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수익성 재평가 중”…미국 뉴욕증시, 기술주 급락 속 섹터 로테이션 가속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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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일, 미국(USA)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공지능(AI) 성장주를 중심으로 한 기술주 조정이 본격화하며 뉴욕증시의 사상 최고치 랠리가 한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초대형 기술주 약세와 AI 수익성에 대한 회의론이 겹치며 나스닥 지수가 크게 밀려났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완화 기조 속에 방어주와 가치주로 자금이 이동하는 섹터 로테이션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조정은 미국 증시에 대규모로 투자해 온 한국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개미들의 포트폴리오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12일(미 동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245.96포인트(−0.51%) 내린 48,458.05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73.59포인트(−1.07%) 떨어진 6,827.41을 기록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398.69포인트(−1.69%) 급락한 23,195.17로 장을 마감했다.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 2000 지수도 1.62% 하락해 전반적인 위험 자산 선호 심리가 약화된 흐름을 반영했다.

[표] 뉴욕증시 주요 지수(ⓒ톱스타뉴스)
[표] 뉴욕증시 주요 지수(ⓒ톱스타뉴스)

시장의 가장 큰 충격 요인은 AI 반도체와 인프라 관련주 부진이었다. AI 수혜 기대를 한몸에 받던 브로드컴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놓고도 주가가 급락하며 투자 심리를 급랭시켰다. 에드워드 존스의 애프터마켓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실적 자체는 견조했지만 AI 관련 구체적 가이던스를 제시하지 않았고, 호크 탄 최고경영자(CEO)가 “AI 매출의 총마진이 비(非) AI 부문보다 낮다”고 언급한 점이 시장에 부담을 줬다. 그동안 고성장과 고수익을 전제로 한 AI 투자 논리가 지배적이었던 만큼, 수익성에 대한 재평가가 투자 심리 위축으로 직결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여파도 겹쳤다. 중국이 미국 AI 선도 기업인 엔비디아의 칩 수입을 거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엔비디아 주가는 3.28% 하락한 174.99달러에 마감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의 동반 약세에 5.10% 급락하며 AI 하드웨어 섹터 전반의 불안 심리를 드러냈다. 오라클 역시 데이터센터 완공 지연 관련 소식으로 4.47% 떨어지며 클라우드·데이터 인프라 관련주도 압박을 받았다.

 

이 같은 기술주 약세에도 개별 종목별로는 차별화가 두드러졌다. 테슬라는 기술주 전반의 조정 국면에서도 2.7% 오른 458.96달러에 마감하며 강한 매수세를 재확인했다. 11월 중순 400달러 초반대에서 꾸준히 우상향해 온 테슬라는 최근 한 달간 흐름만 놓고 보면 시장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은 0.09% 소폭 상승으로 강보합을 유지하며 변동성 장세 속에서 방어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반면 AI 반도체와 클라우드 인프라 관련주들은 동반 조정에 직면해 기술주 내에서도 섹터별 온도차가 커지는 양상이다.

 

채권 시장에서는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가 4.19%까지 오르며 주식 가치평가 부담을 키웠다. 금리 상승은 성장주의 미래 이익 가치를 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기술주를 추가로 압박했다. 에드워드 존스는 “기술주가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투자자들은 연준의 완화 정책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저평가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AI는 여전히 2026년의 주요 동력이겠지만, 시장의 상승세는 기술주를 넘어 더 넓은 섹터로 확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며 완화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필수소비재와 헬스케어 등 경기 방어주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고, 가치주 중심 섹터에도 점진적인 자금 유입이 관측되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USA) 증시 자금 운용에도 변화 조짐이 드러난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12월 11일 기준 미국 상장 상위 50종목에 대한 국내 투자자 보관금액 총액은 184조 5,511억원으로 직전 집계일 대비 약 1조 8,544억원 감소했다. 다만 예탁결제원 통계는 현지 매매 체결 후 결제까지 T+1~2일의 시차가 발생해 12일 장 마감 결과와는 일부 시간차가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이 데이터를 선행적인 매매 흐름을 가늠하는 보조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개별 종목별로 보면 서학개미의 매매 패턴과 현지 주가 흐름이 엇갈리는 사례가 나타났다. 테슬라의 경우 11일 기준 보관금액이 4,307억원 감소했지만 12일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온 상황에서도 미국 현지의 강력한 매수세가 주가를 떠받친 결과로 풀이된다. 반대로 엔비디아는 보관금액이 3,425억원 줄어든 데 이어, 12일에도 3.28% 하락해 국내 매도세와 대중국 수출 규제 악재가 겹치며 조정 폭이 확대됐다.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IonQ)는 서학개미의 ‘저가 매수’ 시도가 뚜렷한 종목으로 꼽힌다. 11일 기준 아이온큐 보관금액은 981억원 증가했지만, 12일 주가는 4.15% 하락했다. 기술주 전반에 닥친 매도세를 이겨내지 못한 모습이지만, 보관금액이 늘어난 종목군은 향후 기술적 반등 시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어 주의 깊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AI 반도체 상승에 베팅하는 레버리지 상품인 디렉션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어즈 ETF(SOXL)도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SOXL의 보관금액은 548억원 증가했으나 12일 주가는 14.53% 폭락해 단기 레버리지 상품에 투자한 서학개미들의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2025년 12월 현재 한국 투자자의 미국 증시 총 보관금액은 약 246조 8,489억원으로 전월 대비 3.7% 증가해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 자체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AI 섹터 조정이 장기화될 경우 성장주 편중 투자에서 방어주·가치주 중심으로 자금 구성이 재편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번 조정을 2026년을 앞둔 포트폴리오 재정비 국면으로 보고 있다. 연준의 점진적 완화 기조와 미국 경제의 상대적 견조함, AI와 생산성 향상에 대한 낙관론이 공존하는 가운데 단기적으로는 고평가 기술주의 숨 고르기와 섹터 로테이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가 전일 대비 5.99% 오른 15.74를 기록한 것도 투자자 불안 심리가 다소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AI 관련 기술주 조정이 미중 전략 경쟁, 미 정부의 반도체 수출 통제, 글로벌 금리 방향성 등 거시 변수와 맞물려 중장기 투자 전략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AI와 반도체가 여전히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는 만큼, 이번 조정이 장기 상승 추세에서의 건전한 숨 고르기인지, 구조적 변화의 신호인지에 대한 논쟁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번 조정 국면이 향후 미국 증시와 세계 자본시장의 자금 흐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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