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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해킹 통보 받고도 조치 안했다"…노태악 선관위원장 직무유기 고발, 경찰 불송치 결론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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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북한 해킹 시도 통보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의혹을 놓고 시민단체와 수사기관이 정면으로 맞섰다.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경찰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면서, 선거 관리기관을 둘러싼 사이버 보안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증거인멸 혐의로 고발된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 사건에 대해 지난달 24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5일 밝혔다. 수사 개시 후 약 2년 만에 모든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건의 출발점은 국가정보원의 해킹 통보였다. 국정원은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북한의 해킹 시도 8건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전달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2023년 5월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보안 역량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확산됐다.  

 

국정원은 논란 직후인 2023년 7월 17일부터 9월 22일까지 선거관리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합동 보안 점검을 진행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10일 선거관리위원회의 투·개표 시스템과 내부망 등에서 다수의 해킹 취약점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야권과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은 이 발표를 근거로 선거관리위원회가 북한 해킹 통보를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은 노태악 위원장 등을 상대로 직무유기 등을 주장하며 7건의 고발장을 연이어 제출했다. 핵심 쟁점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국정원의 통보로 북한의 해킹 위험을 인지하고도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는지 여부였다.  

 

경찰은 직무유기 혐의와 관련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치가 형사 책임을 물을 정도로 미흡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국정원의 통보 이전에는 해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해킹 시도가 확인된 이후에는 피해 직원의 컴퓨터 포맷, 악성코드 검사 등 정비 조치를 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황을 종합했을 때 피고발인들의 행위를 직무유기에 이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해킹 피해의 범위도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보안 점검 결과 보고서에서 선거관리위원회 내부망으로 실제 침입이 이뤄진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 역시 수사 과정에서 북한 측 해킹 시도는 외부망에 있는 이메일 등에 국한돼 침해 사고로 볼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진술과 기술적 분석을 함께 고려해 북한 해킹 시도와 선거관리위원회 직무유기 사이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정원 발표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대응 문서 작성 논란도 쟁점이었다. 국정원이 합동 보안 점검 이후 선거관리위원회 투·개표 시스템 전체가 해킹 가능하다는 취지로 발표하자, 선거관리위원회는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반박 입장의 문서를 발표했다. 국정원과의 공동 발표가 무산된 뒤 각자 입장을 내면서 해석 충돌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다.  

 

시민단체들은 이 반박 문서가 허위 내용을 담고 있다며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은 보안 점검 결과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가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설명한 수준으로 볼 수 있고, 문서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명백히 반한다거나 허위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보고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사이버 보안 업무 위탁과 관련된 의혹도 검토 대상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에 관련 업무를 맡겼다는 직권남용 주장과 함께, 선거 관련 정보를 무단 폐기해 증거인멸을 했다는 고발이 잇따랐다. 그러나 경찰은 제기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관련 의혹이 사실과 다르거나, 설령 일부 절차상 미비가 있더라도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정도의 법률 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사라지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합동 보안 점검에서 취약점이 다수 드러난 만큼, 향후 선거 과정에서 사이버 공격 대응과 투·개표 시스템의 신뢰성 문제는 계속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향후 보수성향 시민단체와 야권은 경찰 결정에 반발하며 재정신청이나 정치적 문제 제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경찰 수사 결론을 토대로 내부 보안 체계를 재점검하고, 국회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보안 강화 대책을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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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선거관리위원회#국가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