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차별적 제스처 용납 못 해”…핀란드 미인대회, 사라 자프체 왕관 박탈 후폭풍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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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월 11일, 핀란드(Finland)에서 미스 핀란드 조직위원회가 2025년 우승자 사라 자프체의 왕관과 타이틀을 박탈하는 중대한 발표를 했다. 동아시아인 외모를 조롱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스처가 담긴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확산되면서 인종차별 논란이 국제적으로 번졌고, 미인대회 참가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과 책임 의식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사라 자프체는 코소보(Kosovo) 출신 아버지와 핀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025년 9월 미스 핀란드로 선발됐고, 이후 국제 무대인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그가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좌우로 잡아당기고 “중국인과 함께 식사 중”이라는 문구가 붙은 사진이 익명 플랫폼과 SNS에 퍼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제스처는 동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행위로 널리 인식돼 있어,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할 행동이 아니다”라는 비판 여론이 핀란드 안팎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미스 핀란드 왕관 박탈, 인종차별 논란 사진: 사라 자프체 SNS)
(미스 핀란드 왕관 박탈, 인종차별 논란 사진: 사라 자프체 SNS)

논란 직후 사라 자프체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저녁 식사 중 두통과 눈의 압박감 때문에 관자놀이를 마사지한 장면일 뿐”이라며 사진의 설명은 친구가 본인 동의 없이 적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핀에어 비즈니스석에 앉아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지만 나는 비즈니스석에 있다”는 취지로 말하는 영상이 온라인에 돌면서, 그의 태도가 상황을 가볍게 여긴다는 인식까지 더해졌다. 논란을 진화하기 위한 해명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가 여론을 더욱 자극한 셈이다.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사라 자프체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제 행동으로 많은 분께 상처와 불쾌감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특히 아시아 커뮤니티와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인종차별은 어떤 형태로도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SNS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다만 사진 속 제스처와 표현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됐는지 끝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진정성과 인식 수준을 둘러싼 논쟁은 남았다.

 

미스 핀란드 조직위원회는 초기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논란이 해외 언론과 글로벌 SNS로 번지자 제재 수위를 높였다. 12월 11일 발표된 공식 성명에서 조직위원회는 “최근 게시물은 미스 핀란드 대회의 가치와 완전히 배치되는 모욕적이고 해로운 내용이었다”며 사라 자프체의 자격 박탈과 왕관 회수를 선언했다. 이어 “미스 핀란드는 세계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존재”라며 “어떠한 형태의 인종차별이나 차별적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상처를 받은 모든 이들, 특히 아시아 공동체에게 사과했다.

 

자격이 박탈된 뒤 왕관은 대회 2위였던 타라 레토넨, 혹은 타라 레흐토넨에게 돌아갔다. 헬싱키(Helsinki)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새 미스 핀란드로 호명된 자리에서 “이 타이틀을 큰 영광이자 책임으로 받아들인다”며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책임과 기회, 신뢰의 표시인 만큼 존중과 자부심을 갖고 핀란드를 대표하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국가 대표 자리에 오른 그의 발언은, 이번 사태가 특정 참가자의 실격을 넘어 후임자에게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논란은 전통적으로 ‘외모 경쟁’으로 여겨져 왔던 미인대회가 더 이상 외형만으로 평가되지 않는 흐름을 재확인시켰다. 세계무대에서 어깨띠를 두르는 순간, 참가자는 개인 인플루언서를 넘어 국가와 조직의 가치관, 다양성과 포용의 기준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인종차별적 표현과 제스처에 대한 국제사회의 민감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과거 ‘농담’이나 ‘습관’으로 받아들여지던 행동이 이제는 곧바로 문제 제기와 제재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핀란드 사회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 발언 사이 경계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을 이어왔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인과 인플루언서의 책임 범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와 인권 단체들은 사과와 제재가 이뤄진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교육과 캠페인 등 구조적 예방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구 사회 전반에서도 유사한 제스처나 표현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 만큼, 각국 미인대회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참가자 교육을 강화하는 흐름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글로벌 대중문화 공간에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하는 과정의 한 단면으로 해석한다.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조직과 브랜드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조치를 취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공인의 사적 공간이라 여겨지던 SNS조차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조치가 향후 국제 미인대회와 문화 산업 전반에서 어떤 기준 변화를 가져올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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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자프체#미스핀란드#타라레토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