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우주 제조로 미래 연다"…제주, 소형위성 거점 승부수

김태훈 기자
입력

우주 발사와 위성 데이터 산업이 제주 경제 구조 전환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관광 의존에서 벗어나 소형위성 발사와 관제,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처리, 우주 관광까지 한 번에 엮는 우주산업 체제를 구축해 장기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적도에 가장 가까운 국내 지역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활용해 해상 발사 인프라를 키우고, 국가위성운영센터와 위성항법 지상센터, 민간 우주제조 공장을 한데 모아 국내 최초의 지역 밀착형 우주 제조·데이터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전략에 속도가 붙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2일 우주항공청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제주형 우주산업 전략을 공개했다. 그는 제주가 관광 수요만으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고 지적하며, 우주를 제조업 기반과 첨단 서비스 산업을 동시에 키울 수 있는 최적 분야로 제시했다. 오 지사는 제주에서 개발한 소형위성을 제주 앞바다에서 해상 발사하고, 제주에 구축된 운영센터에서 관제와 데이터 처리를 수행한 뒤, 이를 관광·교육·스타트업 사업으로 확장하는 폐쇄형 가치사슬을 목표로 제시했다. 한 지역에서 발사와 관제, 데이터 활용, 산업 확장을 모두 수행하는 모델을 제주가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핵심 경쟁력으로는 해상 발사에 적합한 위치를 꼽았다. 제주는 국내에서 적도에 가장 가깝고, 위성과 지상의 통신 경로가 짧아 대륙 내륙보다 신호 지연이 작다. 오 지사는 대전을 기준으로 최대 4초 빠른 통신 환경이 확보된다며, 실시간 관제와 영상처리, 위성통신 서비스 기업에 중요한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중문 앞바다에서 진행된 해상 발사 장면이 리조트와 해안에서 그대로 관측된 사례를 들며, 발사 관람과 우주 체험을 결합한 관광 상품화 가능성도 언급했다.

 

관제와 항법 인프라도 이미 구축이 진행 중이다. 제주에는 국가위성운영센터가 가동 중이며,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 지상센터가 하원테크노캠퍼스에 들어오는 것이 확정됐다. 여기에 이날 준공된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가 더해지면서 소형위성 제조 기반이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제주우주센터를 거점으로 장기적으로 연 100기 수준의 초소형 위성 생산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며, 협력업체 26곳이 입주 의사를 밝힌 상태다. 오 지사는 위성 생산과 조립, 시험, 발사 준비까지 제주에서 완결되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 차원의 우주 거점 배치 구상도 바뀔 조짐이다. 현재 한국 우주개발 축은 대전 연구개발, 전남 고흥 발사, 경남 사천 항공우주 산업으로 이어지는 삼각 구조에 머물러 있다. 제주도는 여기에 민간 소형위성과 데이터·관광을 전담하는 제주를 추가하는 이른바 3+1 모델을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가 발사체와 공공 위성개발을 중심으로 기존 거점을 유지하고, 제주는 민간 상업 위성과 데이터 산업, 우주 관광을 집약하는 역할을 맡는 구도다. 오 지사는 이 모델을 내년 초 정부에 공식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우주산업 내 비즈니스 중심이 위성 데이터 활용으로 옮겨가는 점도 제주 전략의 근거로 거론된다. 전 세계 위성 시장에서는 제조와 발사보다 위성 영상과 신호를 분석해 농업, 해양, 기상, 물류, 도시 인프라 관리 등에 적용하는 데이터 서비스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제주도는 국가위성운영센터를 중심으로 AI 기반 영상 분석 기업과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있으며, 위성 영상과 인공지능을 결합해 해양 환경 모니터링, 선박 위치 추적, 재난 조기 탐지 같은 서비스 사업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오 지사는 위성 영상 활용과 AI 분석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데이터 산업이 제주가 가장 먼저 키울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제주 우주 클러스터 전략의 또 다른 축은 제조 특화 인력의 지역 내 직접 양성이다. 민간 우주산업이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제조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숙련된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 제주도는 이 인력을 외부에서 채용하는 방식 대신, 지역 학생을 교육해 제주 기업에 정착시키는 구조를 설계했다. 한림공업고등학교는 올해 교육부 우주항공 협약형 특성화고로 선정됐으며, 내년 3월 한림항공우주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꾼다. 제주도와 교육부, 제주도교육청은 5년간 총 136억원을 투입해 클린룸과 실습 인프라, 우주 제조 장비, 산학겸임교원 등을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학교 운영 철학도 우주 제조 현장에 맞춰 조정되고 있다. 교장으로 부임한 이진승 교장은 한화시스템에서 연구지원실장과 기획실장을 지낸 기업 출신 인사로, 우주 제조 인력 운영과 산학협력 모델을 경험한 인물이다. 서귀포 우주센터 조성과 함께 지역 기반 인재 양성 필요성이 커지면서 개방형 공모를 통해 선발됐다. 그는 제주가 민간 우주산업의 핵심 거점이 되려면 인력 수급을 외부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제주 출신 학생이 제주에서 교육을 받고 제주 우주 기업에 취업해 정착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한림공고에는 기계, 전기, 전자, 건설, 토목 5개 학과에 200명의 1기 재학생이 입학해 있다. 2학년부터는 우주 제조 중심 심화 교육이 본격화되며, 학교는 제주특별법에 따른 제주형 자율학교 지위를 활용해 항공우주 교과과정을 자체 설계하고 있다. 정밀 용접, 고밀도 배선, 정밀 전자조립 등 위성 제조 공정에서 요구되는 세부 기술을 과목으로 편성하고, 큐브위성 제작을 위한 클린룸 기반 실습실도 구축 중이다. 실제 위성 제조 공정은 일반 전기·전자 기술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진동, 온도, 방사선 등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정밀도와 신뢰성이 요구된다. 이 교장은 한화시스템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제작·시험 절차를 교육에 그대로 이식해, 졸업생이 입사 직후부터 생산 라인에 투입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같은 산학 연계 모델이 정착되면 기업의 재교육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 제조 업체는 신규 인력에게 6개월 이상 투입해온 현장 재교육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는 실습 단계에서부터 실제 공정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아직 1기 학생은 재학 중이지만, 기존 고3 학생 가운데 제주 출신 4명이 이미 한화시스템에 채용된 사례가 나와 지역 정주형 인력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화시스템 초소형 위성 생산이 본격화되면 관련 기술직 채용 수요는 추가로 늘어날 여지도 있다. 이 교장은 장기적으로 기업이 이 학교 출신 기술 인력을 가장 적합한 우주 제조 인력으로 인정하는 구조를 만들고, 제주 우주산업의 기반 인력을 학교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의 우주산업 전략은 국가 우주정책, 데이터 규제, 산업 지원 제도와도 맞물려 있다. 위성 영상과 위치정보는 국가 안보와 개인정보 보호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법적 기준과 보안 규제가 상용화 속도를 좌우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우주항공청 출범과 국가 우주개발계획 개편 과정에서 민간 역할 확대가 논의되는 만큼, 제주가 제시한 3+1 거점 모델이 향후 정책 설계에 반영될 여지도 있다. 전문가들은 발사와 제조 기술뿐 아니라, 데이터 서비스, 관광, 교육까지 엮인 융합 산업 모델을 어느 지역이 먼저 완성하느냐가 향후 우주산업 경쟁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산업계는 제주형 우주 가치사슬이 실제 투자와 인력, 제도 정비로 이어져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제주도#오영훈#한화시스템제주우주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