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국제규범 전면에”…과기정통부, G7서 신흥기술 외교전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규범 경쟁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이 G7 장관급 회의에 합류해 신흥기술 외교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선도국 중심으로 짜이던 인공지능 안전 규칙과 양자 기술 협력 틀이 재편되는 국면에서, 한국이 정책 모델과 공동연구 구상을 제시하며 표준 논의의 ‘규범 메이커’로 존재감을 키우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특히 데이터 인프라와 연구 거점을 앞세운 AI 전략을 공유하면서, 향후 국제 공조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일 현지시간으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G7 산업 및 디지털·기술 장관회의에 류제명 2차관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흥기술 분야 주요국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G7 회원국을 비롯해 초청국, 경제협력개발기구 고위급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 등 신흥기술 관련 글로벌 현안과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류제명 2차관은 회의에서 인공지능, 양자 및 신흥기술, AI 국제 협력 등을 주제로 한국의 정책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APEC AI 이니셔티브와 AI 고속도로 구축 프로젝트, 국제 AI 안전연구소 등 주요 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이 추진 중인 인공지능 생태계 전략을 공유하고, AI로 인한 산업 구조와 노동 환경 변화에 각국이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신뢰 가능한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 원칙을 마련하기 위한 협력 프로그램으로, 회원국 간 가이드라인과 모범 사례를 정리해 확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AI 고속도로 구축 프로젝트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연산 자원을 국가 인프라 수준으로 제공하는 전략으로, 생성형 AI 모델 학습과 의료·제조 분야 고난도 분석 등에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국제 AI 안전연구소는 대규모 언어모델과 자율 시스템의 위험을 평가하고 안전 기준을 연구하는 글로벌 허브를 지향하고 있어, 각국의 인공지능 규제 도입에도 참고 지표로 작용할 수 있다.
양자 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연구 성과와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며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양자컴퓨팅과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싱 등 세부 영역에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동연구와 연구인력 교류를 강화하고, 양자 통신 프로토콜과 장비 성능 시험 방식 등 표준 논의에 워킹그룹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제안은 향후 국제 전기통신연합과 표준화 기구에서 진행될 양자통신 표준화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 기간 동안 류 2차관은 캐나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영국, 독일 등 주요국 대표들과 연쇄 양자 면담을 갖고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을 포함한 과학기술 및 디지털 분야 협력 의제를 논의한다. 각국과의 양자 협의에서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 선도국 연구기관과의 데이터·모델 공유, 인재 양성 프로그램 연계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은 동시에 연구 현장의 글로벌 네트워크 점검에도 나선다. 류 2차관은 몬트리올의 AI 연구기관인 밀라 연구소를 방문해 국가 AI 연구거점과 진행 중인 국제공동연구 현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어 밀라를 이끄는 발레리 피사노 대표와 만나 기존 공동연구 과제를 검토하고, 차세대 생성형 AI 모델과 의료·기후 분야 응용연구, 대학원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인재 교류 확대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행보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EU AI 법안과 안전협약 등 인공지능 규범 논의가 구체화되는 시점에 맞춰 한국이 규범 형성 과정에 직접 관여하려는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양자 기술 역시 미국과 유럽,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며 연구 인력과 장비를 선점하고 있어, 한국이 G7 틀 안에서 협력을 제도화할 경우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류제명 2차관은 한국이 신흥기술 분야에서 혁신과 책임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흥기술의 글로벌 규범 형성과 공급망 안정, 연구개발 협력, 인재 교류, 포용적 디지털 전환을 위해 G7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인공지능과 양자 기술을 둘러싼 국제 논의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고, 이를 국내 산업 정책과 연계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