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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감금 보이스피싱”…경찰, 오프라인 경보망으로 막았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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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금융사기가 정교해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피해자를 원격 통제하는 이른바 셀프감금 수법까지 동원하는 가운데, 경찰이 오프라인 전단지와 숙박업소 협력망을 통해 피해를 차단한 사례가 공개됐다.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금융범죄를 전통적인 방식의 경보 인프라로 막아낸 사례로, 온라인 중심이던 금융보안 전략을 생활 공간 전반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와 수사기관은 통신 인프라, 모바일 메신저, 인터넷전화 등을 악용하는 보이스피싱이 고도화되는 국면에서 물리·디지털 복합 대응 체계가 향후 범죄 예방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은 24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서울의 한 숙박업소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예방 사례를 영상으로 소개했다. 해당 사례에서 한 남성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인물을 실제 수사기관 소속으로 믿고, 지시에 따라 숙박업소에 투숙하기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다. 전화를 건 인물은 스스로를 경찰이라고 주장하며 남성에게 일정 시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숙박시설에 머물 것을 요구했고, 피해자는 이 요구를 수사 절차의 일부로 오인해 따를 뻔했다.  

숙박업소를 찾은 남성은 통화를 이어가던 중 객실 인근 벽면에 부착된 전단지에 시선을 멈췄다. 전단지는 인근 지구대가 직접 제작해 배포한 보이스피싱 예방 포스터로, 수사기관은 투숙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전화를 받고 있다면 보이스피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피해자는 전단지 내용을 확인한 뒤 자신이 처한 상황이 포스터에 적힌 사례와 동일하다는 점을 직감했고,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인지했다.  

 

이 남성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통화는 끊지 않은 채 숙박업소 사장에게 다가가 전단지 내용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가리키며 위험 신호를 보냈고, 이를 눈치챈 사장이 즉시 112에 신고했다. 신고 이후에도 피해자는 가짜 경찰과의 통화를 계속 이어가며 혼란스러워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실제 경찰관을 직접 확인한 뒤에야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전화를 넘겨받자 상대방은 곧바로 통화를 종료해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연결은 즉시 차단됐다. 금전 이체나 계좌 정보 유출 등 금융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감금에 준하는 심리적 통제 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범죄가 중단된 셈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추가 피해 방지용 안내문을 제공하는 한편, 숙박업소 측과도 향후 유사 상황 인지 시 신속 신고를 당부했다.  

 

이번 사례는 지구대가 사전에 준비한 예방 홍보 활동과 숙박업소 관계자의 신속한 대응이 결합해 보이스피싱을 저지한 구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전단지 한 장이 피해자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온라인 캠페인 위주였던 금융사기 예방 전략을 생활 공간 내 오프라인 경보 체계와 연동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통신 기술과 심리 조작 기법을 결합하면서, 단순한 전화 사기를 넘어 디지털 감금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셀프감금 수법은 피해자를 숙박업소나 오피스텔 등에 장기간 머물게 하면서 외부 연락을 차단하도록 지시하고, 모바일 기기와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피해자는 수사기관 협조나 신변 보호 조치로 인식해 자발적으로 격리 상태에 들어가며, 그 사이에 조직은 계좌 이체, 대출 실행, 대포 계좌 개설 등 금융 범죄를 병행한다.  

 

국내외 금융보안 업계는 통신 기록 패턴 분석, 이상 거래 탐지, 전화번호 스푸핑 탐지 등 정보통신 기반 기술을 활용해 이런 보이스피싱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범죄 조직 역시 인터넷전화, 가상번호, 해외 서버 등을 적극 활용하며 탐지를 회피하고 있어 현장 대응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숙박업소, 편의점, 무인점포 등 일상적인 공간이 범죄 실행의 무대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오프라인 사업자와 수사기관 간 협력 모델이 새로운 보안 인프라로 작동하는 추세다.  

 

경찰청은 이번 사례를 계기로 지구대와 파출소를 중심으로 한 생활권 예방 홍보를 강화하고, 숙박업소와 금융기관, 통신사와의 공조 체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셀프감금형 보이스피싱이 집중 발생하는 지역과 업종을 중심으로 전단지, 안내 스티커, 체크리스트 등 다양화된 정보 전달 수단을 투입해 피해자가 스스로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와 수사당국은 보이스피싱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사이버 금융범죄로 자리 잡은 만큼, 기술 기반 탐지 시스템과 더불어 생활 공간 전반에 걸친 경보 인프라, 교육, 신고 연계망이 동시에 가동돼야 실질적 예방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결국 기술의 속도 못지않게, 범죄 유형 변화에 맞춘 사회적 대응 구조와 현장 인식 제고가 병행돼야 금융사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와 수사기관 모두, 보이스피싱과 같은 디지털 사기 범죄에 맞선 기술과 제도의 균형이 새로운 금융 보안 생태계의 성패를 가를 조건이 되고 있다고 본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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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보이스피싱#셀프감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