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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에서 알약으로 진화"...비만약, 내년 K바이오 승부처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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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제약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흔드는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이끄는 주사제 중심 시장은 경구 제형 등장으로 한 단계 진화했고, 국내 제약사들도 후보물질을 앞세워 추격전에 뛰어든 상태다. 비만을 대사질환의 출발점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심혈관·간질환 등 동반질환 적응증 확대가 이어지고 있고, 규제당국은 청소년 확산과 미용 목적 남용을 경계하며 안전관리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을 주사제 독주 구조에서 알약·다중표적 경쟁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본다.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은 2023년 처음으로 300억달러, 한화 약 44조원 매출을 돌파했다. GLP-1 수용체 작용제를 기반으로 한 이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터제파타이드 성분 비만약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2024년 3분기 글로벌 매출이 100억9000만달러, 약 14조8800억원에 달하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제치고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반열에 올라섰다. GLP-1 계열이 혈당 조절을 넘어 체중 감소와 심혈관·대사질환 개선 효과를 동시에 겨냥하는 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GLP-1, 즉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1은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으로, 식후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추며 식욕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제약사는 이를 모사한 합성 펩타이드나 유사체를 개발해 체내에서 장시간 작용하도록 설계했다. 기존 비만약이 중추신경 자극이나 지방 분해에 직접 작용해 부작용 우려가 컸던 것과 달리, GLP-1 계열은 혈당·체중·대사지표를 동시에 개선하는 기전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왔다. 여기에 GIP, 아밀린 등 다른 호르몬 수용체까지 동시에 겨냥하는 다중 작용제는 체중 감소 효과와 내약성에서 한층 진화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 확대의 또 다른 축은 적응증 확장이다. 위고비는 2024년 8월 대사이상 지방간염, MASH 치료 용도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했다. 2023년 10월에는 미국과 국내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 성인 환자의 주요 심혈관계 사건 위험을 낮추는 목적의 적응증도 추가했다. GLP-1 비만약이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간질환과 심혈관질환 관리의 플랫폼 약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운자로 역시 2023년 12월 FDA로부터 수면무호흡증 최초의 치료제로 허가를 받으며 대사질환 전반을 겨냥하는 전략을 강화했다.

 

특히 이번 시장 변화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주사제 중심 구조가 경구 제형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집계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비만 치료제 가운데 피하주사 제형은 95개, 경구 제형은 71개로, 알약 파이프라인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투약 편의성과 순응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경구형은 대규모 만성질환 환자군을 상대로 시장 저변 확대를 이끌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노보노디스크는 12월 22일, 현지 기준으로 미국 FDA에서 먹는 위고비, 성분명 세마글루티드 경구제 승인을 받았다. 과체중 감소와 장기적인 체중 유지,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 감소 목적이 동시에 인정된 최초의 경구 GLP-1 작용제다. 1일 1회 복용하는 알약 형태로 내년 1월 초 출시가 예고돼 있어, 자가 주사에 부담을 느끼던 환자까지 포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라이릴리도 먹는 GLP-1 후보 오포글리프론에 대해 FDA에 허가를 신청하고 상업화를 준비 중이다. 주사제에 비해 생산과 물류에서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한 경구 제형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구도다.

 

국내 제약사들은 다국적사의 주사제·알약 양면 공세 속에서 K바이오 비만 플랫폼 확보를 노리고 있다. 일동제약은 신약 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비만·당뇨를 동시에 겨냥한 경구 GLP-1 후보 ID110521156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초기 단계이지만 국산 경구 GLP-1을 목표로 한 점에서 향후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협상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종근당은 별도 경구 GLP-1 물질 CKD-514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디앤디파마텍의 경구 GLP-1·GIP 이중작용제 MET-GGo는 전임상에서 약 101시간의 긴 반감기를 확인했다. 투약 간격을 늘려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주사제 분야에서는 한미약품이 가장 앞서 있다는 관측이 많다. 한미약품은 12월 17일 GLP-1 계열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성분으로 하는 한미 에페글레나타이드 오토인젝터주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산 GLP-1 비만약으로, 인허가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국내 시장에서 첫 국산 GLP-1 주사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기업과 달리 국내 시장 침투 전략에 특화된 보험·유통 모델을 결합할 경우 일정 부분 수요 흡수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요 측면에서 비만치료제는 이미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7월부터 9월 사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1퍼센트 성장했다. 위고비가 3분기 1420억원 매출을 기록해 전체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했고, 8월 국내 출시된 마운자로는 같은 기간 284억원 매출을 올렸다. 10월에는 위고비가 12세 이상 청소년까지 투여 가능한 적응증을 확보하면서, 청소년 비만 치료 영역에서도 수요 확대가 예상된다.

 

공급 확대와 함께 우려되는 부분은 오남용과 부작용 리스크다. 체질량지수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미용 목적 사용,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비의학적 정보 확산, 해외 직구를 통한 비허가 제품 유입 등이 대표적이다. GLP-1 계열 특성상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 위장관계 부작용과 췌장 관련 이상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장기 복용자 관리가 규제당국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이상사례 집중 모니터링 대상으로 지정하고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과 함께 부작용 데이터를 상시 수집·분석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사용 확대와 맞물려 안전 사용 가이드라인과 오남용 방지 홍보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12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관세청과 협력해 해외에서 저가로 구입하는 비만약 직구를 차단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보건복지부와 협업해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비대면 진료 품목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처방을 통한 과잉 사용과 중복 처방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교육부와의 공조도 병행된다. 식약처는 비만치료제 안전사용 리플릿을 각급 학교에 배포하고, 여성가족부와 협력해 청소년1388 통합정보망과 e청소년 활동정보 서비스에 비만치료제 맞춤형 안전사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장기간 체중감량 약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는 만큼, 약물치료보다 생활습관 교정을 우선하는 교육 메시지를 병행하는 방향이다. 오 처장은 여러 부처가 긴밀하게 협력해 비만 치료제 안전 관리에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GLP-1 계열이 비만을 독립 질환이 아니라 심혈관, 간, 수면질환 등과 연결된 만성 대사질환의 출발점으로 보는 의료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고 본다. 동시에 고가 약가와 건강보험 재정 부담, 약물 의존적 체중관리 문화 고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경구 제형과 다중표적 후보 파이프라인을 앞세워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고, 정부는 안전성과 비용효과를 기준으로 급여·비급여 경계를 조정할 과제를 안고 있다. 기술과 시장의 속도에 맞춘 제도 정비가 이뤄질 경우 K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진입 기회가 커질 수 있지만, 규제 완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윤리·사회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계는 비만치료제가 주사에서 알약으로, 단일 타깃에서 다중 대사질환 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의료 현장과 제도권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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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치료제#glp-1#위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