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죄도 치료 대상”…식약처, 중독관리 전환 가속
마약류 범죄 대응 패러다임이 형벌 중심에서 치료와 재활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의료용 마약류가 체중감량 약물 등으로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상황에서, 중독을 범죄가 아닌 질환으로 다루는 정책 전환이 가속하는 모습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4년 한 해 동안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차단과 함께 사법 절차 이후에도 이어지는 중독자 치료·재활 체계를 강화하며, 마약 문제를 만성 질환 관리와 사회안전망 구축 과제로 재정의했다. 업계와 정책 분야에서는 이를 마약 대응 정책의 분기점으로 본다.
식약처는 마약류 중독을 만성 질환으로 규정하고, 일회성 처벌보다 장기적인 관리와 치료가 재범 억제에 실효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마약류 투약 사범을 범죄자에 한정하지 않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인식해, 보호관찰 종료나 교정시설 출소 이후에도 치료와 재활이 이어지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단속과 처벌은 유지하되, 재활 인프라 확충과 심리·사회적 지원을 병행하는 이중 전략이다.

정책 기반도 손질했다. 식약처는 5월 개정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후속조치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률 개정으로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사회재활 지원 범위는 기존 사회복귀에 더해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유지와 보호까지 확대됐다. 의료용 마약류 처방 시 의사가 사전 투약내역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사유도 보완됐다. 긴급한 사유, 암환자의 통증 완화에 더해 이에 준하는 사유가 명문화되면서, 말기 환자 등 특수 상황에서의 진료 연속성이 강화되는 한편 오남용 통제의 법적 근거도 분명해졌다.
현장에서의 재활 지원은 함께한걸음센터가 맡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내 마약류 중독 사회재활 전담 부서인 이 센터는 마약류 중독자와 그 가족·지인 등 마약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누구에게나 교육, 상담,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해 일상 회복을 돕는다. 식약처는 2020년까지 서울과 부산 2곳에 머물던 센터를 2023년 대전으로 확대했고, 2024년에는 14개소를 추가해 전국 17개소로 늘렸다. 이용자가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 장기 치료의 지속 가능성을 키운 셈이다.
시간과 장소 제약을 줄이기 위한 비대면 지원망도 구축했다. 식약처는 마약류 관련 고민이 있는 국민 누구나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1342용기한걸음센터를 운영 중이다. 24시간 마약류 전화상담센터로, 중독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지인도 전문 상담 인력과 즉시 연결된다. 대표번호 1342에는 일상 전 과정에서 상시적으로 동행하겠다는 의미를 담았고, 초기 문의부터 치료기관 연계, 재발 우려 관리까지 단계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청소년 대상 예방 전략도 공격적으로 확장됐다. 식약처는 청소년이 마약류의 위험성을 조기에 인지하도록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2024년에는 교육부 학생안전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전문 예방교육 강사가 전국 초중고 학생 약 215만 명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전체 재학생 527만 명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교육 내용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실제 사례 중심의 위험 인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유통 방식 이해, 도움 요청 경로 안내 등으로 구성돼, 디지털 환경에서의 마약 노출 위험을 고려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전문 인력 양성도 병행된다. 식약처는 예방 교육 강사와 사회재활 상담사를 체계적으로 키우기 위해 식약처장 인증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인력 심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는 누적 300명 수준으로 규모를 키웠다. 교육과정에는 중독의 의학적 메커니즘, 정신건강 개입, 가족 상담, 지역사회 연계 기법 등이 포함돼 전문성과 표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구조다. 의료계와 복지 분야에서는 이 교육과정이 향후 디지털 치료제, 원격 상담 등 신기술 기반 중독 관리 서비스로도 확장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본다.
공급 측 차단과 신종 마약 대응도 강화됐다. 식약처는 8월 에토미데이트 등 오남용 우려 물질과 제68차 유엔 마약위원회에서 마약류로 지정한 물질을 포함해 총 7종을 마약류로 신규 지정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에토미데이트는 전신 마취 유도제로, 2020년부터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관리됐지만 일부 의료기관에서 프로포폴 대체 수단으로 불법 투약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식약처는 사회적 파급을 고려해 마약류 지정을 선제적으로 단행했다. 국제 협약을 담당하는 유엔 마약위원회의 결정과 발맞춘 조치는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국내 불법 유통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해외직구 식품을 통한 우회 유입도 차단에 나섰다. 9월에는 대마 사용이 합법화된 국가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해외직구 식품 50개를 표본으로 기획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42개 제품에서 마약류 또는 국내 반입 차단 대상 원료·성분이 검출돼 반입 차단 조치가 이뤄졌다. 국내 소비자는 건강보조식품이나 간식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대마 성분 함유 제품으로 판매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디지털 커머스 환경에 맞춘 모니터링과 검사 체계가 필수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사법 시스템과 치료·재활 시스템을 연계한 모델도 확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약물법정 모델을 한국형으로 업그레이드한 사법·치료·재활 연계 참여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 대표적이다. 식약처가 총괄하고 대검찰청,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협력체계 아래 운영되는 이 제도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마약중독자에 대해 기소를 유예하는 대신 개별 중독 수준을 평가해 맞춤형 치료, 사회재활 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부여한다. 2025년 7월 기준 이 제도 적용 대상자는 85명으로 집계됐다.
이 모델은 기존 형사처벌 중심 접근이 가진 재범 방지 한계를 보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고 치료와 재활을 제도적 의무로 설정함으로써, 형사 절차를 중독 관리로 연결하는 경로를 만든 구조다. 다만 사법 부담과 의료·복지 현장의 인력, 예산 한계, 재범자 관리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유럽 등에서 약물법정과 치료 명령제가 운영 중이며, 한국은 여기에 전국 단위 재활센터와 24시간 상담망, 신종 마약 규제 체계를 결합해 통합형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식약처는 마약 중독을 회복 가능한 질병으로 규정하며 적극적인 도움 요청을 권고하고 있다. 마약류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와 가족, 지인은 24시간 마약류 전화상담센터 1342를 통해 전문 상담과 치료 연계를 받을 수 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중독을 개인 일탈이 아닌 보건의료·사회복지 영역이 함께 다뤄야 할 만성질환으로 보는 인식 전환이 제도의 실효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과 제도, 치료와 처벌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마약 대응 체계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