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헌법에 영토 조항 넣으면 NLL 국경분쟁 우려"…전문가, 김정은 구상에 경고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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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군사적 긴장의 뇌관으로 지목돼온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둘러싸고 새로운 충돌 가능성이 제기됐다. 북한이 내년 초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할 경우, 남북 간 해상 경계선 인식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서해에서 국지적 분쟁이 격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1일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개최한 제76차 통일전략포럼에서 발표를 통해 북한의 차기 헌법 개정 방향을 이렇게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9차 당대회의 당 규약 개정, 이어 최고인민회의의 헌법 개정에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하면 영토 조항, 북한식 표현으로 주권행사영역이 개정 사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특히 북한이 헌법상 영토 개념을 명문화할 경우, 그 적용 범위에 서해 NLL을 부정하는 해상 경계선이 포함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은 NLL을 내해로 하는 국경선을 획정했을 개연성이 크고, 이렇게 되면 NLL을 항해하는 우리 군함과 어선은 북한 입장에서 국경선을 침범한 것이 된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서해상에서 심각한 국경분쟁이 예상되고, 이는 남북관계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NLL 인근에서 통상적인 경계 활동과 조업을 벌이는 우리 군과 민간 선박이 북한의 새 헌법 조항을 근거로 잦은 경고·위협에 직면할 수 있으며, 우발적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다.

 

북한 내부 논의의 배경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존 발언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영해·영공 규정이 없다며 "헌법의 일부 내용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이 발언을 상기하며 내년 초로 예상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시 김 위원장은 남측을 향해 한층 강경한 메시지도 던졌다. 그는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 도발"이라고 위협했다. NLL 전면 부정을 넘어, 남측의 통상적 활동까지 전쟁 도발로 규정하겠다는 강경 기조를 드러낸 셈이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남측과 미국을 향해 내걸고 있는 정치·군사적 요구의 성격도 짚었다. 그는 북한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미 전략자산 전개 중단, 비핵화 언급 금지 등을 요구해 왔다며,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요구 조건들이 유지되는 한 대화 재개 가능성은 낮고, 군사적 긴장은 상시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내년 한 해 남북관계 전망과 관련해 "너무 비관적"이라고 표현했다. 대북 제재와 한미동맹 강화 기조,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내부 체제 결속 전략이 맞물리면서, 헌법 개정과 NLL 문제를 매개로 한 대치 국면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치권과 안보 당국은 북한의 헌법 개정 움직임과 서해 해상교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 NLL을 실질적 해상 군사분계선이자 영해 수호선으로 간주해 왔고, 한미동맹 차원의 대비 태세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 헌법이라는 최고 규범에 남북 해상 경계 문제를 규정할 경우, 향후 서해상 사건·사고 때마다 법적·정치적 공방이 더 격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포럼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은 내년 초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여부와 헌법 개정 수위에 따라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북한의 헌법 개정 동향과 서해 NLL 인식 변화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군사적 충돌 방지 장치와 외교·안보 대응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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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김정은#북방한계선n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