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과 무관하게 독자 판단”…해싯, 연준 통화정책 독립성 강조에 금리 인하 여지 시사
현지시각 기준 9일, 미국(USA) 워싱턴에서 열린 월스트리트저널 주최 행사에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과 거리를 둔 발언을 내놓았다. 연준 독립성을 강조하면서도 현 경제 상황에서 금리 인하 여지가 크다고 언급해, 미국 통화정책 방향과 글로벌 금융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해싯 위원장은 행사에서 차기 연준 의장으로 임명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를 통해 금리 인하를 지시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그냥 옳은 일을 하면 된다”고 답하며 정치적 요구보다 경제 지표에 근거한 판단을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가상 사례를 들어 통화정책 원칙도 설명했다. 해싯 위원장은 “만일 인플레이션이 2.5%에서 4%로 올랐다고 해보자”며 “그러면 금리를 내릴 수 없다”고 말해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크게 상회할 경우 완화 기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자신의 결정 기준에 대해 “나의 판단과 정파적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약속에 의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언급했다.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의 판단을 신뢰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 관계가 있더라도 금리 결정에서는 정치적 고려보다 경제 데이터가 우선이라는 점을 거듭 부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과거 1기 집권 당시 핵심 경제 자문이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준 의장으로서는 독립성을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시장 관심이 쏠린 금리 인하 폭과 관련해서는 보다 완화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해싯 위원장은 “만일 데이터가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고 시사한다면 지금처럼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준이 10일 0.25%포인트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보다 큰 폭의 인하가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해 향후 통화 완화 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 같은 발언은 경기 둔화 우려와 금융 여건을 고려할 때 연준이 보다 과감한 완화 조치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성장 둔화 우려 사이에서 정책 기조를 조정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미국 경제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일부 지표에서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글로벌 경기 역시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물가 상승세가 진정되는 흐름을 확인하는 동시에, 과도한 긴축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 금리 인하로 전환할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노골적인 금리 인하 요구는 연준 독립성 논란을 자극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차기 연준 의장 후보자로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지지하는 인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백악관과 연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 관계를 키우는 동시에, 차기 의장 인선이 곧 통화 완화 가속을 의미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차기 연준 의장을 내정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내가 연준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내게 가장 적합한 자리가 NEC인지 아니면 연준인지를 판단하는 문제”라고 언급해, 자신의 거취가 아직 최종 결정 단계에 이르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영국(UK)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싯 위원장을 비롯해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미셸 보먼 연준 이사,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채권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4명을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군으로 지목했다. 이들 대부분이 시장 친화적 성향을 보이며 통화정책 경험 또는 금융시장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차기 의장 인선이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와 폭, 그리고 자산 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 도구 활용 방향에도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해싯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차기 연준 수장이 정치적 압력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을지, 그리고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 변화는 유럽(EU), 일본(Japan), 신흥국 금융·외환시장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주는 만큼,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도 연준 의장 인선과 향후 발언을 면밀히 주시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선 방향과 해싯 위원장의 독립성 강조가 맞물리면서, 향후 연준이 정치와 시장 기대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차기 연준 의장 인선과 함께 이번 발언이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