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민간이 쏘는 상업로켓 시대”…이노스페이스, 한빛 나노로 K뉴스페이스 가속

김서준 기자
입력

한국의 우주 개발 전략이 공공 주도 단계를 넘어 민간이 중심이 되는 뉴스페이스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의 합작으로 진행된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을 디딤돌 삼아, 12월 민간 우주 기업 이노스페이스가 개발한 첫 상업용 발사체 한빛 나노 발사를 앞두고 있어서다. 정부는 누리호를 통해 축적된 발사체 기술을 민간에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한편, 나로우주센터 개방과 민간 전용 발사장 신설, 재사용 발사체 개발 등 인프라와 차세대 기술을 직접 책임지는 투 트랙 전략으로 우주 산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는 이 흐름을 한국판 일론 머스크 모델을 현실화할 분기점으로 본다.

 

이노스페이스의 한빛 나노는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용 우주발사체로, 누리호가 열어놓은 공공 발사 체제를 보완하는 소형 상업 발사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발사는 12월 17일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우주항공청으로부터 상업 발사체 발사 승인을 받은 첫 민간 발사 사례가 된다. 한빛 나노는 높이 21.8미터, 직경 1.4미터의 2단형 발사체로 설계됐으며, 1단에는 추력 25톤급 하이브리드 로켓엔진 1기를, 2단에는 추력 3톤급 액체메탄 로켓엔진 1기를 탑재한다. 저궤도 투입을 겨냥한 소형 발사체라는 점에서, 대형 위성 위주인 기존 공공 발사와 다른 상업 시장을 노린 구성이 특징이다.

이노스페이스가 준비 중인 스페이스워드 미션은 한빛 나노를 활용해 다국적 소형 위성 5기와 실험용 탑재체 3기를 지구 저궤도로 올려보내는 프로젝트다. 목표 궤도는 고도 300킬로미터, 경사각 40도의 저궤도이며, 궤도 투입 목적의 소형 위성 5기, 비 분리 실험 장치 3기 등 총 8기의 정규 탑재체에 더해 브랜딩 모델 1종을 함께 실어 올릴 계획이다. 단일 국가 공공 임무 중심에서 벗어나 다국적 고객의 상업적 수요에 대응하는 점에서, 발사체를 서비스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는 뉴스페이스 흐름과 맞물린 행보다.

 

기술 구성 측면에서도 한빛 나노는 공공 발사체와 다른 실험적 성격을 갖는다. 하이브리드 로켓엔진과 액체메탄 엔진을 혼합한 구조로, 고체 연료의 안전성과 액체 연료의 높은 성능을 동시에 추구하는 설계다. 메탄 기반 엔진은 장기적으로 재사용 발사체와도 기술적 연관성이 커 국제적으로 연구가 활발하며, 탄소 배출과 연료 관리 측면에서도 기존 케로신 연료 대비 개선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사 성공 시 이노스페이스는 한국 민간 기업으로서는 드문 메탄 엔진 실사용 경험을 확보해 차세대 소형 발사체 시장에서 기술 포트폴리오를 넓힐 수 있다.

 

한빛 나노 발사는 누리호가 담당하는 공공용 중대형 발사와 대비되는 소형 상업 발사 영역에서 민간 주도 모델을 입증하는 첫 시험대가 된다. 누리호가 정부 주도 개발로 국가 우주 역량과 기술 자립을 상징한다면, 한빛 나노는 민간이 위험을 감수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상업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로써 한국 우주 산업은 공공용 발사 수요는 누리호와 차세대 국가 발사체가, 소형 위성 중심 상업 수요는 민간 발사체가 분담하는 양축 체제를 갖출 가능성이 커졌다.

 

민간의 진출이 본격화되자 정부도 인프라 측면에서 지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스페이스X와 팰컨9을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발사 생태계를 구축하며 발사 비용을 낮추고 발사 빈도를 크게 끌어올린 것처럼, 한국에서도 발사 인프라의 개방과 다변화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그동안 국내 유일의 우주 발사장인 고흥 나로우주센터는 연구와 공공 임무 중심으로 설계돼, 민간 기업이 상업 발사를 진행하기에는 일정과 시설 이용에서 구조적 제약이 있었다.

