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비밀유지권 법제화"…법사위 소위, 변호사법 개정안 여야 합의 처리
수사권과 인권 보호 사이 갈등이 다시 국회를 달궜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 비밀 유지 범위를 둘러싼 쟁점 속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제도 개편에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12일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변호사들의 비밀유지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법조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이 입법 절차의 첫 고비를 넘긴 셈이다.

개정안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 의사교환 내용과 수임 사건 관련 서류나 자료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나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 과정에서 변호사가 비밀유지권을 근거로 자료 제공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개정안은 예외 조항도 뒀다. 의뢰인이 자발적으로 비밀 공개에 승낙한 경우에는 비밀유지 의무가 제한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의뢰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공범 관계가 소명된 경우에는 수사 및 재판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관련 자료 공개를 허용하도록 했다.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인정하되 범죄 은폐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병행한 셈이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나 법원의 제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로 인정되지 않아 실질적인 방패막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에서는 수년간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별도로 명문화해 달라는 요구를 제기해 왔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대선 후보 시절 변호사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면서 변호사 비밀유지권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형사사법 절차에서 피의자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변호사와 의뢰인 간 신뢰 관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법사위 소위가 여야 합의로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본격적인 입법 논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로 공이 넘어가게 됐다. 수사기관의 수사 효율성과 인권 보호, 변호인의 조력권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따라 향후 본회의 표결 과정에서 추가 논쟁도 예상된다.
한편 법안심사1소위는 이날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발생한 반인권적 범죄 행위에 대한 공소 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도 함께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여야는 피해자 권리 회복과 법적 안정성, 기존 형사법 체계와의 정합성 등을 놓고 쟁점을 좁히지 못해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변호사 비밀유지권 법제화를 둘러싼 후속 조문 정비와 함께 반인권 국가범죄 시효 특례 논의를 병행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국에 미칠 파장을 두고 이해당사자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추가 공청회와 심사를 거쳐 최종안을 도출하는 절차에 돌입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