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과 환경 되면 한미훈련 조정 논의 가능"…통일부, 비핵화 카드 선 그으면서 여지 남겨
한미연합훈련 조정을 둘러싼 논쟁과 이재명 대통령의 비핵화 표현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맞물렸다. 통일부는 한미 군사훈련을 북한과의 대화 카드로 직접 활용하지 않겠다는 안보 라인의 기조를 인정하면서도, 향후 조건에 따라 조정 논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모양새를 보였다.
윤민호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연합훈련 조정 문제와 관련한 질의에 "앞으로 조건과 환경이 되면 이런 부분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훈련을 당장 조정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남북대화 국면 조성 여부에 따라 협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을 비친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민호 대변인의 이날 언급은 전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밝힌 기조와 맞물린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7일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한미연합훈련을 한반도 비핵화 추진을 위한 카드로 직접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연합훈련의 전략적 의미를 유지하되, 비핵화 협상용 지렛대로는 쓰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연합훈련의 외교·정치적 파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윤 대변인은 "한미연합훈련은 군사적 측면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훈련 성격상 억지력 확보가 핵심이지만, 동시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사안인 만큼 향후 남북, 북미 협상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셈이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한미 군사훈련과 북미 대화의 병행 가능성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정 장관은 당시 발언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서 북미 회담으로 갈 수는 없다"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나 시기 조정 등 일정한 변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위성락 안보실장이 연합훈련을 비핵화 추진 카드로 직접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청와대 안보 라인과 통일부 장관 간 인식 차이가 드러졌다는 분석도 따라붙었다. 통일부 대변인이 "조건과 환경"을 전제로 조정 가능성을 언급하며 여지를 남기면서도, 위 실장의 발언에 대해 추가 해석을 자제한 대목은 내부 기조 정합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비핵화 표현을 둘러싼 해석도 도마에 올랐다. 윤민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이 전통적인 '한반도 비핵화'를 대체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관련 언급을 상기한 뒤 "(두 표현이)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표현상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정책 기조 변화로 확대 해석하는 데 선을 긋는 태도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상태를 종식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추구하며 공고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연설문에는 '비핵화'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아, 대북정책 기조 변화 여부를 둘러싸고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핵 없는 한반도'와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국제사회에서 공유돼온 비핵화 프레임과 어떻게 조응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자국을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며 기존 비핵화 합의의 의미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표현 변화가 향후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논리적 근거로 활용될지에 대한 관측이 제기된다. 통일부가 두 표현의 의미 차이를 축소한 것도 이런 논쟁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향후 한미연합훈련과 비핵화 표현을 둘러싼 논의는 내년 한반도 정세와 직결될 전망이다. 한미 간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면서도 남북, 북미 대화 재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훈련 규모와 시기, 명칭 조정 등 구체적 협의가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안보 상황 변화를 지켜보며, 필요 시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한미훈련 조정과 비핵화 정책 표현 정비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