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품질관리 과립"…KBSI, 세포 내 새 소기관 규명으로 당뇨 연구 촉진
단백질 상 분리 현상이 인슐린 생산을 좌우하는 세포 내 품질관리 장치로 작동한다는 정교한 기전이 제시됐다. 한국 연구진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인슐린 전구체인 프로인슐린의 올바른 접힘을 책임지는 새로운 형태의 세포 내 소기관을 찾아낸 것이다. 인슐린 생산 공장의 핵심 공정이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관리되는지 구체적인 원리가 드러나면서, 당뇨병을 비롯한 단백질 응집 관련 질환 연구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첨단바이오의약연구부 이영호 박사 연구팀은 일본 도호쿠대학교, 도쿠시마대학교,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와 함께 단백질 이황화결합 형성을 돕는 효소 PDIA6가 세포 내 칼슘 이온 농도 변화에 의해 액액상분리 현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 11일 자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PDIA6는 소포체에서 단백질 이황화결합을 촉진하는 단백질 이황화 이성질화 효소로, 그동안 개별 분자로서 샤페론처럼 다른 단백질의 접힘을 보조하는 조력자 정도로 이해돼 왔다. 연구팀은 세포 내 칼슘 농도와 정전기적 상호작용이 PDIA6 분자들을 서로 끌어당겨 응집체를 형성하게 만들고, 이 과정에서 액체와 액체가 분리되듯 특정 농축 구역이 생기는 액액상분리가 일어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액액상분리는 단백질이나 RNA 같은 생체분자가 세포 안에서 균일하게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농도가 높은 영역과 낮은 영역으로 자발적으로 나뉘는 현상이다.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고 각각의 방울을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세포 안에서는 모두 액체 상태에서 미세한 구획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상분리로 생긴 응축체는 세포 기능을 조절하거나 질환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팀은 PDIA6가 상분리를 통해 만드는 응축체가 단순한 덩어리가 아니라, 프로인슐린을 위한 전용 품질관리 공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췌장 베타세포에서 생성되는 프로인슐린은 정확한 3차원 구조로 접힌 뒤 여러 효소 절단 과정을 거쳐야만 기능성 인슐린으로 전환된다. 이때 이황화결합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프로인슐린이 잘못 접히거나 응집해 분비가 저해되고 세포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연구진은 PDIA6 응축체 내부에서 프로인슐린의 비정상적인 응집이 억제되며, 동시에 이황화결합 형성과 산화적 접힘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즉, PDIA6 상분리로 형성된 자가집합체가 프로인슐린만을 골라 품질을 관리하는 품질관리 과립처럼 작동해 인슐린 단백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정밀 제어 장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소포체가 단일하고 균질한 공간이라는 기존 교과서적 인식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PDIA6 액액상분리 현상이 소포체 내부에서 국소적인 미세 구획을 형성하고, 이 구획이 단백질 생산과 품질관리의 전담 구역으로 기능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 구조를 단백질 품질관리 과립으로 명명하고, 소포체 내 기능적 분업을 설명하는 핵심 모듈로 제안했다.
이번 연구가 갖는 산업적 의미도 작지 않다. 항체의약품과 호르몬 제제 등 단백질 기반 바이오의약품 개발에서는 생산세포 안에서의 접힘 효율과 품질관리가 수율과 안전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PDIA6를 중심으로 한 상분리 조절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세포주 개발 단계에서 품질관리 과립 형성을 강화하거나 인위적으로 제어해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 설계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인슐린 및 유사 단백질 치료제 공정 최적화 연구에도 직접적인 참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단백질 응집이 주요 병인으로 지목되는 다양한 퇴행성 질환과 대사질환 분야에서도 새로운 치료 타깃이 부상할 여지가 있다. 잘못 접힌 단백질과 응집체는 소포체 스트레스와 세포 사멸을 촉발해 당뇨병, 비알코올성 지방간,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환과 연관돼 있다. 연구팀은 PDIA6 상분리 조절을 통해 비정상 응집을 억제하는 약물이나 세포 내 미세 구획을 재조정하는 치료 전략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액액상분리를 새로운 세포 내 조직 원리로 보는 연구가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 연구진은 신경세포 내 RNA 결합 단백질 응축체, 핵 안의 전사 공장 형태의 상분리 구조 등 다양한 사례를 보고해 왔다. 이번 KBSI 주도의 연구는 이 흐름 속에서 내분비 호르몬 생산 공정에 상분리 개념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부각된다. 특히 인슐린처럼 전 세계적 시장과 임상 수요가 큰 타깃과 직결된 기전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규제와 정책 측면에서는 단백질 상분리 메커니즘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본격화될 경우, 기존의 구조 기반 약물설계나 효소 저해제 중심 평가 틀을 넘어 상분리 조절 효과를 어떻게 비임상·임상에서 입증할지라는 새로운 과제가 제기될 수 있다. 상분리 관련 바이오마커 확립, 세포내 미세 구획 변화에 대한 정량적 측정법 개발 등도 중장기적으로 규제 과학의 중요한 테마가 될 전망이다.
이영호 박사는 이번 성과에 대해 소포체 단백질 품질관리에서 칼슘 이온에 의해 유도되는 PDIA6 상분리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을 명확히 보여준 연구라고 설명하며, 여러 국가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 협력과 융합 연구가 정밀한 세포 기전 규명에 필수적인 접근임을 강조했다.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품질관리 과립 개념이 향후 당뇨병과 단백질 응집 질환 분야 연구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