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인간 짝짓기 전략, 비버급 일부일처…진화생물학 재조명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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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둘러싼 논쟁에 과학적 근거가 추가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이 포유류 43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인간은 전형제자매 비율 기준으로 1대1 짝짓기 수준이 상당히 높은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사회과학에서 제기돼 온 “인간은 본래 일부일처적 존재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달리, 사회적 일부일처가 인간 진화의 핵심 조건이었다는 진화인류학계의 시각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초협력적 사회 구조가 IT·바이오 기술과 결합해 거대 집단 지식 체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 짝짓기 전략 연구는 디지털 시대 협력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기초 데이터로도 주목된다.  

 

이번 연구는 마크 다이블 케임브리지대 진화인류학 교수가 주도해 영국왕립학회 생물과학지에 발표됐다. 다이블 교수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43종을 대상으로, 한 개체군 안에서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전형제자매와 이부·이복형제자매의 비율을 정량 분석해 각 종의 일부일처 수준을 산출했다. 기존에 축적된 103개 인간 사회와 34개 비인간 포유류 종의 데이터를 통합해, ‘일부일처제 비율 표’라는 계량 지표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분석 결과 평생 짝을 바꾸지 않는 캘리포니아 사슴쥐가 전형제자매 비율 100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아프리카들개가 85, 다마를란드맹금쥐가 79.5의 비율을 기록했다. 인간은 66을 기록해 전체 포유류 43종 가운데 7위에 올랐다. 이는 인간이 유라시아비버보다는 약간 덜 일부일처적이지만, 흰손긴팔원숭이와 미어캣, 붉은여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일부일처 짝짓기 패턴을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이블 교수의 접근법은 유전자 분석과 계보 추적 개념을 접목한 인구유전학적 기법에 가깝다. 전형제자매 비율이 높을수록 동일한 부모 쌍에서 자녀가 지속적으로 태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회적·성적 일부일처가 더 강하게 작동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대로 이부·이복형제자매 비율이 높으면, 개체군 내에서 배우자 교체나 다수 배우자 관계가 빈번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연구는 인간 사회를 단일 문화로 보지 않고, 103개 사회의 데이터를 통합해 평균적인 인간 종 수준의 경향을 뽑아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농경사회, 수렵채집사회, 산업화 사회 등 다양한 문화권의 계보 데이터를 포괄함으로써,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편중된 결론을 피하려는 시도였다. 진화인류학 연구에서 빅데이터형 통합 분석이 확산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43종 가운데 가장 일부일처성이 낮은 동물은 스코틀랜드 품종 소이양이었다. 이 종의 전형제자매 비율은 0.6에 불과해, 한 개체군 안에서 동일한 부모를 공유하는 형제자매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다수의 수컷과 다수의 암컷이 뒤섞이는 혼합 번식 전략이 지배적인 구조로 읽힌다. 하위권에는 여러 마카크 원숭이 종과 흑곰, 남극털물범 등이 포함됐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영장류인 산고릴라와 일반침팬지도 인간보다 훨씬 낮은 전형제자매 비율을 보여, 성적 일부일처 수준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간이 영장류 중에서도 독특하게 강한 사회적 일부일처 경향을 가지며, 동시에 대규모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종이라는 기존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로 평가된다.  

 

다이블 교수는 인간 사회 전반에서 관찰되는 일부일처적 짝짓기가 인간 종의 핵심적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일부일처, 즉 양육과 자원 제공을 위해 장기간 짝을 유지하는 전략이 인간에게 넓고 복잡한 협력 집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고 해석했다. 자녀 양육을 둘러싼 장기적 파트너십이 안정된 혈연 네트워크와 신뢰 기반 교환 관계를 촉진하고, 이것이 종 차원의 적응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논지다.  

 

연구는 또 “새와 포유류, 곤충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협력 사회가 형성돼 있음을 감안할 때, 슈퍼 협력 사회로의 진화 전에 일부일처적 짝짓기의 진화가 먼저 일어난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제시했다. 개체 수준에서의 짝 안정성이 가족 단위 협력, 더 나아가 집단 단위 초협력으로 확장되는 진화 경로 모델에 과학적 근거를 더한 셈이다.  

 

일부 사회학자와 문화인류학자들은 그동안 인간이 본래 일부일처적 존재가 아니며, 제도와 종교, 경제 구조가 일부일처를 강제해 왔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반면 많은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사회적 일부일처가 인간의 두뇌 발달, 장기 양육, 복잡한 언어와 규범 시스템 형성을 가능하게 한 진화적 토대라고 보아 왔다. 이번 연구는 후자의 관점을 지지하는 유전·계보 기반 계량 데이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계 논쟁 구도를 재정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IT·바이오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초협력 구조는 대규모 데이터 공유와 공동 연구, 오픈소스 프로젝트, 국제 임상시험 컨소시엄 같은 현대 기술 생태계의 협업 모델을 떠받치는 심리·진화적 기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일처에 의해 강화된 안정적 가족과 친족 네트워크는 장기적 교육 투자와 지식 축적을 가능하게 해, 고도의 과학기술 인력을 양산하는 사회적 플랫폼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향후에는 유전체 분석과 가계도 재구성 알고리즘을 결합해, 고대 인류 집단의 일부일처 수준을 정밀 추론하는 연구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디지털 헬스 데이터와 인구동태 정보를 연계하면, 짝짓기 전략과 질병 발생, 정신건강, 사회적 고립 문제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정밀 의생명 연구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다이블 교수의 연구는 인간 짝짓기 전략을 도덕적 규범의 문제라기보다, 협력 구조와 집단 적응도를 결정하는 진화 메커니즘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강화했다. 산업계와 정책 분야에서도, 가족 구조와 협력 네트워크의 변화가 지식 생태계와 혁신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간 사회의 기술 발전 속도만큼이나, 협력 방식과 제도 설계가 미래 IT·바이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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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마크다이블#일부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