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감사로 고통 드렸다"…김인회, 윤석열 정부 감사 사과 파장

송우진 기자
입력

정치감사 논란과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임 윤석열 정부 시기 추진된 감사가 정치적 목적을 띠었다는 감사원 내부 진단이 공식화되면서, 책임 공방과 제도 개편 논의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김인회 감사원장 권한대행은 3일 감사원 제3별관에서 감사원 운영쇄신 태스크포스 활동 결과를 발표하며 전임 정부 당시 소위 정치감사, 표적감사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브리핑에서 "운영 쇄신 TF 활동 결과 정치감사와 무리한 감사로 인해 많은 분께 고통을 드린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한 뒤 "이로 인해 고통을 받은 분들에게 감사원을 대표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김 권한대행은 특히 월성원전 감사와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대상자들을 콕 집어 언급했다. 그는 "월성원전 감사로 오랜 수사와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산업통상자원부 직원들과 권익위 감사로 검찰 수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전현희 전 위원장께는 더욱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발언 직후 그는 단상 옆으로 이동해 허리를 깊이 숙이며 구두 사과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문제의 성격에 대해서도 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김 권한대행은 일부 감사 사례를 겨냥해 "지휘부는 인사권과 감찰권을 무기로 직원들이 정치감사, 무리한 감사를 하도록 이끌었다"며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행위이고 감사원으로서 하면 안 되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내부 권한 구조가 감사를 정치적 도구로 전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취지다.

 

이번 진단의 근거가 된 감사원 운영 쇄신 태스크포스는 지난해 9월 설치됐다. TF는 출범 이후 전임 정부 시기 논란이 컸던 권익위 감사, 서해 공무원 피격 관련 감사, 월성 원전 감사 등 7개 주요 감사의 경위와 절차, 후속 조치 전반을 다시 들여다봤다. 감사 대상 선택과 착수 과정, 감사위원 의결 절차, 수사기관 통보와 법원 제출 자료의 적정성 등이 점검 대상이었다.

 

TF는 재검토 과정에서 위법 또는 부당 소지가 있다고 본 사안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TF는 지난달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 등을 관련 혐의로 수사기관에 넘겼다. 감사 사안을 둘러싼 정치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 문제로까지 쟁점이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감사원 설명에 따르면 2023년 국민권익위원회 감사는 시작 단계부터 처리, 시행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틀어 위법, 부당 행위가 확인됐다. 특히 감사 착수의 정당성, 권익위 독립성 침해 여부, 감사 결과의 의결 절차 등에서 중대한 흠결이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월성 원전 감사의 경우에는 수사 참고 자료 송부와 소송 의견서 제출 과정에서 감사원이 중립성을 벗어나 특정 입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료를 정리, 제공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윤재 운영 쇄신 TF 단장은 권익위 감사의 절차적 하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감사위원 의견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처가 어떻게 보면 임의로 시행한 사안이라 의결이 정확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재심의 요청이 들어온 상황이어서 그 부분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감사위원회 의결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단계에서 사무처가 먼저 움직였다는 설명으로, 감사원 의사결정 구조의 왜곡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TF 결과를 둘러싸고 감사원 내부 갈등은 이미 표면화된 상태다. 유병호 감사위원은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내고 "TF의 구성, 활동 절차와 방법, 내용과 결과 모두 법과 규정의 테두리를 심각하게 일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만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직 내 불법행위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예고하며 정면 반박했다. 전임 지휘부에 대한 고발이 부당하고, TF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띤 내부 청산 작업이라는 시각도 드러낸 셈이다.

 

정치권에선 감사원의 자기 반성과 책임 공방이 맞물리며 여야 간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권 일각에선 전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고, 야권은 그간 제기해 온 정치감사 주장에 힘을 실어 향후 국정조사나 청문회 추진 카드까지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월성 원전과 권익위 감사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 충돌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사안인 만큼, 재검증 결과는 향후 정치적 책임 논쟁의 불씨로 작용할 전망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문제도 제도 개선 논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감사위원 임명 구조, 감사 착수 통제 장치, 수사기관 통보 기준 등을 둘러싸고 국회 논의가 재점화될 수 있어서다. 감사원 내부에선 TF 활동을 기점으로 향후 특정 정권의 의중에 휘둘리지 않는 감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반대로 현 지휘부가 정치적 잣대로 과거 감사를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충돌하고 있다.

 

이날 감사원은 TF 결과를 토대로 재심의 요청이 제기된 사안의 절차를 정비하고, 필요 시 감사위원회 차원의 재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국회 역시 관련 상임위에서 감사원 보고를 요구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정치감사 논란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공방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분위기여서, 감사원을 둘러싼 정면 충돌 양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우진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인회#윤석열정부#감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