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침해조사팀 신설한 과기정통부…해킹 대응 체계 전면 개편
사이버 공격이 통신과 유통, 금융까지 일상을 직접 겨냥하면서 정부가 정보보호와 미래 전략기술을 동시에 강화하는 조직 개편에 나섰다. 최근 SK텔레콤과 KT, 롯데카드, 쿠팡 등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정보유출 사고를 계기로, 해킹 대응 전담 조직을 새로 꾸리고 연구개발 체계를 국가 전략기술 중심으로 재정비해 산업·사회 전반의 디지털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AI와 바이오,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기술 경쟁력과 사이버 방어 능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3일 반도체 이후 우리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전략기술 육성과 급증하는 사이버 침해사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전면 손질한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한 과기정통부 직제 개정안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직제 시행규칙과 함께 30일 시행된다. 새로 구성되는 바이오융합혁신팀과 사이버침해조사팀은 내년 1월 1일자로 공식 출범한다.

연구개발정책실은 미래전략기술 육성 기능을 대폭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개편된다. 기존 공공융합연구정책관을 미래전략기술정책관으로 바꾸고, 이 조직이 첨단바이오, 청정수소, 핵융합, 소형모듈원자로 같은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육성하는 역할을 전담하도록 했다. 공공융합기술정책과 역시 미래전략기술정책과로 전환해 전략기술 관련 정책의 최상위 방향을 제시하고 개별 연구개발 사업과의 연계를 설계하는 상위 컨트롤 타워 기능을 맡는다.
첨단바이오 분야는 세분화해 역할을 나눈다. 기초원천연구정책관 산하에 있던 첨단바이오기술과를 미래전략기술정책관으로 이관하고, 이 가운데 생명연구자원 관련 업무를 담당할 독립 조직으로 바이오융합혁신팀을 신설한다. 첨단바이오기술과는 AI와 바이오 융합, 역노화와 같은 태동기 신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바이오융합혁신팀은 바이오 데이터의 생산, 등록, 공유, 활용 등 전주기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유전체와 임상 데이터, 생명자원 정보가 정합성 있게 축적돼야 AI 기반 신약개발과 정밀의료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만큼, 데이터 인프라 전담 조직을 둔 셈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정책 라인도 손본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이 국가연구개발의 중심축으로 재도약하도록 지원하는 연구기관혁신정책과를 새로 만든다. 기존에는 팀 단위로 운영되던 기구를 과 단위 조직으로 격상한 것으로, 연구과제중심제도 단계적 폐지에 따라 출연연의 재정 구조를 정부수탁과제 중심에서 국가전략기술 확보 임무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을 맡는다. 이 과는 연구성과혁신관에서 기초원천연구정책관 산하로 편제를 옮겨 기초·원천 연구정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시너지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해킹 사고 대응 체계는 명칭과 기능을 동시에 손질한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일상을 위협하는 해킹사고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상황을 고려해, 현행 네트워크정책실을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실로 이름을 바꾸고 정보보호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단순 통신 인프라 정책을 넘어, 보안과 네트워크 정책을 결합한 디지털 인프라 관리 체제로 전환하는 셈이다.
핵심은 사이버침해조사팀 신설이다. 과기정통부는 사이버 침해사고 발생 시 신속한 조사와 대응을 전담할 사이버침해조사팀을 새로 만들고, 이 조직에 5명을 배치해 조사·대응 인력을 현재 2명에서 5명으로 확대한다. 신설 팀은 침해사고 원인 분석부터 사고대응, 피해 확산 방지, 복구 지원, 재발방지 대책 수립에 이르는 전 주기 정책을 총괄한다. 그동안 개별 사고에 대한 기술 지원과 제도 개선이 분절적으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디지털 포렌식과 정책 설계를 한 축에서 아우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기존 사이버침해대응과는 역할을 재정의한다. 앞으로 이 조직은 클라우드보안인증,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 등 정보보호 인증제도 운영과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 관리 등 침해사고 예방 중심 정책과 제도를 담당한다. 조사·대응 기능을 사이버침해조사팀으로 넘기고 예방과 관리 체계에 집중함으로써, 사고 이전과 이후를 구분한 이원 구조를 갖추게 된다. 대형 플랫폼과 통신사, 금융 관련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침해사고는 조사팀이 신속히 파고들고, 평상시 보안 수준 관리는 사이버침해대응과가 맡는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조직 개편으로 통신·플랫폼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침해사고에 보다 시의성 있게 대응하고, 침해사고 대응 역량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대응 지원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클라우드 전환과 AI 도입 확산으로 중소 플랫폼과 스타트업도 고도화된 공격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 공공 차원의 조사 역량을 민간에까지 전이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조직 정비가 지난 10월 정부 조직개편으로 과기정통부가 부총리 부처로 승격되고 인공지능정책실이 신설된 데 이어, 과학기술과 인공지능 분야의 국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는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기술 분야 핵심 국정과제 수행 역량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정보보안 현안 대응을 동시에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강화된 조직 역량을 바탕으로 미래 전략산업 선점과 기업 성장 토대 구축, 국민 삶의 질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실제 효과를 두고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출연연 재정 구조 개편과 바이오 데이터 전담 조직 신설로 국가 전략기술 개발의 방향성이 더 명확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보이지만,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인력 확충 폭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다만 해킹 사고 조사와 예방을 분리한 투 트랙 체계와 전략기술 중심의 R&D 구조로의 전환 시도가 본격화된 만큼, 산업계는 이번 조직 개편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보안 수준 향상과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