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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이러스도 설계한다”…스탠퍼드, 생명 윤리 논쟁 새 국면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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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한 바이러스 설계가 생명과학의 새로운 경계를 제시하며 윤리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의 연구진이 인공지능(AI) 기반 합성 바이러스를 개발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생명공학의 패러다임 전환과 윤리적 한계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AI가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학습해 박테리아를 감염시킬 수 있는 새 바이러스 파지를 설계함으로써 첨단 생명공학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AI 기반 생명체 창조’ 경쟁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9월, 박테리아를 표적으로 삼는 바이러스 파지(phi-X174) 합성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AI 생성형 모델 ‘이보(Evo)’가 9조 개의 DNA 염기를 학습해 유전체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실험 결과 300개 합성 바이러스 중 16개가 대장균을 파괴하며 복제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대장균 유전체가 단 5400개 염기로 간결하고, phi-X174가 DNA 생물 최초로 완전 해독된 역사적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기술 구현 방식은 전문가가 AI 모델의 설계 조건을 입력하고, AI가 새로운 DNA 서열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후 과학자들이 제안된 서열을 조립해 실제 박테리아 배양에 적용, 복제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이는 전통적인 유전자 편집이나 파지 합성에 비해 설계 속도와 새로운 구조 생성 능력을 크게 높였다. AI가 기존 방식 대비 드물거나 자연에 없는 유전자 배열을 손쉽게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시장·산업적 관점에서 AI 기반 합성 바이러스 기술은 항생제 내성 감염 등 기존 치료제 한계를 극복할 신무기로 주목받는다. 실제 제약·생명공학 업계는 박테리아 감염 치료용 바이러스 파지 개발에 투자를 확대 중이다. AI를 쓰면 신약 후보물질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단축할 수 있어 산업 파급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한편, 글로벌 경쟁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생명공학 스타트업과 기관들이 AI로 후보물질, 항생제, 백신 플랫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DeepMind·Insilico Medicine 등 빅테크 기업도 신약 설계 및 단백질 예측 AI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윤리·규제 이슈도 첨예하다. 헤이스팅스 생명윤리센터와 싱가포르국립대 등 학계 일부는 “AI가 생명을 재설계하는 과정의 불확실성이 크다”며 생물보안 위협을 거론한다. 전문가들은 AI가 자연에 없는 독성 바이러스 혹은 치명적 병원체까지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 기술 활용과 통제의 기준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MIT, 프린스턴대 등은 생명윤리와 안전관리 장치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기술 남용 방지책 필요성을 강조한다.

 

국내외로는 각국 정부와 규제기관이 AI·합성생물학 결합에 대응할 새로운 생물안보 지침과 연구윤리 기준 마련을 예고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생명과학을 혁신하는 한편, 산업·정책적인 사고 전환과 제도 정비가 필수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산업계는 이번 연구가 AI와 생물학의 융합 경쟁 구도를 본격화할 분기점이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 진보에 맞는 윤리·안전 체계 확립, 글로벌 협력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임을 시사한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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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ai#바이러스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