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는 오는데 마음은 불안하다”…쿠팡 개인정보 유출이 바꾼 일상의 안심 기준
요즘 온라인 주문 알림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한 번 더 쿵 내려앉는 사람이 늘었다. 예전엔 ‘오늘 도착합니다’ 문자가 설렘이었지만, 지금은 ‘혹시 또 털린 정보는 없을까’를 떠올리게 하는 긴장이 됐다. 생활의 편리함을 책임지던 앱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노출된 사적인 정보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생활 밀착 플랫폼 쿠팡에서 3000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하루는 예상치 못한 불안을 품게 됐다. 장을 보고, 생필품을 주문하고, 아이 간식을 채우던 익숙한 앱이었기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온다. 커뮤니티에서는 “배송지에 부모님 댁 주소까지 다 있는데 괜찮은 거냐”, “전화번호랑 주문 내역까지 나갔다니 소름 돋는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쿠팡은 최근 자체 점검 과정에서 약 4500개의 계정 정보가 외부에 노출된 정황을 처음 확인했다. 추가 조사를 거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무단 접근이 광범위하게 이뤄져 총 3370만 개의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름과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전화번호, 주소, 주문정보 등 생활의 궤적이 그대로 담긴 정보가 포함됐다. 많은 이용자에게는 “지난 몇 년 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민감한 기록이나 다름없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쿠팡은 지난 2010년 창립 이후 일상 소비의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집밥 재료, 생필품, 영유아 용품까지 한 번에 주문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앱을 열어보는 사용자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번 유출 기간이 6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5개월 가까이 이어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정보를 내주고 있었던 것 같다”는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피해 고객들에게 발송된 안내 문자도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달래지 못하고 있다. 쿠팡은 “고객님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일부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비인가 조회로 파악됐으며 관련 당국과 협력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카드정보 등 결제정보와 패스워드 로그인 관련 정보는 노출되지 않았고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만큼 생활 플랫폼에 대한 신뢰가 흩어지는 순간, 일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부담을 의식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체감되는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한 30대 직장인은 “새벽배송이 좋아서 쿠팡을 안 쓸 수는 없는데, 배송지에 가족 주소가 다 저장돼 있어서 찝찝하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이용자는 “이름, 번호, 주소에 내가 뭘 사 먹고, 뭘 좋아하는지까지 다 노출된 기분이라 일상 자체가 감시당한 것 같다”고 표현했다. 빠르고 편리한 소비를 선택한 대가로, 사적인 취향과 생활 패턴이 낯선 서버 어딘가에 흘러갔다는 상실감이 섞여 있다.
사태의 파장은 경영진 책임 문제로도 이어졌다. 쿠팡은 10일, 박대준 대표이사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최근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전했다. 임시 대표로는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인 해롤드 로저스가 선임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일상 인프라 불안’이라고 부른다.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라, 식탁과 옷장, 책상 위를 채워주는 생활 기반 서비스에서 보안 사고가 발생할 때 느끼는 심리적 타격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바로 전날까지 사용하던 플랫폼이기에, 탈퇴나 서비스 변경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쓰긴 쓰는데, 마음은 이미 예전 같지 않다”는 이용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관계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개인정보 유출은 해외 서버를 통해 무단으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쿠팡은 최근 내부 직원을 정보 유출 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안 분야 실무자는 “사고 후의 사과와 보완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건 ‘이 플랫폼이 내 편인지’에 관한 감정”이라며 “생활을 맡긴 서비스일수록 투명한 공지와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신뢰를 되살리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탈퇴하고 싶어도 이미 다 털렸을 텐데 무슨 소용이냐”는 자조부터 “카드정보는 괜찮다니까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 중”이라는 복잡한 감정까지 뒤섞여 있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온 낯선 문자와 전화에 더 예민해졌고, 누군가는 배송지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주문 이력을 일부 지우는 등 스스로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소비와 보안이 같은 무게로 느껴지는 시대, 생활의 기준이 다시 짜이고 있는 셈이다.
쿠팡은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쿠팡을 사칭하는 전화나 문자에 각별한 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경찰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등과 협력해 조사 중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비정상 접근 경로를 차단하고 내부 모니터링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임직원이 고객님의 불편과 심려를 신속하게 해소하겠다”는 다짐이 실제 생활 속 안심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이번 사건은 기술보다 신뢰, 속도보다 안전을 다시 묻게 한다. 당일 배송과 새벽 배송이 생활의 기본 옵션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이제 “얼마나 빨리 오느냐”보다 “내 정보는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를 더 따지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클릭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맡기는 주소와 전화번호, 주문 내역에는 매일의 삶이 겹겹이 쌓여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