폭염 질환 감시 체계를 디지털화하는 시범 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같은 플랫폼을 겨울철 한랭질환으로 확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예방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본 수칙 준수가 핵심이다. 외출 시에는 내복을 포함해 여러 겹으로 옷을 겹쳐 입고 장갑, 목도리, 마스크 등 방한용품을 착용해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손과 발, 귀 같은 말초 부위를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며, 옷과 양말, 신발이 젖었을 때에는 가능한 한 빨리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인공지능 예측 경보가 발령되더라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어 생활 습관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측면에서는 스마트워치와 체온 패치 등 웨어러블 의료기기가 예방의 ‘전선’이 될 수 있다. 심박수와 피부 온도, 활동량을 측정해, 평소와 다른 저체온 패턴이 포착되면 사용자에게 알림을 주고 보호자나 응급의료 시스템과 연동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고령층의 경우 스스로 추위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잦기 때문에, 자동화된 경고 시스템이 상당한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개인정보와 위치 정보, 건강 정보를 결합해 예측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데이터 보호와 활용 범위를 두고 제도적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한랭질환 위험도처럼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영역에서도 이용자 동의, 데이터 최소 수집, 익명화 원칙 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규제기관은 인공지능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와 공중보건 예측 모델 간 경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장의 응급의료 전문가는 디지털 기술과 별개로, 의심 상황에서의 초기 대응이 여전히 생사를 가르는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박종학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저체온증이나 동상이 의심될 경우 즉시 따뜻한 환경으로 이동시키고 담요나 의류로 감싸 체온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동상이 의심되는 부위는 38도에서 42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담가야 하며, 매우 뜨거운 물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곧바로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한랭질환 예방 전략은 기온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디지털 감시 체계와, 고위험군에 대한 대면 보건 서비스 강화가 함께 가야 효과를 낼 수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헬스 기술이 한랭질환 예측과 조기 대응에 어느 수준까지 기여할지 주목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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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저체온증#한랭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