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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복원력 전면에 나선 파이오링크, 해커의 다음 수까지 본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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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복원력이라는 개념이 국내 기업 보안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더 이상 침입 자체를 완벽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공격 이후 비즈니스를 얼마나 빨리 정상화하고 피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와 보안 인프라 기업 파이오링크가 관제 데이터와 위협 인텔리전스 결합 분석으로 해커의 다음 공격까지 예측하겠다고 나선 배경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접근이 국내 보안 운영 패러다임을 ‘사고 후 대응’에서 ‘사전 검증과 선제 복원력 확보’ 중심으로 옮겨갈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파이오링크는 애플리케이션 전송 컨트롤러, 웹 방화벽, 보안 스위치, 하이퍼컨버지드 인프라까지 네트워크 전 구간을 포괄하는 제품군을 바탕으로 예방, 탐지, 대응, 복구를 통합 지원하는 보안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 중심에는 해킹 사고와 악성코드 분석, 모의 침투 훈련, 사이버 위협 인텔리전스 업무를 전담하는 사이버위협분석팀이 자리한다. 이 팀이 도출한 공격 탐지와 차단 로직은 파이오링크 장비에 실시간 반영돼 고객사 네트워크에 동시에 배포된다.

이영학 사이버위협분석팀장은 해커와의 싸움을 “보이지 않는 상대와 최전선에서 겨루는 전투”라고 표현한다. 팀은 각종 관제 로그와 외부 위협 인텔리전스를 결합해 실제 침해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위험 그룹별 공격 패턴을 분석한다. 단순히 알려진 악성코드를 식별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인프라 환경에서 공격자가 취할 수 있는 다음 단계 동작까지 예측해, 방어 규칙을 미리 만들어 두는 방식이다. 그 결과 DDoS 공격이 발생하더라도 서비스 가용성을 빠르게 회복하거나, 침입이 성공하더라도 이후 데이터 탈취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번 기술과 운영 전략은 기존 보안 시스템이 가진 ‘사고 후 포렌식’ 중심 구조의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침해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로그를 수집해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 파이오링크는 이 과정을 전방위 데이터 수집과 실시간 위협 인텔리전스로 끌어올려, 공격 전 단계에서 가상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고 보호 대상을 재구성하는 흐름으로 바꾸고 있다.

 

실제 위협에 대한 공개 대응도 공격적이다. 최근 SK텔레콤 해킹 사고에서 침투 경로로 주목받았던 BPF도어 악성코드가 대표적 사례다. BPF도어는 리눅스 운영체제의 패킷 필터링 기능을 악용해 정상 프로세스로 위장하고, 기존 백신이나 보안 솔루션 탐지를 어렵게 만드는 고도화된 공격 도구다. 파이오링크는 자사 고객사 점검에 그치지 않고, BPF도어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용 점검 프로그램을 제작해 무료로 공개했다.

 

리눅스를 사용하는 기업이나 기관이라면 산업 분야와 무관하게 모두 잠재적 피해 대상이며, 기존 보안 체계로는 탐지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사이버위협분석팀은 개별 고객만 보호해서는 전체 생태계 리스크가 줄어들기 어렵다고 보고, 위협을 발견하면 업계 전반에서 활용 가능한 도구와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내 기업이 국가 차원 사이버 위협을 겨냥한 전용 점검 도구를 긴급 배포한 사례로, ‘침해 사고 대응’ 위주의 수동적 보안 관행을 ‘사전 검증’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초 전 세계 웹 생태계를 뒤흔든 리액트와 넥스트JS 프레임워크 취약점 사태에서도 같은 전략이 이어졌다. 소셜 미디어, 동영상 스트리밍, 전자상거래, 결제 서비스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프론트엔드·풀스택 웹 개발 프레임워크에 구조적 취약점이 확인되면서, 공격자들이 대량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파이오링크는 사태 초기 해당 취약점 영향을 점검할 수 있는 스크립트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전용 탐지·차단 도구를 신속히 배포했다.

 

기업과 기관이 자사 서비스가 취약점에 노출돼 있는지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자사 홈페이지에 점검용 스크립트를 공개하고, 현장 보안 담당자들이 즉시 대응에 활용할 수 있게 기술 지원 체계도 강화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로데이 취약점이 발견될 때마다 보안 벤더들이 유료 패치를 우선 공급하는 관행이 여전히 강한데, 파이오링크는 국내 시장에서 무료 배포와 공개 도구 제공이라는 방향성을 뚜렷이 하고 있어 차별점이 부각되는 구도다.

 

내부 역량 강화를 위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파이오링크는 올해 자체 CTF, 즉 해킹 방어 대회를 처음 개최해 실제 공격과 방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직원 역량을 테스트했다. 우수 성과를 거둔 직원에게 포상금을 지급해 전문 인력의 동기 부여와 조직 내 기술 경쟁 문화를 조성했다. 글로벌 보안 업계에서 레드팀 훈련과 버그 바운티 제도가 상시 운영되는 흐름과 비슷한 방향으로, 국내 보안 인력 양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사이버 공격 일상화에 따른 거버넌스 문제도 제기된다. 이 팀장은 실제 사고 상당수가 기술 수준의 문제보다 사람과 조직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발신자가 불분명한 이메일을 열어보거나 첨부 파일을 실행하지 말라는 기본 수칙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빠듯한 업무 환경 속에서 경각심이 무뎌지면서 클릭 한 번으로 내부망이 감염되는 사례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억에 의존하는 보안 교육은 한계가 명확한 만큼, 실습형 훈련과 반복 교육으로 행동 양식을 체화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접근 권한 관리 허점도 대표적인 리스크로 꼽힌다. 퇴사자의 계정을 제때 삭제하지 않거나, 편의상 여러 사람이 공용 계정을 공유하는 관행이 남아 있어 내부 정보 유출 통로가 쉽게 열리는 구조다. 실제로 다수의 랜섬웨어 공격이 오래전 생성된 계정이나, 관리되지 않는 공유 비밀번호를 통해 시작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파이오링크는 이를 줄이려면 계정을 개인별로 세분화하고 최소 권한 원칙을 적용하는 한편, 보안 담당자가 권한 구조를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경영진 의사결정이 더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자 인식의 전환도 과제로 꼽힌다.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 대부분에 정보보안 부서가 존재하지만, 예산과 권한 측면에서 핵심 조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팀장은 보안 예산이 사고 이전까지는 불필요한 지출로 분류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대형 유출 사고와 서비스 마비에 따른 브랜드 신뢰도 하락과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데이터 유출로 인한 과징금과 소송 비용, 고객 이탈 비용이 초기 보안 투자액을 크게 상회하는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는 사이버 공격이 고도화되고 새로운 위협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가장 먼저 인지하는 것은 현장의 보안 담당자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예산, 조직 문화, 서비스 일정 등을 이유로 현장의 경고가 묵살되거나 지연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했다고 전했다. 정보보안 부서에 위험 판단과 즉각 조치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 사이버 복원력을 확보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파이오링크의 행보가 국내 보안 업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개별 기업 단위 방어를 넘어,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점검 도구를 개방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국가 차원의 디지털 인프라 복원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보안 기술 발전 속도만으로는 대규모 사고를 막기 어렵고, 정보보안 부서의 위상과 권한, 조직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크다. 산업계는 파이오링크가 제시한 ‘해커의 다음 수를 예측하는 보안’ 전략이 실제 시장과 조직 문화에 얼마나 깊이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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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오링크#사이버복원력#사이버위협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