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피지컬 AI 결합…포스코그룹, 중후장대 공정 재편 나선다
피지컬 AI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결합이 철강·에너지 등 중후장대 산업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포스코그룹이 미국 로봇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고위험 수작업 공정의 자동화를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정밀 조립과 고중량 작업까지 수행 가능한 휴머노이드를 앞세워, 글로벌 제조·물류 자동화 경쟁의 분기점을 노린 행보로 해석된다.
포스코DX는 23일 미국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페르소나AI에 200만달러 규모 투자를 완료하고, 로봇 공동 개발과 현장 적용을 위한 협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포스코기술투자가 출자한 포스코CVC스케일업펀드제1호를 통해 100만달러를 추가 투입해, 포스코그룹 차원의 총 투자금은 300만달러에 이른다. 투자 집행은 올해 하반기 포스코DX와 포스코기술투자가 조성한 포스코DX 기업형벤처캐피탈 신기술투자조합을 통해 이뤄졌다.

페르소나AI는 2024년 6월 설립된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전문 기업으로, 철강·조선·항만 등 노동 강도가 높은 중후장대 산업에 특화된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로봇공학자로 활동한 니콜라스 래드포드가 최고경영자를 맡고, 미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피규어AI에서 최고기술책임자를 지낸 제리 프렛이 CTO로 합류해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핵심 경쟁력은 NASA에서 축적된 로봇 핸드 기술 기반의 정밀 제어 기능이다. 페르소나AI는 미세 전자부품 조립부터 수십 킬로그램 이상 고중량 물체 핸들링까지 한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는 로봇손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다축 촉각센싱과 순응제어 기술을 통해 로봇손이 물체 표면의 압력, 마찰, 접촉 위치 정보를 동시에 수집하고 이를 실시간 통합 제어에 반영한다. 힘과 위치를 동시에 제어하는 이 방식은 표면이 거칠거나 형상이 불규칙한 자재를 다루는 제철소, 물류창고 등에서 안정적인 작업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제어 영역에서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AI 알고리즘을 탑재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다양한 동작 패턴과 환경 인식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기반 모델로, 기존의 작업별 개별 프로그래밍 방식보다 적응 범위가 넓고 재학습 속도가 빠르다. 페르소나AI는 이 모델을 통해 로봇이 주변 설비와 작업자 움직임을 인지하고 자율적으로 경로를 계획하며, 작업 난이도에 따라 힘 조절과 속도 제어를 스스로 조정하는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스코DX는 이번 투자를 통해 제철소와 에너지 플랜트 등 그룹 계열사의 고위험 수작업 공정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단계적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포스코DX가 보유한 산업용 AI와 제어 소프트웨어 역량을 페르소나AI의 휴머노이드 플랫폼과 결합해, 피지컬 AI 적용 범위를 로봇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피지컬 AI는 실제 물리 설비에 인공지능을 연결해 사람 개입 없이 설비를 인지·판단·제어하는 기술로, 포스코DX는 이미 포스코와 함께 제철소 크레인, 컨베이어벨트, 하역기 등 초대형 설비를 AI로 자동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시장성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연평균 63퍼센트 성장해 2035년 380억달러, 한화 약 54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제조와 물류 분야 비중이 60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철강·에너지·무역을 핵심 축으로 둔 포스코그룹 입장에서는 그룹 전 사업 영역에 걸쳐 활용 시나리오를 설정할 수 있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테슬라, 피규어AI, 아질리티로보틱스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용 휴머노이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자동차 조립, 물류 피킹, 창고 상하차 등에서 시범 적용을 진행 중이며, 향후 자동차 공장과 이커머스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상용화 속도를 높일 것으로 관측된다. 포스코그룹의 행보는 완성차나 플랫폼 기업이 아닌 산업재 기반 기업이 현장 공정 특화형 휴머노이드 조기 도입에 나섰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업계에서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도입 시 안전 규제와 설비 인증 등 제도적 과제가 속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고온, 분진, 중량물 이동이 빈번한 제철소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려면 산업안전 규정과 설비 간섭 테스트를 충족해야 하고, 사람과 로봇이 함께 작업하는 협업 환경에서는 추가적인 안전 기준이 필요하다. 다만 위험도가 높은 공정을 중심으로 단계적 도입이 이뤄질 경우, 산업재해 저감과 숙련 인력 부족 해소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코그룹은 이러한 기술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벤처 투자 체계를 재편하고 있다. 기존 포스코홀딩스 중심으로 운영하던 CVC 펀드를 사업회사 맞춤형으로 확대해, 실제 현장 과제를 가진 계열사가 직접 전략 투자에 나서는 구조를 강화하는 중이다. 올해 8월에는 포스코가 500억원,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DX가 각각 250억원 규모의 CVC 1호 펀드를 조성해 신기술 발굴과 스케일업 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로봇공학계에서는 산업용 휴머노이드가 차세대 공장 자동화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람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로봇을 활용하면 기존 설비와 레이아웃을 크게 바꾸지 않고도 자동화 수준을 높일 수 있어, 초기 설비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포스코그룹의 이번 행보가 국내 제조업 전반의 휴머노이드 도입 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공정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