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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규제론 재점화”…여야 공방, AI시대 미디어정책 시험대

강태호 기자
입력

가짜뉴스 논쟁이 정치권의 공방을 넘어 디지털 미디어 정책과 AI 기반 정보 검증 체계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여야 인사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중심으로 계엄 관련 책임 공방과 인신공격성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정치적 메시지가 어떻게 증폭·왜곡되는지, 이를 기술과 제도로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부각되는 분위기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논쟁을 단순한 말싸움이 아닌, AI 추천 알고리즘과 자동 생성 콘텐츠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가짜뉴스’ 개념과 규제 범위를 재정의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치권의 최근 공방은 전통 언론보다 SNS와 유튜브 등 디지털 채널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발언 당사자의 설명이 덧붙기 전에 발췌·편집된 문장이 여러 계정을 거쳐 재유통되며, 원문의 의도와 사실관계가 뒤섞인 상태로 소비되는 전형적인 온라인 정보 왜곡 패턴이 반복된 셈이다. 특히 플랫폼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분노·흥분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적 콘텐츠에 더 높은 노출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어, 정치적 갈등 이슈는 짧은 시간 안에 여론을 양극화시키는 방향으로 증폭되기 쉽다.

주목할 대목은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사실 검증을 넘어 정치적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정치인 발언을 둘러싼 법적·헌법적 해석은 충분히 이견이 가능한 영역인데, 이를 ‘사실이 아니다’라는 단일 잣대로 규정할 경우 비판적 표현 자체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반대로, 검증 가능한 판결문·공식 기록과 명백히 배치되는 서술이 확산될 때는 공적 신뢰를 훼손하는 정보 오염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허위’와 ‘과장·해석’을 구분할지에 대한 제도 설계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IT·미디어 업계에서는 기술적 대안 논의도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대형 플랫폼과 포털은 이미 선거·방역·전쟁 관련 허위 정보를 대상으로 AI 기반 콘텐츠 검출 모델과 팩트체크 제휴 체계를 운영해 왔다. 텍스트·이미지·영상에서 특정 키워드와 패턴을 추출해 ‘고위험 정보’로 분류하고, 제3의 검증 기관에 우선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치적 해석이 개입된 표현과 단순 사실오류를 기계적으로 구별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알고리즘 설계자의 가치관이 모델 성능에 반영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내 규제 환경은 아직 ‘가짜뉴스’ 자체를 직접 규율하기보다, 정보통신망법과 선거법, 명예훼손·허위사실 유포 조항 등을 통해 사후적으로 다루는 구조에 가깝다. 과학기술·방송통신 정책 부처는 AI 추천 시스템 투명성, 디지털 플랫폼 책임 범위, 뉴스 제휴 평가 기준 등 주변 제도부터 손보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이 AI법과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고위험 알고리즘과 플랫폼에 설명의무·리스크 평가를 요구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 구체적인 기술 규율보다는 자율규제와 가이드라인 중심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서로를 향해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는 상황에서, 기술과 제도가 정파적 도구로 오용되지 않게 하는 장치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오픈팩트체크 플랫폼,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최종 검증하는 하이브리드 검증 체계, 판결문·국회 회의록·정부 통계와의 자동 대조 시스템 등은 비교적 합의 가능한 인프라로 거론된다. 다만 어떤 기관이 검증의 최종 권한을 갖는지,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기술만으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결국 정치권의 발언 공방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이를 둘러싼 디지털 정보 환경은 기술과 제도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 AI와 알고리즘이 정보 생산과 유통을 뒷받침하는 시대에는 표현의 자유와 허위정보 규율, 플랫폼 책임과 이용자 자율성 사이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일이 새로운 성장과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는 향후 미디어·AI 규제 논의가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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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ai콘텐츠검증#디지털미디어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