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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막을 디지털 증거기술…학교도 스마트 보안 전환 압박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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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장의 상습 성추행을 학생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 핵심 증거로 쓰이면서, 아동학대 대응 체계에서 디지털 증거와 학교 보안기술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육 현장은 여전히 교장실과 복도 등 사각지대가 많고, 아동보호 전담 인력과 디지털 신고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 인프라 전반을 스마트 보안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은 60대 초등학교 교장이 2022년 9월부터 2024년 말까지 재직하며, 2023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만 13세 미만 학생 10명을 약 250회에 걸쳐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불거졌다. 범행 장소는 주로 교장실이었고, 운동장과 복도 등 실내외 공간 전반이 포함됐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 학생 친구들이 교장의 성추행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관해 둔 영상이 핵심 증거로 제출됐고, 법원은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영상을 촬영했을 정도”라며 피고인을 질타했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기기가 아동보호의 최후 수단으로 작동한 사례지만, 동시에 학교 보안 인프라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현재 많은 학교는 교내 주요 동선에 CCTV를 설치했지만, 교장실 같은 관리자 공간은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이유로 감시망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복도나 계단은 카메라 해상도나 설치 각도 문제로 사각지대가 넓게 남는다. 영상 저장 기간도 예산과 서버 용량 문제로 30일 전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장기간 이뤄지는 상습 학대 정황을 추적하기 어렵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학대 상황을 즉각 신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디지털 기반 보호 장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에듀테크 업계에서는 학생용 앱에 익명 신고 기능을 결합하거나, 교실 내 IoT 센서와 연동한 ‘위기 감지 플랫폼’을 개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AI가 학교 내 CCTV 영상에서 특정 구역에 장시간 머무르는 성인과 학생의 이상 행동 패턴을 탐지해 관리자에게 알리거나, 학생이 앱에서 간단한 터치만으로 아동학대 의심 상황을 신고하면 자동으로 타임스탬프와 위치 정보가 함께 전송되는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AI 영상분석 기반 학교 안전 솔루션 경쟁이 진행 중이다. 북미 지역 일부 학군은 AI가 CCTV를 실시간 분석해 폭력행위, 칼이나 총기 등 위험 물체, 장시간 이어지는 신체 접촉 등을 탐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리자 호출, 비상벨 연동, 경찰 통보까지 자동화하는 서비스를 구축하는 흐름이다. 다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상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와 낙인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데이터 익명화와 최소 수집 원칙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구현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학교 교장이 아동학대 범죄 신고 의무자에 포함되며, 신고 의무자가 직접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현행법상 최대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이 가능하다. 법적 틀은 마련돼 있지만, 학대 조기 인지와 증거 확보를 위한 디지털 인프라는 제도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다. 교육 당국은 최근 학교 폭력과 사이버 괴롭힘 대응을 위한 디지털 신고 시스템 고도화를 추진 중이지만, 관리자에 의한 성범죄나 권력형 학대에 특화된 보호 구조는 여전히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아동보호를 위한 ICT 도입이 감시 확대가 아닌, 조건부·목적 제한형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교장실과 보건실 같은 민감 공간에는 상시 영상 촬영 대신, 출입기록과 방문자 인증 로그를 전자화해 남기고, 아동이 SOS 버튼을 눌렀을 때만 일시적으로 음성이나 영상을 기록하는 구조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또 수집된 데이터의 암호화 저장, 열람 이력 추적, 일정 기간 경과 후 자동 삭제 등 데이터 거버넌스 기술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학교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대응 플랫폼’을 별도 시장으로 보고, 신고 앱, AI 영상분석, 디지털 포렌식 친화적인 저장 시스템을 통합한 패키지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수사기관 역시 스마트폰 영상, 채팅 기록, 위치 정보 등을 포함한 디지털 증거 확보와 분석 역량을 아동학대 사건에 본격 확장하는 추세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학생 개인기기에서 확보된 영상에만 의존해서는 반복 범죄를 막기 어렵다”며 “학교 차원의 체계적인 디지털 기록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법원과 수사기관은 앞으로도 디지털 증거의 신빙성과 위법수집 여부를 엄격하게 따질 것으로 보인다. 영상 조작 여부를 판별하는 포렌식 기술, 촬영 당시의 메타데이터를 보존하는 보안 카메라와 앱 기술도 연동돼야 한다. 동시에 학생이 직접 범행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막기 위해, 학교 구조 설계 단계부터 ICT 기반 안전 설비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교육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개인의 범죄를 넘어, 아동보호 체계에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접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압박하고 있다. 산업계는 AI 영상분석과 스마트 신고 시스템을 내세우고 있지만, 감시 사회 논란과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둘러싼 규제 논의도 함께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 현장이 디지털 감시와 인권 보호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가, 에듀테크와 보안 솔루션 산업의 성장 방향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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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ict#학교cctv#디지털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