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 병원 좀 데려가줘”…육군 부사관, 온몸 구더기 생길 때까지 방치 의혹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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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신체적 위기를 겪던 아내가 온몸에 욕창과 구더기가 생길 정도로 방치된 끝에 숨진 사건을 두고, 아내가 생전 남편에게 남긴 편지 내용이 알려지며 공분이 커지고 있다. 남편인 30대 육군 부사관은 “아내 상태를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군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군사법원에 넘긴 상태다.

 

육군에 따르면 군검찰은 지난 15일 30대 육군 부사관 A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군검찰은 주된 공소사실로 살인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유기치사를 각각 적용했다. 살인죄 인정이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방임으로 인한 사망 책임을 묻는 유기치사 혐의를 함께 제기한 것이다. 재판은 제2 지역 군사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온몸 구더기' 사망한 아내, 부사관 남편에 남긴 편지 내용(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온몸 구더기' 사망한 아내, 부사관 남편에 남긴 편지 내용(사진: SBS '그것이 알고싶다')

A씨는 경기 파주시 육군 기갑부대 소속 상사로, 지난달 17일 오전 8시 18분쯤 파주시 광탄면 자택에서 “아내의 의식이 혼미하다”고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구급대는 집 안에서 30대 여성 B씨를 발견했다. 당시 B씨의 전신은 오물에 오염돼 있었고, 하지 부위에서는 심한 감염과 욕창으로 인한 피부 괴사가 진행 중이었다. 감염 부위에서는 구더기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심정지 증상을 보였고, 의료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끝내 숨졌다. 병원 측은 외부 충격보다는 장기간 방임 정황이 뚜렷하다며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군검찰 수사로 사건이 넘어갔다.

 

조사 과정에서 B씨는 지난 8월부터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거동이 불편해졌고, 이 시기부터 온몸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대로 된 체위 변경과 위생 관리, 의료적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그 결과 전신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정황이 드러났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 상태를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B씨 지인은 “감식반이 냄새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데 배우자였던 A씨는 ‘함께 살던 아내의 몸이 이렇게까지 된 줄 몰랐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며 죄를 부인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장 상황과 남편 진술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건의 비극성을 더하는 것은 B씨가 남편에게 남긴 편지와 일기 내용이다. SBS 보도에 따르면 최근까지 작성된 글에는 “나 병원 좀 데려가 줘, 부탁 좀 해도 될까”, “죽고 싶다. 죽어야 괜찮을까” 등의 문장이 담겨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면 남편이 아내의 심각한 신체·정신 상태를 인지할 수 있는 충분한 단서가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검찰은 A씨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배우자로서, 또 동거인으로서 최소한의 보호·치료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군검찰 관계자는 피의자의 구체적 진술 내용과 수사 기록은 재판 절차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고,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가족 내 간병·돌봄 책임을 둘러싼 형사 책임 범위와, 방임이 어느 수준에서 ‘살인에 준하는 범죄’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장기간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한 상황에서 보호자이자 군인 신분인 배우자가 어떤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지, 군 내부 복지·상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도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군 조직 특성상 장병의 개인·가정 문제에 대한 조기 발견과 개입 시스템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족과 지인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더불어, 비슷한 유형의 가정 내 방임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군사법원은 향후 공판에서 B씨가 남긴 편지와 일기, 의료 기록, 현장 사진과 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A씨가 아내의 심각한 상태를 어느 정도까지 인지했는지,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를 집중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군과 수사당국은 정확한 사망 경위와 방임 경과를 추가로 확인하며 법적 책임 범위를 가려나갈 방침이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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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부사관#군검찰#군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