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코골이 듣고 진단"…종근당, 디지털 수면무호흡 공략
인공지능 기반 수면 진단 기술이 만성질환 관리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다. 스마트폰만으로 수면 중 호흡 소리를 분석해 수면무호흡증 위험을 조기 선별하는 디지털 의료기기가 상급종합병원을 시작으로 실제 진료 현장에 빠르게 안착하는 흐름이다. 제약사는 해당 기술을 자사 만성질환 포트폴리오와 접목해 융복합 진료모델을 구축하려는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디지털 헬스케어와 제약 산업 간 결합이 본격화되는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종근당은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과 수면무호흡증 디지털 진단보조 의료기기 앱노트랙의 국내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양사는 이번 계약을 통해 국내 의료현장에 디지털 기반 조기진단 체계를 깔고 수면무호흡증과 고위험 만성질환을 통합 관리하는 진료모델을 확산하겠다는 구상이다. 대상은 전국 병원과 의원 전반으로 설정됐다.

앱노트랙은 수면 중 발생하는 호흡 소리를 스마트폰 마이크로 수집한 뒤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수면무호흡증 위험도를 조기에 가려내는 디지털 진단보조 의료기기다. 환자가 별도의 장비를 착용하거나 수면다원검사실에 입실하지 않아도 자택 등에서 자체적으로 수면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집된 데이터는 의료기관으로 전달돼, 의사가 고위험군 환자를 빠르게 추려 후속 수면다원검사와 약물 요법, 양압기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데 참고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수면다원검사 중심의 오프라인 검사 방식이 가진 접근성, 비용, 검사 대기시간 등의 한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수면무호흡 동반 위험이 높은 만성질환군을 대상으로 1차 선별검사 도구로 사용하면, 진단이 지연되는 환자를 줄이고 실제 수면다원검사가 필요한 대상자를 효율적으로 추리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실제로 수면무호흡증은 낮 시간 졸림뿐 아니라 심혈관 사건 위험 증가와 연관돼 있지만, 정밀 검사를 위한 병원 방문 장벽이 높았던 영역으로 꼽힌다.
앱노트랙은 단순 선별용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디지털 수면케어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양압기 치료 등 표준 치료법과 연계해 중장기적으로는 경과 모니터링과 치료 반응 관찰까지 한 번에 다루는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진단 시점의 단발성 정보 대신, 치료 전후 수면 패턴 변화를 장기적으로 추적해 치료 전략을 조정할 수 있어 데이터 기반 맞춤형 진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 측면에서 앱노트랙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은 바 있다. 혁신의료기기 제도는 기존에 없던 기술적 개념이나 진단 방식을 도입한 의료기기에 대해 개발과 임상 적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앱노트랙은 스마트폰 단독 사용을 전제로 2등급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했으며, 비급여 처방 항목까지 승인을 마쳐 올해부터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실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가운데 스마트폰 단독 기반으로 제도권 의료기기와 처방 체계에 동시에 진입한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기술 성능도 일정 수준 입증된 상태다. 앱노트랙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다기관 임상시험과 더불어 약 600만 건의 실제 수면 사운드 데이터, 1만 건 이상의 병원 수면다원검사 데이터를 통해 학습됐다. 그 결과 민감도 87퍼센트, 특이도 92퍼센트, 음성예측도 97퍼센트 수준의 성능을 구현한 것으로 보고됐다. 민감도는 질환이 있는 환자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비율, 특이도는 질환이 없는 사람을 잘 가려내는 비율, 음성예측도는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온 사람이 실제로도 질환이 없을 확률을 의미한다. 특히 1차 선별도구의 특성상 고위험군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면서도 불필요한 정밀검사로 이어지는 오검출을 줄이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의료현장에서의 실사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학술적 검증도 진행돼 왔다. 앱노트랙 관련 연구 결과는 SCI급 국제학술지와 세계수면학회를 포함한 다수 국제학회에서 수십 편 이상 발표됐다. 글로벌 수면의학 커뮤니티에서도 스마트폰 기반 수면 사운드 분석이라는 새로운 진단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향후 해외 진출과 규제 승인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반 데이터로 평가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마트워치, 반지형 웨어러블, 침대 센서 등 다양한 형태의 수면 추적 기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상당수는 건강관리용에 머물며 의료기기 인허가와 처방 체계 진입에는 제한이 따르고 있다. 유럽과 미국 일부 기업이 수면무호흡 조기 선별을 위한 알고리즘을 선보이고 있으나, 영상 기반이나 웨어러블 의존도가 높아 환자 순응도와 비용 측면에서 제약이 존재한다. 스마트폰 단독 기반, 규제 허가, 처방 구조를 모두 확보한 국내 사례는 글로벌 디지털 수면의료 경쟁에서 차별적 포지션을 노릴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이슬립은 디지털 기술 중심 수면의료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제약사, 의료기관과의 파트너십을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에이슬립은 의료현장 네트워크와 영업 역량을 가진 종근당을 유통 파트너로 확보하며, 제품 보급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종근당은 앱노트랙을 자사 만성질환 치료제 포트폴리오와 연계해 수면무호흡 동반 당뇨, 고혈압, 심부전 등 환자를 대상으로 한 통합 질환 관리 모델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수면무호흡증은 비만과 대사질환, 심혈관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으나, 다수 환자가 진단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선별검사를 통해 내과 외래나 만성질환 클리닉 방문 시 동시에 수면 위험군을 추출하는 모델이 작동할 경우, 제약사 입장에서는 치료제 처방뿐 아니라 진단 전후 전체 치료 여정을 포괄하는 서비스 기반 비즈니스로 확장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특히 국내외 제약사가 주목하는 리얼월드데이터 확보 측면에서도, 디지털 수면 데이터는 장기 추적 가치가 높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에이슬립 이동헌 대표는 이번 계약을 디지털 기반 수면의료가 일상 진료로 들어가는 신호탄으로 규정했다. 그는 조기진단과 치료 모니터링을 하나의 진료모델로 연결해 환자에게는 더 나은 치료, 의료진에게는 더 정밀한 판단, 제약사에는 확장 가능한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종근당 김영주 대표는 파트너십을 통해 디지털 의료기기 전문성을 강화하고, 만성질환 치료제 포트폴리오를 IT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진료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는 여전히 변동성이 큰 영역이다. 원격 모니터링, 비대면 진료, 데이터 2차 활용 등과 연결될 경우 개인정보 보호와 의료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더 깊어질 수 있다. 다만 혁신의료기기 지정과 의료기기 허가, 비급여 처방 승인까지 확보한 앱노트랙 사례는 향후 유사한 수면·호흡·심혈관 디지털 기기의 제도권 진입에 참고 모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는 수면무호흡증 디지털 진단보조기기가 실제로 전국 의료기관에 안착해 만성질환 관리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