 

우주항공청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민간 전용 발사장 신설 방안을 추진하면서 이 한계를 보완하려 한다. 계획 중인 민간 발사장은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상업 발사를 수용할 수 있도록 발사대, 조립동, 연료 시설, 관제 시스템 등을 민간 수요에 맞춰 설계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저궤도 통신 위성, 지구 관측 위성, 기술 검증 위성 등 소형 위성 발사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내에도 민간이 자율적으로 발사 일정을 계획하고 반복 발사를 할 수 있는 전용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민간 전용 발사장 구축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주항공청은 나로우주센터의 즉각적인 민간 활용도를 높이는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기존 공공 시설 중 일부를 민간 기업에 단계적으로 개방하고, 발사 전 준비 과정과 실제 발사 운영에 민간 인력을 적극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는 중이다. 이를 위해 우주항공청은 민간기업 나로우주센터 사용 절차 안내서를 마련해 사전 협의, 신청, 심사, 허가, 발사, 사후 조치까지 전 과정을 표준화했다. 공공 연구 중심으로 설계된 인프라를 민간 상업 활동에 맞게 재구성해 초기 진입 비용과 행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기술 이전과 미래 기술 선점 역시 정부가 맡은 또 다른 축이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누리호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시스템 설계, 엔진, 발사 운영 기술을 민간에 체계적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복 투자를 줄이고 민간이 보다 빠르게 발사 서비스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 자료와 시험 데이터, 지상 장비 운용 노하우 등을 단계별로 공유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민간은 이를 기반으로 중소형 발사체, 위성 운반 서비스 등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정부는 민간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도 영역인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를 직접 추진하고 있다. 국가우주위원회는 최근 제4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 수정계획에서 누리호 후속 차세대 발사체 개발 방향을 메탄 기반 재사용 발사체로 전환하기로 의결했다. 재사용 발사체는 1단 등을 회수해 다시 쓰는 방식으로, 발사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발사 빈도를 크게 높이는 기술로 꼽힌다. 스페이스X 팰컨9 역시 재사용 1단 회수를 통해 글로벌 발사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였다.

 

한국 정부의 재사용 메탄 발사체 전략은 저비용 고빈도 발사가 전제 조건이 된 뉴스페이스 경쟁 구도에서 필수 인프라를 스스로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가 재사용 구조, 열 보호, 자동 착륙, 연료 관리 등 난도가 높은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민간은 이를 활용해 상업 발사 서비스와 위성 운용, 우주 물류 등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역할 분담 구조가 상정된다. 발사 기술을 단일 프로젝트가 아닌 산업 플랫폼으로 보겠다는 방향 전환이다.

 

글로벌 비교에서 보면, 한국은 아직 스페이스X나 유럽의 아리안 계열 발사체처럼 완성된 민간 중심 생태계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누리호 4차 발사 성공과 민간 참여 확대, 이노스페이스의 한빛 나노 발사 도전, 민간 전용 발사장 계획, 재사용 발사체 개발 전환 등 주요 요소들은 이미 미국과 유럽이 거쳐 온 경로를 압축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발사체 기술을 정부가 독점하지 않고 민간에 이전해 시장 경쟁을 촉진하려는 정책 방향은 스페이스X의 성장 과정에서 교훈을 얻은 측면이 크다.

 

다만 상용 발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발사 비용, 신뢰성, 발사 주기, 고객 맞춤성 등에서 글로벌 수준을 맞춰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재사용 발사체 개발 성패에 따라 장기적인 가격 경쟁력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발사 실패 시 책임 문제, 발사장 안전 규제, 발사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 등 제도와 윤리, 안전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공 임무와 상업 발사가 같은 인프라를 공유할 때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할지, 국제 발사 서비스 규범과의 조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누리호 4차 성공과 한빛 나노 발사가 차질 없이 이어질 경우, 한국이 뉴스페이스 시대의 공급자이자 플랫폼 국가로 자리매김할 교두보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발사 비용을 얼마나 낮추고 발사 빈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재사용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명확히 천명한 만큼, 공공과 민간이 분담한 역할이 실제 산업 구조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향후 몇 년을 한국 우주 경제의 방향을 가르는 결정적 시기로 보고 있다.

김서준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노스페이스#한빛나노#누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