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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 건조 위한 예외 합의 협의해보겠다"…위성락, 美에너지장관과 원자력 협력 논의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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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협력을 둘러싼 미국과 한국의 이해가 다시 맞붙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민수 원자력 협력과 핵추진 잠수함 추진 논의가 워싱턴 DC 외교무대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7일 현지시간 워싱턴 DC 시내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하고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포함된 원자력 분야 합의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는 전언이 나왔다. 위성락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양측은 회동에서 팩트시트에 담긴 민수용 원자력 협력 세부 사항을 점검하고, 신속한 이행 로드맵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라이트 장관이 미국의 민수용 원자력 분야를 총괄하는 만큼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둘러싼 구체적인 협의도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소식통들은 팩트시트 발표 이후 한미 간 원자력 협력이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상당히 긴밀하고 다층적인 채널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DC와 서울을 잇는 고위급·실무급 접촉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식 채널의 움직임도 이어졌다. 제이콥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은 11일 외신기자 브리핑에서 "한국 측 카운터 파트와 여러 차례 접촉했고, 에너지 문제가 양자 대화 중 언급됐다"고 밝혔다. 한미 간 에너지·원자력 의제가 외교 채널에서 상시 논의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보다 앞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2일 워싱턴 DC에서 앨리슨 후커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과 만나 원자력, 조선, 핵추진 잠수함 등 분야에서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신속히 이행하기 위한 실무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국이 정상 차원의 합의를 실무 이행 체계로 연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성락 실장과 라이트 장관의 회동에서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둘러싼 민감한 쟁점도 논의됐을지 관심이 쏠린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위해서는 한미원자력협정이 규정한 군사용 핵물질 이전 제약을 우회하거나 보완하는 별도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성락 실장은 전날 워싱턴 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취재진과 만나 호주 사례를 들며 미국 원자력법 91조를 거론했다. 그는 "미국의 원자력법 91조에 따른 예외"를 언급한 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한미 간 별도 양자 합의의 가능성을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군용 핵물질 이전을 허용하는 미국 국내법상의 예외 조항을 활용해 새로운 협정 체계를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미국 원자력법 91조는 미국 대통령이 군용 핵물질 이전을 예외적으로 허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호주는 이 조항에 근거한 별도 협정을 미국과 체결해 기존 미 호주 원자력 협정상 제약을 우회했고, 이를 통해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위성락 실장의 발언은 한미 간에도 호주와 유사한 경로를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위성락 실장은 대북 정책을 포함한 한반도 현안도 미국 측과 집중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미에 앞서 북미 및 남북 대화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 "우선 미국 측과 협의해보고자 한다"며 "유엔에도 협의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 재가동과 제재 체제 유지 방안,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이 포괄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관측된다.

 

위성락 실장은 전날 마코 루비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만나 한미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대북 억지력 강화와 제재 이행, 대화 재개 여건 조성 등을 함께 점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이 원자력 협력과 안보 공조를 동시에 다루면서 전략적 연계를 모색하는 구도다.

 

위성락 실장은 18일 뉴욕으로 이동한 뒤 귀국길에 오를 계획이다. 뉴욕에서는 유엔 본부 방문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미 간 협의 내용을 유엔 무대와 국제사회 논의로 확장하는 접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향후 한미 정상 간 합의를 토대로 원자력 협력과 핵추진 잠수함 추진 방안을 병행 검토할 예정이다.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은 미국 측과의 실무협의를 이어가며 한미원자력협정과 미국 원자력법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할 방침이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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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크리스라이트#한미원자력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