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블랙 프라이데이 진정성 사라졌다”…미국, 세일 분산·위장 할인에 흡인력 약화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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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8일, 미국(USA)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연말 최대 할인 행사인 블랙 프라이데이가 예전만 못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통업체들의 세일 기간 분산과 가격 장난 논란이 겹치면서, 한때 연말 소비 흐름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였던 행사의 상징성이 옅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변화는 미국 소비 패턴과 글로벌 유통 트렌드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주고 있다.

 

CNBC는 28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블랙 프라이데이가 과거에는 연말 쇼핑 시즌 성과를 가늠하는 핵심 이벤트였지만, 최근 들어 소비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행사 당일 새벽부터 쇼핑몰 앞에 긴 줄이 늘어서고,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 들어가는 이른바 오픈런 장면이 상징처럼 반복됐지만, 올해는 현장 분위기가 한층 차분했다는 설명이다.

미 ‘블랙 프라이데이’ 오프라인 방문 증가 30%대 그쳐…세일 분산·위장 할인에 의미 퇴색
미 ‘블랙 프라이데이’ 오프라인 방문 증가 30%대 그쳐…세일 분산·위장 할인에 의미 퇴색

마크 코헨 전 캐나다(Canada) 시어스백화점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의 진정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직격했다. 그는 예전에는 블랙 프라이데이 가격이 연중 최저가여서 다시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연말 시즌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낮은 행사 가격이 등장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유통업체가 특정 하루에 파격 할인을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즌 전체에 걸쳐 가격 전략을 조정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는 여전히 유통업체 입장에서 한 해 중 중요한 매출 대목으로 인식된다. 상당수 미국 소비자는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이날 오프라인 매장을 찾고 있으며, 브랜드들은 여전히 블랙 프라이데이를 전후한 기간을 겨냥해 마케팅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다만 오프라인 매장의 혼잡도와 눈에 띄는 매출 급증 폭은 과거에 비해 둔화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시장조사업체 플레이서.에이아이(Placer.ai) 자료를 인용한 CNBC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미국 오프라인 매장을 찾은 방문객 수는 일반 금요일 대비 30%대 중반 수준의 증가에 그쳤다. 통상 연중 최대 쇼핑일로 불리는 행사임에도, 과거처럼 폭발적인 고객 유입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유통업체들은 하루 매출에 집중하던 기존 전략을 수정해, 할인을 여러 날에 나눠 진행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실제 많은 미국 유통업체는 블랙 프라이데이 이전인 11월 중순부터 각종 할인 프로모션을 시작해, 추수감사절 이후 첫 월요일인 사이버 먼데이까지 행사를 이어가며 판매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조지아주립대 경영대학원의 데니시 샤 교수는 “예전에는 특별 할인행사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매장 앞에 긴 줄을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지금은 할인 행사가 며칠에 걸쳐 지속되고, 소비자들은 매장을 직접 찾는 대신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한날 대형 세일 구조가, 온라인 중심의 장기전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소비자 행동 변화를 촉발한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이른바 ‘위장 세일’ 관행에 대한 불신 확산이 꼽힌다. 가격 비교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이 보편화하면서, 소비자들은 같은 상품의 과거 판매가와 현재 할인 수준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업체가 정가를 인상한 뒤 높은 할인율을 표시해 실제 가격 인하 폭을 숨기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블랙 프라이데이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AlixPartners)의 소니아 라핀스키 글로벌 패션부문 대표는 “소비자들이 할인 품목의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제시된 가격이 진짜 저렴한 수준인지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가를 끌어올린 뒤 과거와 비슷한 실질 가격을 ‘블랙 프라이데이 특가’로 내세우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허위·과장 광고에 가까운 판매 관행이 소비자 실망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라핀스키 대표는 나아가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해서 소비자에게 긴박감을 조성하는 효과는 사라졌고, 이른바 특가를 내세우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사기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더 이상 특정 날짜에만 적용되는 유일무이한 혜택이라는 인식이 약해졌고, 소비자들은 연말 시즌 전반에 걸쳐 가격 변동을 관찰하며 구매 시점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내 블랙 프라이데이 위상 변화는 글로벌 유통업과 전자상거래 시장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다양한 국가에서 미국식 블랙 프라이데이 프로모션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만큼, 세일 분산과 온라인 중심 전략, 그리고 가격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블랙 프라이데이가 상징적 소비 이벤트에서 장기화된 연말 세일 시즌의 한 부분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며, 유통업체들이 신뢰 회복과 진정성 있는 할인 정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 냉소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소비 트렌드 변화가 글로벌 유통 구조와 전자상거래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하고 있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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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프라이데이#cnbc#플레이서에이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