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별자리를 두른 밤”…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 부산의 겨울을 걷는 이유
요즘 부산의 겨울밤을 일부러 걸으러 나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바다와 야경이 전부인 여행지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도심 위로 켜지는 트리 조명을 따라 걷는 산책이 하나의 일상이 됐다. 사소한 조명의 변화지만, 그 안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과 겨울을 보내는 태도가 조용히 달라지고 있다.
올겨울 부산에서 그런 변화의 무대가 되는 곳은 중구 광복로와 광복중앙로 일대다. 빌딩 숲 사이를 가르는 도로 위로 은은한 불빛이 차오르면 회색빛 거리는 서서히 색을 바꾼다. 머리 위로 이어진 트리 장식이 별자리처럼 빛나고, 사람들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빛의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부산을 대표하는 겨울 축제로 자리 잡은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가 다시 도심을 수놓으며 시민과 여행자를 동시에 불러 모으는 순간이다.

부산광역시 중구청은 2025년 12월 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2025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를 연다. 광복로 72-1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축제 구간에는 서로 다른 디자인과 색감을 담은 트리와 조형물이 촘촘히 배치돼, 몇 걸음만 옮겨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야간 산책로로 변신한다. 바다 대신 빛을 보러 도심으로 향하는 이들은 쇼핑을 끝내고도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트리 아래에서 한 번 더 걸음을 멈추며 겨울밤을 길게 늘린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은 12월 5일 점등식에서 완성된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광복로 전역의 트리가 동시에 켜지는 순간, 그동안 배경처럼 흐르던 도심의 어둠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이 건물 윤곽을 다시 그리면서 거리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는 느낌을 준다. 현장에선 음악 공연과 퍼포먼스가 이어져 빛과 사운드가 겹겹이 쌓이고,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든 채 숨을 고르며 같은 장면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이 짧은 순간을 보기 위해 기다린 하루였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부산의 연말이 시작됐다는 신호 같다”고 털어놓는다.
축제가 이어지는 동안 광복로 곳곳에서는 ‘광복로 겨울빛 콘서트’라는 이름의 버스킹 공연이 밤공기를 채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어쿠스틱, 재즈,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트리 조명이 만든 빛의 터널이 자연스럽게 무대 배경이 된다. 길을 걷다 멜로디가 들리면 사람들은 다시 걸음을 늦춘다. 일부는 서서 끝까지 공연을 지켜보고, 일부는 두어 곡만 듣고 다시 자신의 속도로 거리를 걷는다. 음악이 흐르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이 정도면 겨울 데이트 코스가 따로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도심형 야간 축제에 대한 관심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각 지자체가 겨울 조명 축제를 경쟁적으로 기획하는 흐름 속에서, 도심을 무대로 한 빛 축제는 연말·연초 관광 수요를 견인하는 대표 콘텐츠로 떠올랐다. 부산 중구청은 광복로 축제를 지역 상권과 연계된 야간 관광 자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겨울밤을 소비하는 방식이 실내를 벗어나, 도시 전체를 산책하는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의 특징은 거리를 천천히 걷는 경험에 체험과 참여 요소를 겹쳐 넣었다는 점이다.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축제 구간에서는 크리스마스 쿠킹클래스와 미니 트리 만들기 체험이 열린다.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은 작은 쿠키를 굽고, 손바닥만 한 트리에 장식을 더하며 저마다의 크리스마스 장면을 완성한다. 연인과 친구들은 직접 만든 소품을 기념으로 챙겨 들고, 곁에 선 트리 아래에서 사진을 남기며 그날의 공기를 기록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보고만 가는 축제가 아니라, 손으로 만들고 함께 남기는 겨울”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낸다.
축제의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는 매달 한 차례씩 진행되는 시민 참여형 점등식이다. 사전에 신청한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트리 점등 버튼을 함께 누르는 방식이다. 버튼이 눌리는 순간 주변이 동시에 밝아지면, 광복로 곳곳에 서 있던 이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퍼져 나온다. 버튼을 누른 시민에게는 “내가 켠 빛”이라는 기억이 남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도 도시의 불빛이 누군가의 손길과 연결된다는 인상이 각인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참여 경험에 대해 “도시 축제의 본질은 구경이 아니라 함께 장면을 만드는 감각에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스스로 축제의 일부가 되는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12월 20일과 21일에는 올해 콘셉트에 맞춰 기획된 코스튬 캐릭터 이벤트가 거리를 누빈다. 화려한 조명 아래를 지나가는 캐릭터 퍼레이드는 아이들의 시선을 곧장 잡아끌고, 성인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사진 촬영 명소가 된다. 캐릭터와 함께 찍은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로 빠르게 공유되고, 광복로의 풍경은 먼 도시의 타임라인까지 번져간다. 댓글 반응에는 “당장 가보고 싶다”, “이 사진 하나로도 연말 분위기가 난다”는 말이 이어진다. 온라인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또 다른 방문을 부르는 셈이다.
축제가 열리는 광복로와 광복중앙로 일대는 부산의 오래된 역사와 상권이 겹겹이 쌓인 거리다. 여기에 K문화를 담은 조형물과 트리 연출이 더해지면서, 국내외 방문객은 쇼핑과 미식, 거리 공연과 야경 감상을 한 번에 경험하게 된다. 관광객은 낮에는 골목 상점과 카페를 돌다가, 밤이 되면 빛의 거리로 나와 산책을 이어간다. 상인들 사이에선 “해가 진 뒤에도 거리가 텅 비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만큼 겨울밤의 소비 동선이 바다와 야구장뿐 아니라 도심의 오래된 거리로 확장되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이런 도심형 겨울 축제가 “추운 계절의 소통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본다. 집이나 실내에 머무르며 보내던 계절에서, 잠깐이라도 거리로 나와 빛과 음악을 공유하는 계절로 한 발 더 나아갔다는 설명이다. “겨울밤의 따뜻함은 온도보다 풍경에서 온다”는 말처럼,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나는 거리를 함께 걷는 경험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힌다.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2025년 12월 5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이어지는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는 그렇게 시민과 여행자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 예정이다. 퇴근 후 잠깐, 여행 마지막 날 밤,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에 들르는 짧은 산책까지, 각자의 시간대에 맞춰 이 겨울의 빛을 마주하게 된다. 차가운 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조명의 온기는 도심을 거닐며 지친 일상을 내려놓는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틈을 내어줄 것이다. 오래된 거리와 새로 켜진 불빛이 겹쳐 만든 이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서 천천히 번지며 부산의 겨울밤을 조금 더 깊고 포근하게 채워갈지 모른다. 작고 사소한 저녁 산책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또 한 번 조용히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