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인공지능 융합 기초연구에 1조 투입…교육부, 젊은 연구자 키워 지역 혁신 노린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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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이 산업 전반의 연구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운데 교육부가 2026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통해 기초 학문과 젊은 연구자, 지역 대학을 축으로 한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인문사회와 이공 분야에 1조712억원을 배분해 기초연구 생태계를 강화하고, 인공지능 융합 인재 양성과 지역 연구 거점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계획을 디지털 전환 시대 국가 연구개발 경쟁력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교육부는 28일 인문사회와 이공 분야에 총 1조712억원을 투입하는 2026년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인문사회 분야에는 4489억원, 이공 분야에는 6223억원을 배분한다. 전년 대비 인문사회는 298억원, 이공은 265억원이 늘어난 규모로, 연구개발 투자의 무게추를 기초학문과 초기 연구자, 지역 대학으로 옮기는 방향이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개인 연구자의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체계를 본격 구축한다. 박사 취득 이후 경력 단계에 신규로 도입되는 글로벌 리서치 사업을 통해 젊은 인문사회 연구자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를 20명 선발해 1인당 연간 5000만원을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경험을 조기에 확보하도록 돕는 구조다.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의 확산 속에서 인문사회 연구자의 국제 감각과 융합 역량을 높여, 기술 중심 혁신에서 발생하는 사회·윤리·정책 과제를 다루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인문사회연구소 지원 방식도 대폭 개편된다. 지금까지는 순수학문연구형 1개 유형만 운영했지만, 앞으로는 예술체육특화형과 교육연계형을 포함한 3개 유형으로 다변화한다. 각 신규 유형에서 4개 과제를 추가로 뽑아, 문화예술과 체육, 교육 현장과 연결된 대형 융복합 연구를 촉진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거점국립대 3곳을 인문사회 대학기초연구소로 지정해 연간 40억원을 지원한다. 지역 거점 대학이 인문사회 분야 연구 인프라를 축적해 지역 특화 정책, 문화 산업, 교육 혁신의 지식 허브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구조다.

 

인공지능 디지털 시대에 대응한 인문사회 융합 인재 양성도 강화된다.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 HUSS는 2단계 사업으로 확대되고, 신규 컨소시엄 1개를 추가 선발한다. 이를 통해 인문사회 전공자가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디지털 콘텐츠 기획 역량을 함께 갖춘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는 경로를 넓힌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AI 기반 플랫폼 설계, 디지털 헬스, 바이오 데이터 해석 등에서 인문사회적 통찰을 요구하는 수요가 늘고 있어, HUSS 확대가 장기적으로 IT와 바이오 산업 전반의 기획·정책·윤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공 분야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학문 생태계 조성과 지역대학 기초과학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비전임 교원과 박사후연구원을 대상으로 하는 풀뿌리 연구지원 프로그램인 기본연구 사업이 새로 마련된다. 790개 과제를 선발해 총 237억원을 투입하고, 과제당 3년의 지원 기간을 보장하는 구조다. 단기 성과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비정규 고급 연구 인력에게 일정 기간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해,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연결고리가 되는 실험·데이터 기반을 두텁게 쌓겠다는 취지다.

 

연구자들이 과제 수행 과정에서 느끼는 행정·평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정도 포함됐다. 내년 신규 개인연구 과제부터 단계평가 절차를 간소화해 평가 횟수와 요구 자료를 줄이고, 연구 몰입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된다. 이와 함께 대학기초연구소 사업 G LAMP는 계속 추진해 특정 대학 내에서 장기적인 기초과학 연구 거점을 유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업하는 국가연구소 NRL 2.0에는 지역 트랙이 신설돼, 수도권에 집중된 대형 연구소 중심 구조를 완화하고 지역 연구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이번 계획은 특히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 분야의 중장기 경쟁력과도 맞닿아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첨단 바이오처럼 장기 축적과 고난도 기초연구가 필수적인 영역에서는 박사후연구원, 비전임 연구자, 지역대학 연구실이 실제로 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기술 실험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집단은 단기 과제와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노출돼 있어,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데이터 품질과 지속성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교육부는 이번 풀뿌리 지원 확대가 장기적으로 AI 학습데이터, 바이오 실험데이터, 소재 시뮬레이션 데이터 같은 국가적 전략 자산의 저변을 넓히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 차원의 기초과학 정책 방향 역시 이번 계획에서 재정비된다. 연구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연구자를 중심으로 전략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기초과학 정책의 중장기 로드맵을 제안하는 구조를 짠다. 대학과 전문가 집단 간 협력체계를 강화해 개별 과제 지원을 넘어, 차세대 반도체, 인공지능 알고리즘, 정밀의료, 탄소중립 소재 등 국가 전략 분야에서 필요한 기초연구 축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AI와 바이오, 반도체 분야의 기초연구를 국가 안보와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올려놓고 있다. 미국은 대형 국립연구소와 대학을 연계해 기초과학과 인공지능 연구를 장기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하고, 유럽은 EU 연구 프레임워크를 통해 데이터 인프라와 AI 윤리 연구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이 기초연구 투자 규모를 늘리고 지역 거점과 젊은 연구자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연구 기반을 지방과 다양한 연구 집단으로 넓혀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기초학문의 역할을 응용 기술과 실용 연구의 토대가 되는 핵심 지식 제공으로 규정했다. 그는 축적된 기초연구 성과가 미래 산업과 기술 변화를 이끄는 원천이 된다고 강조하면서, 2026년 학술연구지원사업이 젊은 연구자를 지원하고 지역 대학 연구 기반을 키워 학술 생태계의 균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계와 학계는 실제 집행 과정에서 평가 간소화와 지역·초기 연구자 지원이 어느 수준까지 구현될지, 그리고 디지털 전환과 AI 시대의 수요에 맞는 연구 구조 개편이 뒤따를지에 주목하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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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기초연구#인공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