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누리호 잇는다”…정부·한화, 우주안보 동맹 강화 주목
국방 인공지능과 우주 발사체 기술이 한국 우주안보 전략의 양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을 직접 찾아 현장의 요구를 듣고,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을 계기로 우주 수송과 위성 데이터 서비스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민간 중심 우주산업 전환과 국방 AI 경쟁력 강화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3일 오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연구개발 캠퍼스를 방문해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에 기여한 민간 기업의 연구개발 현황을 점검했다. 앞서 11월 27일 누리호 4차 발사는 한국형 발사체의 반복 발사 역량을 확인하며 상용 우주 수송 서비스로 가는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이 성공을 계기로 연구자와 민간기업의 우주·국방 분야 기술 개발을 제도·재정 측면에서 확대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문에서 배 부총리는 ARION SMET로 불리는 다목적 무인차량, AI 기반 L PGW 배회형 정밀유도무기, 누리호 발사체, 소형 SAR 위성 등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핵심 장비와 시스템을 둘러봤다. SAR 위성은 레이더를 활용해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지상을 관측할 수 있는 고해상도 위성으로, 정찰과 재난 대응, 인프라 모니터링 등에서 전략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배 부총리는 국방 AI와 초소형 위성, 발사체를 한 축으로 묶는 통합 우주 전력 구상이 국가 전략 수준으로 격상되고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한화가 수립한 독자 국방 AI 행동계획이 공유됐다. 여기에는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인프라 구축, 전장 상황 인지와 표적 식별을 자동화하는 알고리즘 개발, 유무인 복합체계 운용을 위한 AI 의사결정 지원 기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배 부총리와 한화 측은 국방 AI 발전을 위해 군사 데이터의 안전한 클라우드 전환, 민간 클라우드 인프라 활용 허용 범위, 알고리즘 검증 체계 등에 대한 정책 건의를 집중 논의했다.
특히 민간 주도 위성영상 데이터 서비스 사업 활성화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SAR와 광학 위성이 수집하는 고해상도 영상은 국방뿐 아니라 농업, 해양, 재난,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데이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위성 영상과 위치정보, 현장 센서 데이터를 융합해 고부가가치 정보를 만들어내는 우주 데이터 플랫폼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부총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방문해 위성총조립시험센터와 위성종합관제실을 점검하고,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에 기여한 직원들을 직접 격려했다. 항우연은 누리호 체계 설계와 시험, 발사 운용을 담당해온 핵심 연구기관으로, 앞으로 민간 체계종합기업과 역할 분담을 조정하며 차세대 발사체와 심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배 부총리는 현장에서 기관 표창을 수여하고 후속 발사 일정과 상용 발사 서비스 전환 계획을 보고받았다.
항우연 간담회에서는 누리호의 지속적인 활용 전략이 핵심 의제로 올랐다. 누리호는 현재 한국이 보유한 유일한 우주수송 수단으로, 향후에는 공공 위성뿐 아니라 민간 통신 위성, 지구 관측 위성, 기술 실증 위성을 반복적으로 쏘아 올리는 상용 발사 서비스 플랫폼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연구진은 발사 간격을 단축하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엔진 수명 검증, 자동 점검 시스템 고도화, 발사장 운영 효율화 등의 과제를 설명했고, 정부와 산업계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발사 수요 예측과 예약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되며 민간 주도의 우주 발사 시대를 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체계종합기업은 발사체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주관사로, 과거 국가 주도로 추진되던 우주 발사 인프라를 산업 생태계 중심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구축해온 상업 발사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 위해 국산 발사체의 신뢰성 확보와 가격 경쟁력 강화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민간 우주기업 중심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가 재사용 로켓과 위성 인터넷 서비스로 우주 인터넷, 저궤도 위성망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유럽과 일본도 자국 발사체와 위성군을 중심으로 우주 안보 체제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누리호는 아직 재사용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반복 발사를 통해 기술 성숙도를 높이고 후속 차세대 발사체에서 재사용 기술을 도입하는 수순이 유력한 로드맵으로 거론된다.
국방 AI와 우주산업 확대에는 규제와 제도 정비 과제도 뒤따른다. 군사·정찰 위성 데이터의 민간 활용 범위, 위성영상과 위치정보를 활용한 서비스의 개인정보 보호 기준, 클라우드 기반 국방 데이터 운용 시 보안 인증 체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우주 발사체와 위성 수출이 늘어나면 해외 수출통제 체제, 우주물체 등록 협약 등 국제 규범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관련 부처와 협력해 우주 안보와 상업화를 동시에 담보하는 법·제도 개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 부총리는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모델 개발과 연구현장 디지털 전환 전략을 우주·국방 분야에 집중 적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발사체 설계 최적화, 구조·열 해석 자동화, 발사 궤적 시뮬레이션, 위성 탑재체 설계 등에서 AI를 활용하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고 실패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방 AI 분야에서도 전장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위성영상과 통신 정보를 통합해 상황 인지 능력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AI 모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배 부총리는 체계종합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도하는 우주 발사 시대가 열린 만큼, 우주 정책과 산업, 안보, 외교 전 분야에서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세계 5대 우주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한 이번 행보가 민간 발사 서비스, 위성 데이터 플랫폼, 국방 AI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우주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질지 산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