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밤9시 이후 메신저 금지…과기정통부, 워라밸 실험에 나섰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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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메신저 알림이 일상이 된 공무원 조직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업무 도구 확산으로 보고와 지시가 24시간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심야와 주말 업무 메시지 자제를 공식화하며 조직문화 실험에 나섰다. IT·바이오 산업 규제와 지원을 담당하는 부처의 업무 환경이 바뀌면 정책 설계의 완성도와 현장 대응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산업계의 관심도 커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험을 공직사회 디지털 노동강도 조절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6일 세종정부청사 강당에서 간부를 배제한 직원 대상 타운홀 미팅을 열고,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는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를 가급적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특히 최근 국정감사와 예산결산위원회 대응 과정에서 과도한 야간 보고와 주말 호출이 반복되며 번아웃을 호소하는 직원 목소리가 익명 소통창구를 통해 잇따르자, 장관이 직접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배 부총리는 자신 역시 심야 보고를 기다리느라 잠을 설치고 연락을 대기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보고를 받는 사람과 보고하는 사람 모두 수면과 회복이 깨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밤 9시 이후와 새벽 시간대 메신저 지시를 자제하고, 불가피한 특수 상황에서만 최소 범위로 예외를 두겠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메신저 의존도가 높은 부처 특성상 이 조치는 실제 야근 관행 완화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주말 업무 관행에도 메스를 댄다. 배 부총리는 금요일 저녁 이후 주말 사이의 업무 연락 역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매주 월요일 오전 열리던 간부 중심 공유 회의가 실무진의 주말 출근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반영해, 회의 시간을 월요일 오후로 전격 조정했다. 보고자료 준비를 위해 일요일 출근이 사실상 강제되던 구조를 손보겠다는 취지다.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변화 방향도 제시됐다. 배 부총리는 민간 IT 기업에서 일반화된 수평적 호칭 문화를 참고해, 과기정통부에서도 직함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자고 제안했다. 부총리님 대신 배경훈님, 필요하면 경훈님과 같이 부르는 방식을 통해 서열 중심 문화를 누그러뜨리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유도하겠다는 복안이다. 기술·정책 논의를 빠르게 해야 하는 부처 특성상 수평적 소통 구조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보고 방식 혁신도 핵심 변화로 꼽힌다. 배 부총리는 취임 이후 이어진 서면 중심 보고의 비효율을 다시 한 번 지적하며, 정형화된 보고서 작성보다 토론식 보고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방식은 다단계 결재 라인에서 같은 보고서를 여러 차례 수정·재작성하면서 실무진 피로도가 높고, 핵심 메시지가 오히려 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보고자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정교화하는 방식이 정책 품질과 업무 효율을 함께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과기정통부가 담당하는 IT·바이오 정책 환경과도 맞물린다. 인공지능, 반도체, 디지털 헬스케어 등 고속으로 변하는 산업을 다루려면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연한 논의 구조가 필요하지만, 공직 특유의 경직된 문화와 과로 구조가 혁신 속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토론식 보고와 수평적 호칭은 민간 기술 기업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부처 내부에서도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의견이 빠르게 교환될 여지를 넓힐 수 있다.

 

다만 문화 변화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제도화와 구성원 합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도 배 부총리는 분명히 했다. 그는 자신이 떠나고 새로운 장관이 오면 다시 원위치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언급하며, 호칭과 보고 방식, 심야 연락 자제 원칙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직원들이 스스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는 상태가 되면 제도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타운홀 미팅에 참여한 직원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한 직원은 농담을 곁들인 장관의 설명으로 분위기가 부드러웠다며, 심야 업무 관행을 직접 문제로 꺼낸 데 대해 우호적인 기류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그동안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장관이 먼저 언급해 부담이 덜어졌다며, 실제 생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IT·바이오 정책을 관장하는 핵심 부처의 조직문화 실험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다만 디지털 인력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공공 영역의 노동 환경과 의사결정 구조 개선이 민간 혁신 생태계에도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산업계와 공공부문 모두에서, 기술과 성과 못지않게 일하는 방식과 제도 설계가 새로운 성장의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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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훈#과학기술정보통신부#워라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