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기한까지 조작”…식품위생 디지털 관리 필요성 확대
식품 소비기한을 임의로 늘리거나, 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해 빵을 만들어 판매한 업체들이 적발되면서 유통 전 과정에 대한 디지털 기반 안전관리 체계 강화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위조·훼손이 가능한 종이 표기와 수기 관리만으로는 복잡해진 식품 공급망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QR코드와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 IT 기술을 접목한 실시간 추적 시스템이 사실상 필수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는 식품위생 관리가 단속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상시 모니터링 체제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기한이 지난 수입 식품을 재포장해 판매하거나, 이를 원료로 식품을 제조·판매한 A사와 B사 임직원을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관련 정보 제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해 수입·보관·제조·유통 전 단계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 A사는 자사가 수입해 창고에 보관 중이던 기타코코아가공품 등 수입식품 2종 약 19톤의 소비기한이 지나자, 제품 겉포장에 인쇄된 소비기한을 잉크로 지운 뒤 핸드마킹기를 이용해 최대 13개월까지 연장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래 소비기한이 2024년 7월 31일이었던 제품을 2024년 9월 30일, 2024년 10월 31일, 2025년 8월 31일 등으로 단계적으로 늘려 표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소비기한을 변조한 수입식품 2종은 이후 식품제조·가공업체 2곳에 당류가공품 3종, 약 27톤 규모로 납품돼 일부는 시중 유통까지 이뤄졌다. 식약처는 이 중 약 2톤, 금액으로는 1650만 원 상당이 식품유통업체 등에 판매된 것으로 파악했다. 변조된 소비기한 정보가 원료 단계에서부터 잘못 입력되면서, 이후 유통 이력 전반에도 왜곡이 이어진 셈이다.
A사는 또 하위 식품제조·가공업체가 수입식품의 수입신고확인증을 요구하자, 소비기한 연장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관련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디지털 편집 기술을 악용해 감독기관 제출용 문서와 거래처 제공문서를 위조한 사례로, 단순 라벨 훼손을 넘어 전자문서 신뢰 체계까지 위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규제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A사는 보관 중이던 위반 제품 1종 약 24톤을 전량 자진 폐기했다. 식약처는 이미 판매된 2종 제품에 대해서는 추가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회수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요청했다. 다만 원료가 베이커리 등 2차 제조공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용 제품으로 변환된 뒤에는 개별 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생산 단계부터 유통 채널 전반을 아우르는 디지털 이력 관리 시스템의 도입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식약처는 또 B사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매장에서 소비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해 빵류 140개를 제조, 판매한 사실도 적발했다. 판매 규모는 약 76만 원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매장 단위의 일상적인 보관·재고 관리 과정에서 기한 경과 원료 사용이 이뤄졌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관할 기관은 B사에 대해 영업자 준수사항 및 식품 보관·관리기준 위반으로 행정처분 절차에 들어갔다.
식품 안전 관리의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여전히 수기로 기입하는 소비기한 표기와 육안 점검 중심 관리 방식의 취약점을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잉크를 지우고 다시 찍는 방식의 기한 연장은 전통적인 라벨 인쇄 구조를 악용한 것으로, 전자 태그나 위변조 방지 잉크, 중앙 서버와 연동된 실시간 코드 검증 체계가 구축됐다면 탐지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식품 안전 분야에서는 바코드보다 진화한 QR코드, RFID 전자태그, 블록체인 기반 유통이력 기록 등 IT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생산 단계에서 소비기한과 제조번호를 암호화해 기록하고, 유통·보관 과정에서 이 정보가 변경될 경우 실시간으로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글로벌 식품사 중에는 창고 출고나 매장 입고 시 스캐닝만으로 유통기한 임박 제품을 자동 선별하는 인공지능 재고 관리 솔루션을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식품 안전과 관련된 디지털 트레이서빌리티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추세다. 미국은 식품안전현대화법을 바탕으로 특정 고위험 식품에 대해 공급망 전 단계의 기록 유지와 신속 추적을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역시 식품 이력 추적을 위한 전자 시스템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스마트 HACCP, 디지털 식품 이력관리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지만, 중소 수입·제조업체와 소규모 매장까지 촘촘히 연결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소비기한 표시 제도 개편과 디지털 관리 인프라 구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비기한은 식품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한을 의미하기 때문에, 단순 날짜 표기만으로 책임을 묻기보다 유통과 보관 과정 전반에서 실제 온도, 습도, 이동 시간 등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유통 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안전성을 평가한다면, 위조된 날짜와 상관없이 위험 신호를 포착할 여지가 커진다.
식약처 관계자는 앞으로도 식품 불법 제조·유통을 원천 차단해 국민이 안전한 식품을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감독과 조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식품·IT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이력관리, 위변조 방지 기술, 인공지능 기반 점검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제도 논의가 함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새로운 기술과 제도의 균형이 식품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합리적 규제 환경을 만드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