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도 질환이다”…요가 양말 사건이 던진 디지털 치료 숙제
고가의 요가 양말을 수백만 원어치 구입한 일화가 온라인에서 회자되면서, 단순한 씀씀이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정신건강 이슈일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충동구매와 과소비를 우울증, 불안장애와 연관된 행동 패턴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실제 생활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치료 기술의 역할도 주목받는 흐름이다. 정신과 진료실 밖에서 금융·소비 데이터를 활용해 조기 경보를 띄우고, 앱과 웨어러블을 통해 행동 교정을 돕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운 과제로 이 문제를 받아드는 분위기다.
최근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0대 남성이 “아내가 한 켤레에 최고 9만 원인 요가 양말을 200만 원어치 샀다”며 가계 부담을 털어놓은 사연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아내가 과거 우울증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고, 최근 일주일 새 900만 원가량을 지출했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연예인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의 양말을 여러 켤레 구입했으며, 남편 카드와 연결된 계좌의 한도를 채운 뒤 처가 지원으로 채무를 메워온 패턴이 반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누리꾼들은 “부부상담과 전문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며 소비 습관을 정신건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신의학계에서는 반복적인 고액 충동구매를 단순한 ‘낭비벽’이 아니라 중독 스펙트럼에 놓인 행동 장애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레스나 우울감이 심해질 때 일시적으로 쾌감을 주는 행동에 몰입하고, 이후 죄책감과 우울이 심해지면서 다시 소비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대표적인 패턴이다. 특히 신체 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운동복, 헬스용품 등에 과도하게 지출하는 경우, 외형을 통해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는 이런 행동 패턴을 앱과 데이터 분석으로 포착하는 방식을 고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제공되는 인지행동치료는 사용자의 기분, 지출, 수면, 활동량을 하루 단위로 기록하게 하고, 특정 시점에 소비 욕구가 치솟는 전조 신호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평소보다 늦게까지 깨어 있고, 카드 결제 알림이 집중되며, 위치 데이터가 쇼핑몰·상권에 반복적으로 찍히면 과소비 위험 레벨을 높게 판단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위험 구간’에 들어가기 전에 알림을 받고, 미리 설정해 둔 대체 행동인 산책, 심호흡, 지인에게 연락하기 등으로 행동을 전환하도록 유도받는다.
이 과정에서 금융 데이터의 역할이 확대되는 흐름도 감지된다. 일부 핀테크 기업과 정신건강 플랫폼은 사용자의 동의를 전제로 카드·계좌 거래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특정 범주 지출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할 경우 앱 내 상담이나 챗봇을 자동 추천하는 기능을 시험 중이다. 예를 들어 패션·온라인 쇼핑 카테고리 결제가 한 주 만에 평소의 두세 배로 늘어나면, “최근 스트레스나 기분 변동이 있었는지”를 묻는 자가 진단 문항을 띄우고, 필요 시 비대면 정신건강 상담으로 연결하는 식이다. 실제 의료 데이터는 아니지만, 행동 데이터 기반의 조기 경보 체계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국내외에서는 정신질환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가 실제 의료 시스템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성인 불면증, 알코올 사용 장애 등을 겨냥한 디지털 치료 소프트웨어가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고 임상 근거를 축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울·불안, 약물 중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앱 기반 인지행동치료가 처방형 디지털 치료제로 승인돼, 기존 약물 치료와 병행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직 충동구매만을 대상으로 한 허가 디지털 치료제는 드물지만, 도박 중독, 게임 과몰입 등 보상 체계 이상으로 인한 행동 장애 치료 모델이 축적되면서 응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규제 측면에서는 데이터 활용과 인증 기준이 관건이다. 소비·결제 기록은 금융정보이자 민감한 사생활 데이터인 만큼, 의료 목적 활용에 대해선 강한 동의 절차와 데이터 비식별화 기준이 요구된다. 식품의약품 규제 당국은 정신건강 관련 앱을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볼지, 단순 웰니스 도구로 분류할지에 따라 심사 강도를 달리 적용하고 있다. 인지행동치료 알고리즘이 명시된 제품은 효과와 안전성을 임상시험으로 입증해야 하는 반면, 단순 소비 알림·가계부 기능은 일반 건강관리 서비스로 남아 있는 구조다.
해외에서는 금융당국과 보건당국이 협업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과소비·도박 과몰입 문제가 사회적 부담으로 떠오르면서, 금융기관이 취약 소비자를 조기에 식별하고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지침을 시범 운영 중이다. 이를 위해 AI가 카드 사용 패턴을 분석해 고위험 군을 추려내지만, 어디까지를 ‘개인의 선택’으로 보고 어디서부터 ‘의료적介入 대상’으로 볼지에 대한 윤리 논쟁도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요가 양말 등 과소비 논란이 단발성 해프닝으로 소비되기보다, 행동 장애와 정신질환의 경계, 그리고 이를 다루는 디지털 치료 기술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 정신건강 디지털 치료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출 내역과 기분 기록, 활동량 데이터를 함께 보면, 환자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이 수치로 드러날 때가 많다”며 “다만 데이터에 앞서 환자와 가족이 문제를 ‘의지 부족’이 아니라 ‘치료와 조정이 필요한 상태’로 인식하는 것이 출발점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과소비를 포함한 행동 패턴 교정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과 금융·플랫폼 환경에 어떻게 안착할지, 그리고 규제와 윤리 논의가 어떤 속도로 따라붙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