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암호망 250㎞ 구축…과기정통부, 개방형 테스트베드로 상용화 가속
양자암호통신 기술이 국가 기간망과 미래 보안 인프라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로 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연구실 단계를 넘어 산업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개방형 테스트베드를 공식 개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과 판교, 대전을 잇는 250킬로미터 규모의 양자암호통신망과 측정·시험 장비를 연계한 상용화 지원 플랫폼을 마련해, 국내 장비·통신·보안 기업에 실증과 인증, 보안 컨설팅까지 제공하는 구조를 갖췄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양자 보안 시장의 조기 형성과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의 국내 입지 강화 여부를 가를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함께 경기 판교 양자산업생태계지원센터에서 개방형 양자 테스트베드 개통식을 열었다. 개방형 양자 테스트베드는 양자 과학기술 및 양자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14조에 근거해 구축된 국가 차원의 상용화 지원 인프라다. 양자통신 장비와 서비스를 실제 통신망 환경에서 시험하고 성능과 보안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정부는 양자 테스트베드 조성사업을 통해 지난해부터 서울과 판교, 대전을 연결하는 약 250킬로미터 길이의 양자암호통신망을 단계적으로 깔았다. 여기에 시험성적서 발급이 가능한 측정 장비와 보안 성능 분석 환경을 함께 구축해, 장비 제조사와 통신사업자, 보안기업이 현장 수준의 품질 시험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양자키분배와 양자키관리, 양자암호화 장비 등 각 요소기술을 개별 또는 통합 구성으로 실증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개통식에는 테스트베드 거점기관인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등 연구·표준 기관과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 관련 기업을 포함해 산학연 관계자 70여명이 참석했다. 양자암호통신장비 1호 인증서 수여, 거점기관 간 테스트베드 협력 업무협약 체결, 전시부스 관람과 장비 시연, 양자기술 기업간담회가 연이어 진행되며 테스트베드 활용 방향을 공유했다.
과기정통부는 먼저 양자암호통신장비 3종에 대해 국가정보원의 보안기능시험제도에 따른 보안기능확인서를 취득한 기업에 양자암호통신장비 1호 인증서를 수여했다. 장비 유형별로는 양자키관리장비 부문에서 드림시큐리티, 양자통신암호화장비 부문에서 코위버, 양자키분배장치 부문에서 아이디퀀티크가 각각 인증을 받았다. 양자키관리장비는 생성된 양자 암호키를 저장·분배·수명 관리하는 장비로, 기존 키관리 시스템보다 도청과 위변조에 강한 구조를 지향한다. 양자키분배장치는 광자를 이용해 암호키를 물리적으로 분배하는 핵심 장치로, 도청 시 신호 교란이 즉시 탐지된다는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전시 부스에서는 테스트베드 구축기업들이 양자암호통신 장비 실물을 전시하고, 실제 통신구간에 양자암호를 적용한 뒤 모의 해킹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탐지·차단 성능을 시연했다. 또 자율주행 버스와 드론을 연계한 양자보안 모빌리티 서비스도 선보였다. 차량과 관제센터 간 통신을 양자암호 기반으로 보호하고, 드론 제어 신호를 양자키로 암호화해 해킹 위험을 줄이는 시나리오다. 이는 자율주행·스마트시티·UAM 등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에 양자보안을 접목하는 실증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
기업간담회에서는 제조사의 양자암호통신 장비 소형화와 집적화 동향, 양자 테스트베드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 지원 방식, 양자암호통신 서비스의 전국 확대와 공공·금융·국방 분야 실증 방안 등이 논의됐다. 특히 현재는 서울·판교·대전 구간에 한정된 양자암호통신망을 향후 주요 거점 도시와 국가기간통신망으로 확장하기 위한 단계적 로드맵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 국가 주도의 양자통신망 구축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은 양자 인터넷 로드맵을 통해 국가 연구망 중심의 실증을 진행 중이고, 유럽은 다국가를 잇는 양자통신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장거리 양자통신망과 위성을 활용한 양자키분배 실험으로 기술력을 과시해 왔다. 한국의 개방형 테스트베드는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이 기술 성숙도와 상용 서비스 모델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진기지 역할을 목표로 한다.
이번 테스트베드는 양자 과학기술 및 양자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양자암호 장비 인증체계, 시험성적서 기반 조달·도입 기준, 양자키분배 데이터 처리 기준 등 세부 규범과 표준이 테스트베드를 중심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데이터 보안과 통신망 안정성, 국가보안과 직결되는 기술인 만큼, 정부와 정보보안기관, 통신사, 장비업체 간 협력 체계가 제도 설계와 실증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개통이 국내 양자기술의 상용화와 산업 생태계 조성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며, 정부가 양자 테스트베드를 고도화해 양자암호통신을 포함한 양자기술 전반의 산업화를 위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테스트베드가 향후 전국 규모 양자암호통신망과 연계되고, 공공·민간 서비스에 실제 적용되는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시장, 제도가 맞물려야 양자 보안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