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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 관리급여 지정…복지부 환자부담 완화 승부수에 의료계 반발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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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관리급여 도입이 비급여 중심이던 국내 물리치료·통증완화 시장의 구조를 흔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실손보험 재정 부담과 비급여 과잉진료 논란이 컸던 도수치료를 건강보험 틀 안에 부분 편입하면서 가격과 진료량을 동시에 관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환자와 보험업계에는 부담 경감 효과가 기대되지만, 도수치료를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온 정형외과·재활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 등 개원가를 중심으로 필수의료 인력 이탈 심화와 진료 포기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치가 비급여 통제 강화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9일 열린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 회의에서 도수치료, 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 방사선 온열치료 3개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했다. 체외충격파, 언어치료 등 나머지 항목은 추가 논의를 거쳐 순차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관리급여는 의료적 필요도는 있으나 과잉 진료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예비급여 형태로 지정해 가격과 진료량을 국가가 관리하는 제도로, 건강보험 재정과 실손보험 재정 누수를 동시에 줄이겠다는 정책적 장치로 설계돼 있다.

도수치료는 현재 비급여 진료비와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규모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료기관 도수치료 연간 진료비는 1조4496억 원 수준이다. 전국 평균 가격은 회당 11만3296원으로 나타나지만, 최고 60만 원부터 최저 300원에 이르기까지 의료기관마다 가격 편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져 있어 가격의 합리성과 의료자원 배분의 왜곡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정부가 도수치료를 우선 관리급여 대상으로 올린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과잉 공급 구조와 실손보험 재정 악화가 맞물려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현재 환자가 100 퍼센트를 부담하던 도수치료 비용 가운데 5 퍼센트를 건강보험이 부담하게 된다. 환자 본인부담률은 95 퍼센트로 낮아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에서 도수치료 비용이 10만 원으로 책정될 경우, 환자는 9만5000원을 부담하고 건강보험에서 5000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겉으로만 보면 환자 체감 부담 변화 폭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복지부는 급여가 개입하는 순간 건강보험 수가 기준이 형성되고 이를 기준으로 시장 가격이 재조정되기 때문에 전체 평균 가격은 내려가고 과도한 고가 책정은 차단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손보험 측면에서도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도수치료는 비급여 상태에서 실손보험 청구 1순위 항목으로 자리 잡으며 보험사 재무건전성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혀 왔다. 급여 가격이 설정돼 상한선이 정해지고 진료량도 관리되면, 실손보험사가 보상해야 하는 금액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복지부는 이 과정을 통해 국민의 직접 의료비 부담과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 압력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권병기 필수의료지원관은 관리급여 도입 배경에 대해 일부 비급여 항목에서 나타난 과잉 진료와 지나친 가격 차이를 해소하고, 수익성이 높은 비필수 의료 영역으로 의료 인력이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는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가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과 급여 기준을 설정하겠다고 강조하며, 의료계와의 협의를 통해 제도 설계의 세부안을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의료계는 생존권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특히 도수치료를 비급여 수익원으로 삼아 낮은 기본 수가체계를 보완해 왔던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개원의들은 관리급여 지정으로 수가가 과도하게 낮아질 경우 도수치료를 계속 제공할수록 손실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필수의료 분야는 인력 부족과 낮은 수가로 이탈이 반복되고 있는데, 그나마 수익성이 있던 비급여 도수치료에까지 공적 가격 규제를 씌우면 개원가 경영 악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한의사협회는 비급여 항목을 곧바로 관리급여로 편입하기보다는 비급여 체계 내에서 적정 관리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도수치료와 같은 항목이 관리급여로 진입하려면 치료의 필수성, 효과성, 건보 재정 소요 등 핵심 요소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비지정 절차를 통해 문제 발생을 최소화하고, 검증된 항목만 단계적으로 급여권으로 편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도수치료의 특성상 환자 상태에 따라 고도의 맞춤형 시술 설계와 충분한 의료진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면 의료기관들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도수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경우 장기간 통증, 근골격계 기능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고, 대체 치료를 찾지 못한 환자들이 질 낮은 비의료 서비스나 미검증 시술로 몰리는 부작용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의사협회는 정부와의 강경한 대치도 예고했다. 김성근 대변인은 부당한 관리급여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유관단체와 연계한 토론회, 헌법소원,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까지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관리급여 지정이 단일 항목이 아닌 비급여 전반에 대한 통제 강화 신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료계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 설계 차원에서는 관리급여 수가 수준과 진입·퇴출 기준이 관건이다. 수가가 과도하게 낮으면 의료기관의 참여 유인이 떨어져 실질적인 제도 효과가 반감될 수 있고, 반대로 높게 책정되면 실손보험과 건강보험 재정 절감이라는 당초 정책 목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관리급여 대상이 확장될수록 비급여 영역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향후 미용·웰니스와 같은 선택적 서비스와 통증완화·기능회복처럼 의료적 필요성이 섞인 영역 사이 경계 설정도 정책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국제적으로도 물리치료와 도수치료 성격의 시술은 대부분 공보험 체계 안에서 일정 부분 급여로 다뤄지지만, 횟수 제한이나 사전 심사, 의학적 필요성 기준 등 강한 이용 관리 장치가 함께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이번 조치를 계기로 도수치료를 공적 급여 체계 안에 편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만큼, 향후 진료 적정성 평가, 임상 근거 축적, 데이터 기반 통제 수단이 어떻게 마련되느냐에 따라 제도 안착 여부가 갈릴 수 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15일 저녁 의협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도수치료 등 관리급여 지정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산업계와 의료계, 보험업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만큼, 도수치료 관리급여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의료계와 정부가 수가 수준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에 따라 비급여 구조 개편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 정책 효과와 현장 수용성 사이 균형점 찾기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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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도수치료#대한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