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형 전기 픽업 접는다”…포드, 하이브리드 회귀 선택에 미·중 전기차 구도 요동

배주영 기자
입력

현지시각 기준 16일, 미국(USA) 주요 완성차 업체 포드(Ford)가 대형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사실상 중단하고 하이브리드 및 내연기관 중심으로 전략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등 정책 환경 변화 속에서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위축을 반영한 결정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동화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드는 현지시각 기준 14일 언론 대상 전화 회의에서 전기 픽업 등 대형급 전기차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트럭과 밴, 저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 자원을 재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포드의 내연기관 및 전기차 사업을 총괄하는 앤드루 프릭은 “수익성 확보 가능성이 없는 대형 전기차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하는 대신, 해당 자금을 수익성이 더 높은 분야에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드, 대형 전기차 ‘F-150 라이트닝’ 생산 중단…195억달러 손실 감수하고 하이브리드 전환
포드, 대형 전기차 ‘F-150 라이트닝’ 생산 중단…195억달러 손실 감수하고 하이브리드 전환

영국(UK)의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포드는 이번 전략 전환에 따라 2027년까지 세전 기준 최대 195억달러, 한화 약 28조6천억원 규모의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125억달러는 올해 4분기에 반영되는 전기차 자산 재편 비용으로 산정됐으며, 여기에는 한국(Korea) 배터리 업체 SK온과의 합작사업 종료에 따른 약 30억달러 규모의 비용이 포함된다.

 

배터리 합작 파트너인 SK온은 포드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미국 테네시 공장을 향후 단독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포드와 SK온의 협력 구조가 재조정되면서 미국 배터리 공급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FT는 포드의 결정이 미국 내 완성차·배터리 동맹 구도에 영향을 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략 선회 배경에는 정책 환경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강화됐던 미국 자동차 연비 규제를 완화하고, 내연기관 차량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 기조를 바꾸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말에는 전기차 구매 시 제공되던 7천500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는 세액공제 폐지 이후인 10월 미국 내 전기차 생산량이 전달 대비 약 49%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포드의 대형 전기차 사업은 출범 초기부터 수익성에 난관을 겪어왔다. 대표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은 높은 배터리·부품 비용에 더해 소비자 평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2024년 11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72%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전기차 사업부 ‘포드 e’도 지난해 51억달러, 올해 1∼3분기 36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구조적 부진을 드러냈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 경쟁사와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포드와 경쟁해온 테슬라를 비롯해, 중국(China) 전기차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기차에서 하이브리드·내연기관으로의 회귀는 미국 제조업체의 전략 조정 흐름을 상징하는 사례로 해석된다. FT는 포드의 결정이 대형 전기 픽업 중심 전략의 한계를 드러낸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포드는 대형 전기 픽업 생산을 접는 대신, F-150 라이트닝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전환해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함께 탑재하는 구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주행거리를 늘리고 충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전기차 전용 플랫폼보다 개발·생산 비용을 낮춰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중소형·저가 전기차 중심으로 제품군을 재구성해 치열해지는 가격 경쟁에 대응할 계획이다.

 

유럽(EU) 시장을 겨냥한 전략도 병행된다. 포드는 지난주 프랑스(France) 완성차 업체 르노(Renault)와 손잡고 유럽 시장용 소형 전기차 및 밴을 합작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드는 르노와의 협력을 통해 플랫폼과 부품을 공유해 비용 효율을 높이고,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맞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미국 전기차 지원 축소와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수정이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친환경차 지원 기조를 약화하는 사이, 유럽연합(EU)과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투자를 확대하며 관련 산업 주도권을 노리고 있어, 장기적으로 미·중·EU 3극 간 전기차 패권 경쟁 구도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포드는 사업 재편 이후 전기차 부문의 수익성을 개선해 2029년까지 전기차 사업을 흑자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포드의 선택을 미국 완성차 업계가 단기간 수익성과 장기 전동화 전략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한 신호로 보면서, 향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 질서에 어떤 지각변동을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

배주영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포드#f-150라이트닝#sk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