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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절벽 본격화…글로벌 빅파마, 블록버스터 방어전으로 바이오시밀러 격전 예고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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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둘러싼 특허 절벽이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독점 특허가 순차적으로 만료되면서 매출 10억달러 이상을 올리던 약물이 대거 가격 인하와 판매 급감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반대로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기업에는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국면이 열리고 있어, 업계에서는 이번 흐름을 글로벌 신약 패권과 복제약 경쟁이 동시에 재편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분석에 따르면 올해부터 2030년까지 블록버스터 의약품 70개를 포함해 약 200개 품목의 특허 보호가 끝난다. 이에 따라 총 2000억달러에서 최대 4000억달러에 달하는 매출이 경쟁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2030년까지 118개, 유럽에서는 69개 바이오의약품 특허 만료가 예정돼 있어 두 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과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허 절벽은 20년간의 특허 독점 기간이 종료되면서 제약사가 누리던 고수익 구조가 급격히 무너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허가 끝나면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가 동일 성분 또는 구조가 유사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어,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 점유율과 이익률이 단기간에 하락한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개발비가 막대해 특허 만료 이후 매출 감소 폭이 재무 구조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이러한 구조 변화를 감안해 2030년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가 730억달러에서 762억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성장의 중심축은 미국 시장이다. 미국은 고가 바이오의약품 사용 비중이 높고, 의료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 수요도 커 가격 경쟁력이 높은 바이오시밀러 확산 속도가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제품이 애브비의 류머티즘 치료제 휴미라다.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이었던 휴미라는 특허 독점기 종료 이후 매출이 급전직하했다. 암젠이 출시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암제비타는 오리지널 제품 정가보다 55퍼센트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해 가격 지형을 흔들었다. 그 결과 휴미라 매출은 2022년 212억달러 수준에서 2024년 90억달러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된다. 특허 보호 상실과 공격적인 바이오시밀러 가격 전략이 결합하면서 블록버스터 지위가 단기간에 약화된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블록버스터 중심의 수익 구조를 유지해 온 글로벌 빅파마는 방어 전략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핵심 전략은 특허 수명 연장과 제품 라이프사이클 관리다. 둘 이상의 적응증 허가를 추가로 확보하거나, 투여 경로와 제형을 바꿔 새로운 특허를 확보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허 포트폴리오를 층층이 쌓아 경쟁사의 바이오시밀러 진입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접근법이다.  

 

머크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둘러싸고 취하는 전략이 이를 보여준다. 키트루다는 현재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으로, 정맥주사 방식이 주력 제품이다. 머크는 2028년 미국 특허 만료를 앞두고 피하 주사 제형을 별도로 개발해 올해 9월 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획득했다. 피하 제형은 환자 편의성과 병원 내 투약 시간 단축 측면에서 차별점이 있어 시장 점유율 방어와 수익 구조 유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맥주사 제형과는 다른 특허 구조를 확보함으로써 키트루다 브랜드 전반의 상업적 수명을 연장하려는 포석이다.  

 

키트루다 외에도 굵직한 블록버스터들이 순차적으로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매출 4위 의약품인 듀피젠트는 2030년 미국 특허가 끝난다. 면역항암제 옵디보와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오크레부스는 각각 2028년과 2029년에 미국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 이들 약물은 암과 자가면역질환 등 난치성 질환 영역에서 표준 치료제로 자리 잡은 만큼, 특허 만료 이후 가격 구조와 보험 재정, 치료 접근성에 미치는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대형 바이오의약품에 대해 아직 미국 규제 당국이 허가한 바이오시밀러가 없다는 사실이다. 복잡한 단백질 구조와 공정 기술 차이, 임상 데이터 요구 수준 등이 허들로 작용해 왔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임상 비용과 비교해 투자 수익이 어느 수준에서 확보될지 불확실성이 컸다. 특허 만료 시점과 개발 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선발 진입 이점을 잃어버리는 리스크도 부담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규제 환경이 변하는 기류도 관측된다. 바이오경제연구센터 관계자는 내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 허가 시 임상 3상 의무를 면제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나올 가능성을 언급했다. 충분한 분석 데이터와 비교 임상 결과가 확보된 경우 대규모 3상 시험을 생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동일 기전 약물에 대한 안전성 정보와 실제 진료 데이터가 축적되면 임상 요구 수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임상 3상 면제가 제도화되면 바이오시밀러 기업에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개발 기간이 단축되고 투자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중견 제약사나 신흥 바이오텍도 바이오시밀러 시장 진입을 적극 검토할 여지가 커진다. 다만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시장 내 경쟁 강도는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다. 가격 인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선발 바이오시밀러조차 수익성이 약화되는 구조적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이번 특허 절벽은 오리지널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양쪽에 동시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빅파마는 블록버스터 방어와 더불어 차세대 면역항암제, 세포유전자치료제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겨가며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반면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은 개발 효율성과 제조 공정 최적화, 글로벌 허가 전략 수립이 생존 조건으로 부각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특허 절벽 이후 시장이 단기간 가격 경쟁 일변도로 흐르기보다는, 오리지널과 바이오시밀러, 차세대 혁신 치료제가 맞물리는 다층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각국 규제 당국의 임상 요구 수준과 보험 등재 기준, 데이터 기반 비교 평가 체계가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느냐에 따라 산업 내 승자와 패자가 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블록버스터 특허 만료가 가져올 시장 재편이 실제 수익 모델 변화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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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의약품#바이오시밀러#특허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