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 목숨"…GOP 가혹행위가 남긴 군 사망사고의 상처
군 사망사고를 둘러싼 유가족의 절규와 국방부의 책임 공방이 다시 떠올랐다. 육군 일반전초 GOP 부대에서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상현 이병의 사망 사건을 두고 병영 부조리 근절 대책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김상현 이병 부친 김기철 씨와 모친 나미경 씨는 사망 3주기를 맞은 11월 28일, 강원도 육군 12사단 33소초 GOP 인근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 섰다. 추모비에는 존중·배려 기원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김 씨 부부는 "정신교육보다 현실교육이 중요하다"며 새로 들어오는 신병들이 추모비를 직접 보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 이병은 2022년 9월 5일 입대해 같은 해 10월 27일 육군 12사단 33소초 GOP 부대에 전입했다. 그러나 전입 한 달여 만인 11월 28일, 당시 소지하고 있던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섯 살 때부터 중국에서 생활해 한국보다 외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던 그는 한국어가 어눌했고, 이 점이 오히려 조롱과 놀림의 빌미가 됐다.
부친 김기철 씨는 과거 아들이 GOP 지원 사실을 말했을 때 말렸다며 "왜 힘든 곳을 일부러 찾아가느냐고 화를 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김 이병은 "외국에서 너무 인생을 쉽게 산 것 같다, 군 생활을 빡세게 해보고 사회에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 씨는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상현이는 믿지 않았다"며 "군에서 부조리를 겪으며 내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혼란 속에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말했다.
사건 당일 상황도 유족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 있다. 당시 최고 선임병이던 상황병 김모 씨는 11월 28일 오후 8시 7분께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김 이병에게 전화를 걸어 수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김 씨는 "막사 와서 이야기하자, 할 말을 생각해와라, 죄송합니다 하면 각오해라"라고 말하며 협박했다. 당시 김 이병은 북쪽 경계를 맡고 있었고, 남쪽 경계를 담당한 선임병이 용변을 보러 간 사이 수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책임은 오롯이 김 이병에게 돌아갔다.
전화 통화 후 약 40분 뒤 김 이병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군 수사 과정에서 부대 내 괴롭힘이 구조적으로 누적돼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분대장을 맡았던 하사 민모 씨는 김 이병의 말투를 따라 하며 반복적으로 모욕했고, 선임병 송모 씨는 GOP 근무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질책과 괴롭힘을 이어갔다.
부대에는 33소초의 이름을 딴 33노트라는 문건이 있어 GOP 경계 작전, 주야간 작전 현황 보고, 근무, 상황 조치 등이 정리돼 있었다. 그러나 김 이병은 이 내용을 모두 암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밤늦게까지 암기를 강요받았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경계 태세가 격상된 시기였던 탓에 충분한 신병 교육 없이 곧바로 GOP 경계근무에 투입됐다는 점에서, 복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요구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 이병은 또 다른 선임병의 지시로 근무 중 실수를 실수 노트에 적어 매번 검사받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며 "똑같은 거 쓰면 너 진짜 죽어"라는 협박까지 들은 사실도 조사에서 확인됐다. 유족은 이러한 가혹행위가 누적돼 아들을 압박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검찰은 초병협박, 모욕, 강요, 협박 혐의를 적용해 간부와 선임병들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선임병 김 씨에게 징역 6개월을, 분대장 민 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선임병 송 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고, 올해 10월 이들에 대한 판결이 확정됐다. 유족은 형량이 가혹행위의 심각성에 비해 가볍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법적 책임 추궁과 별개로, 순직 인정 절차도 지연됐다. 김 이병은 사망 후 2년이 지난 올해 2월에야 순직 인정을 받았다. 유가족의 거듭된 민원 제기와 문제 제기 끝에 지난 10월 28일, 김 이병이 숨을 거둔 GOP 인근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냉동 상태로 보관돼 있던 유해는 추모비 건립 이후 영결식을 통해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유족에게 가장 버거웠던 시점은 가해자들의 첫 재판이었다. 김기철 씨는 "가해자들이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면 받아줘야 하나 가장 고민스러웠다"며 "현실은 정반대였고, 재판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일상도 크게 무너졌다. 김 씨는 TV에 군인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길에서 군인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말한다. 어머니 나미경 씨는 아침마다 "우리 엄마 잘 잤어"라며 안아주던 아들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아 고통이 이어진다고 했다. 두 사람은 신경 안정제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으며, 다른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도 비슷한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김 씨는 혹시라도 잠결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집을 1층으로 옮겼다며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김 씨는 병영 부조리와 관련해 국방부의 책임을 짚었다. 그는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게 사람 목숨"이라고 강조하며 "기본 매뉴얼 교육을 충분히 시킨 뒤 현장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인원이 부족해서 관리가 어렵다, 훈련 중이라 바빴다 같은 핑계를 대지 말고 국방부에서 병영 부조리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징집 제도의 근본 취지를 언급하며 "징집할 때 손·발가락 10개가 멀쩡하게 붙어 있었으면 그 상태 그대로 제대시키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은 김 이병의 추모비를 통해 신병들이 병영 내 인권 문제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국방부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여러 대책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해 왔지만, 유사 사고가 반복되는 점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군 인권보호관 제도 강화, 초급 간부 인권 교육, GOP와 같은 격오지 부대에 대한 인력·예산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치권에서도 군 사망사고대책 관련 입법과 제도 개선 요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향후 병영 내 괴롭힘 방지와 신병 교육 강화 방안을 중심으로 추가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가 병영 부조리 근절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군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는 관건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