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많은 오후, 천천히 걷는 예천”…자연과 전통이 있는 깊은 하루

요즘 흐린 날씨에 소도시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맑은 햇살보다 구름이 많은 오후가 더 어울리는 곳, 바로 경북 예천이다. 예전에는 화창한 날만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푸석하고 차분한 하늘 아래 천천히 걷는 일이 누군가의 일상이 됐다.

예천에서는 하루 종일 고즈넉한 시간이 이어진다. 낙동강 물줄기가 우아하게 휘도는 회룡포에 오르니, 흐린 하늘과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이곳 전망대는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 사이에서도 인기다. 한켠에선 선몽대의 전통 정자가, 강가의 부드러운 바람과 얽혀 조용한 산책에 딱 어울린다. SNS에는 “비 오는 소리 대신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는다”며 예천 여행을 인증하는 글들이 쌓인다.

이런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연하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최근 로컬 여행지 체험을 선호하는 여행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굳이 환하게 맑은 날만을 고집하지 않고, 오히려 구름과 먼지 없는 미세먼지 '좋음'의 청정한 대기 속, 가족 단위 또는 소규모로 여행을 즐긴다. 한낮 기온이 31도를 넘고 습도가 높은 날, 실내외 체험이 조화롭게 구성된 공간이 각광 받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감각 회복의 여행’이라 부른다. 예천천문우주센터에서 우주를 체험하거나, 삼강주막마을 골목을 느리게 걷는 일이 쌓여 여행자의 리듬을 바꾼다는 분석이다. 최근 여행 트렌드 분석가 이정현 씨는 “우리는 새로운 곳을 보는 것만큼, 낯선 평온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방식으로 삶의 휴식을 찾고 있다”고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구름 많으니 사람도 적고, 천천히 둘러보기 좋아요”, “전통 마을에서 어른도 아이도 잠깐 쉬어갈 수 있어 좋았다”는 이야기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퍼진다. 바쁜 도시에서 멀어진 수많은 여행자들이 회룡포, 선몽대, 초간정, 용문사에서 각자 느끼는 여유를 공유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흐린 날씨도 하나의 여행을 완성한다. 산책과 사색, 그리고 가족과의 조용한 경험이 채워지는 예천의 오후. 예천 곳곳에선 어느새 새로운 계절의 감성이 일상을 물들이고 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날의 평온함은 지금도 마음 한켠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