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12세 전 스마트폰 사용”…아동 우울·비만 위험 경고

신도현 기자
입력

스마트폰을 만 12세 이전에 사용하기 시작한 아동은 우울증과 비만, 수면 부족 등 정신·신체 건강 위험이 높아진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모바일 기기가 사실상 ‘디지털 필수재’가 된 상황에서, 아동기의 조기 미디어 노출이 뇌 발달과 건강 궤적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과학적 경고가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유치원 이전부터 하루 3시간이 넘는 미디어 이용이 일반화된 만큼, IT 기기 활용과 디지털 헬스케어 관점에서 ‘적정 노출 기준’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소아과학회 학술지 소아과학은 1일 미국 아동·청소년 약 1만 5000명을 추적한 뇌 인지 발달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이른 나이에 스마트폰을 소유한 집단에서 비만, 수면 장애, 우울 증상 등 건강 지표가 통계적으로 나빠지는 경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분석에는 미국 전역에서 모집된 아동의 뇌 영상, 인지 능력 검사, 생활습관 및 정신건강 설문 데이터가 복합적으로 활용됐다.  

특히 만 12세 이전 스마트폰을 소유한 아동의 경우, 기기를 가진 시점이 빠를수록 체질량지수 증가와 수면 시간 감소가 뚜렷해지는 패턴이 포착됐다. 스마트폰을 갖게 된 중위 연령은 11세였으며, 이 기준보다 더 빠른 소유 집단에서 위험도 상승 폭이 컸다. 연구진은 12세까지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았더라도 이후 1년 안에 기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우울감,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경험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도 함께 관찰했다.  

 

연구를 이끈 란 바질레이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청소년기 뇌 발달의 취약성을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기는 비교적 작은 환경 변화도 장기적인 신경 발달과 정서 조절 능력에 큰 영향을 남길 수 있는 민감한 시기라며, 같은 4년 차이라도 12세와 16세 사이의 발달 격차는 성인기의 42세와 46세 차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정 연령 이전의 과도한 디지털 자극이 수면 리듬, 식습관, 사회적 상호작용 패턴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스마트폰 조기 사용이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로로는 화면 앞 시간 증가에 따른 신체 활동 감소, 야간 사용에 따른 청색광 노출로 수면 호르몬 분비 교란,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콘텐츠 소비로 인한 비교·불안·충동성 강화 등이 거론된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인과관계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연령대별 스마트폰 접근 시점을 조절할 공중보건 전략 수립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아동의 경우 이미 세계보건기구 권고 수준을 크게 웃도는 미디어 이용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23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국내 3세에서 4세 아동의 하루 평균 미디어 이용 시간은 184.4분으로, WHO가 제시한 ‘만 5세 미만 하루 1시간 이내’ 권고의 3배를 넘었다. 3세에서 9세 아동 전체의 평균 미디어 이용 시간도 185.9분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기기는 스마트폰으로 응답 비율이 77.6퍼센트에 달했다. 3세에서 9세 아동의 75.3퍼센트는 유튜브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83분으로 나타났다. 동영상 플랫폼 중심의 시청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의력 저하, 수면 지연, 과도한 간식 섭취와 같은 생활 패턴 변화가 중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선 미국 연구 결과와 결합해 건강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호자들이 미디어 사용을 허용한 이유를 보면,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50.8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아이가 할 일을 모두 마치거나 말을 잘 들었을 때 보상으로 제공한다는 답변이 38.5퍼센트였고, 새로운 정보를 얻고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가 23.0퍼센트를 차지했다. 교육용 앱과 동영상 등 ‘학습 기회’로서의 긍정적 인식과, 양육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디지털 보모’ 역할이 뒤섞여 있는 셈이다.  

 

실제 사용 상황을 보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돌아온 직후가 39.9퍼센트로 가장 빈번했다. 식당, 병원, 종교시설 등 공공장소에서의 사용이 27.4퍼센트, 이동 중 사용이 25.0퍼센트로 뒤를 이었다. 등하원 직후나 대기 시간, 이동 시간에 스마트폰이 쉽게 꺼내는 ‘시간 메우기 도구’로 자리 잡은 구조다. 이 같은 패턴은 운동과 야외 활동, 부모와의 대화 시간, 또래와의 놀이 시간이 디지털 화면으로 대체될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한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연령별·상황별 ‘적정 사용 시간과 방식’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아동에게 필요한 신체 활동, 또래 놀이, 부모와의 대면 상호작용 시간을 우선으로 확보한 뒤, 학습 보조나 창작 활동 등 목적이 분명한 영역에서만 미디어를 쓰도록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분 전환이나 단순 시간 때우기용 사용과 교육·치료 목적 사용을 구분하는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IT와 바이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아동기 미디어 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건강 모니터링 서비스, 사용 시간 자동 조절 솔루션, 연령별 콘텐츠 가이드라인 등 새로운 기술·서비스 수요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스마트폰 제조사와 플랫폼 기업이 아동 모드, 야간 모드, 사용시간 제한 기능의 기본값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공중보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동·청소년 정신의학계에서는 조기 스마트폰 노출을 포함한 디지털 환경이 향후 우울증과 불안장애, 수면장애, 비만 등 질환 부담을 구조적으로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연령별 뇌 발달 단계와 생활환경을 반영한 세분화된 가이드라인, 학교·가정·지자체가 연계된 미디어 교육 체계, IT 기업의 자율 규제와 법·제도 장치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 의료계가 기술 편의성과 건강 리스크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따라, 차세대의 디지털 복지 수준이 갈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와 교육 현장은 아동 스마트폰 사용이 실제 건강 지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하며 제도와 서비스 설계 방향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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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abcd연구#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