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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비디아 대안 노린다”…리벨리온, 5년 내 GPU 패권에 도전장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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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해온 데이터센터용 AI 인프라 시장에 정면 도전장을 던졌다. 설립 5주년을 맞은 리벨리온은 지난 5년을 차세대 신경망처리장치 파트너를 고르는 ‘예선전’으로 규정하며, 향후 5년 안에 글로벌 무대에서 엔비디아와 같은 링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업계에서는 AI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수익 구조가 이동하는 시점에 한국 토종 NPU 기업이 선점 효과를 노리고 나섰다는 점에서 글로벌 AI 반도체 패권 구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벨리온은 16일 경기 성남시 정자동 사무실에서 설립 5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5년 청사진을 제시했다. 박성현 대표는 지난 5년을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이 차세대 NPU 파트너를 가늠하던 시기라고 규정하며 리벨리온이 그 과정에서 선택받은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리벨리온의 한 걸음 전진이 곧 대한민국 딥테크 생태계의 전진이라고 언급하며 기업 비전을 한국형 AI 반도체 허브로 확장해 해석했다.

리벨리온의 첫 성과는 1세대 NPU 아톰의 양산과 상용화였다. 아톰은 국내 데이터센터에 처음 적용돼 대규모 AI 서비스를 실제로 돌린 국산 NPU로 평가받는다. 후속 제품인 아톰 맥스는 SK텔레콤의 AI 통화 녹음 요약 서비스 에이닷에 탑재돼 실제 트래픽을 처리하는 데 활용됐다. 스타트업 단계에서부터 데이터센터급 워크로드를 경험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함께 다듬어 온 점이 리벨리온의 기술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다.

 

지난해 단행한 SK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은 기술과 사업 양 측면에서 전환점이 됐다. 리벨리온은 사피온과의 통합을 통해 엔비디아 플래그십 GPU급 성능을 목표로 한 차세대 AI 칩 리벨쿼드를 선보였다. 리벨쿼드는 학습 중심의 GPU와 달리 대규모 추론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구조를 내세우며, 글로벌 기업과의 실증과 고객 확보를 이미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리벨리온은 약 2조 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국내 AI 반도체 분야 유니콘으로 자리 잡았다.

 

리벨리온이 내세우는 전략적 차별점은 설계 초기부터 학습이 아닌 추론에 초점을 맞춘 NPU 구조다. 대규모 언어모델과 생성형 AI 확산으로 학습 단계의 GPU 수요가 폭발했지만, 기업 입장에서 실제 수익은 사용자 요청을 실시간 처리하는 추론 단계에서 발생한다. 추론은 지연 시간과 전력 효율이 핵심 성능 지표로, 동일한 처리량에서 전력 소모와 총소유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리벨리온은 이 지점을 공략해 GPU 대비 전력 효율이 높은 추론용 칩과 소프트웨어 스택을 묶어 데이터센터, 통신사, 클라우드 사업자를 주요 고객군으로 삼고 있다.

 

마샬 초이 최고사업책임자는 미국, 일본, 중동, 동남아 등 주요 지역 정부와 기업들이 AI 인프라 공급망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글로벌 수요가 빠르게 커지는 상황에서 리벨리온이 기술력과 제품 완성도를 모두 갖춘 ‘비엔비디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1세대 AI 칩 기업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관찰하며 설계 전략을 수정한 2세대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개발 타이밍과 제품 완성도 측면의 우위를 자평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비엔비디아 진영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돼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GPU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을 겪으면서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자사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전용 가속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GPU 수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자체 AI 칩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과 중동은 국가 차원의 소버린 AI 전략을 내세워 특정 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리벨리온은 이런 흐름 속에서 추론 중심 NPU로 글로벌 실증을 빠르게 쌓아 ‘엔비디아 외 대안 1순위’ 자리를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투자 측면에서도 글로벌 빅테크와 전략적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리벨리온은 암, 킨드레드 벤처스를 포함한 글로벌 투자자와 카카오벤처스, KT 등 국내 통신·반도체 설계 및 제조 기업들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에는 암, 레드햇, 사우디 아람코 등 해외 투자자와 시리즈 C 라운드를 진행하며 단순 재무투자를 넘어 실제 제품 적용과 클라우드·데이터센터 협력으로 이어지는 형태의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 에이닷 통화 요약 서비스 적용 사례는 AI 칩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한 대표 레퍼런스로 활용되고 있다.

 

상장 전략도 구체화됐다. 리벨리온은 지난해 7월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본격적인 기업공개 준비에 돌입했다. 내년 IPO 청구를 목표로 지정감사를 2년 연속 진행 중이며, 코스닥과 나스닥 동시 상장 구상도 열어두고 있다. 다만 우선순위는 한국 시장에 두겠다고 밝혀, 국내 자본시장 안에서 기술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먼저 굳힌 뒤 해외 확장을 모색하는 단계적 전략을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AI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설계 역량뿐 아니라 제조 파운드리, 패키징,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내 반도체 밸리와 글로벌 파운드리 네트워크는 리벨리온의 성장 변수다. 리벨리온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 및 소버린 AI 펀드와 협력하며 아람코 데이터센터 등 국내외 인프라에서 실증과 상용화를 확대하고 있다. 차세대 공정 도입과 패키징 최적화를 위해 파운드리와의 협력 폭을 넓히는 한편,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와 호환성 확보를 위한 생태계 파트너도 늘리는 전략을 병행 중이다.

 

정책·규제 환경 역시 향후 성장 속도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국과 유럽은 첨단 AI 칩 수출을 둘러싼 규제와 보조금 정책을 병행하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시스템 반도체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설계 기업 지원과 팹리스·파운드리 협업 생태계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AI 칩은 인공지능 서비스와 직결되는 만큼 데이터 보호, 알고리즘 책임, 에너지 효율 기준 등 다양한 규제 논의와 함께 가야 하는 영역이다. 리벨리온 같은 신생 NPU 기업이 글로벌 데이터센터와 통신사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면 각국의 보안·인증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필수 전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현 대표는 리벨리온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 엔비디아를 지목하며, 당장은 격차가 크더라도 5년, 10년 뒤에는 같은 링에 올라가 마켓셰어를 일부 가져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이 전망하는 향후 5년은 비엔비디아 중심의 새로운 AI 인프라 체계가 형성되는 시기다. 엔비디아 독점 구조가 유지되기 어려워진다는 전제 아래, 추론 중심 NPU를 앞세운 한국 기업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반도체 업계에서는 향후 몇 년간 비엔비디아 진영을 둘러싼 기술 경쟁과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드웨어 성능과 전력 효율, 소프트웨어 생태계, 규제 적합성까지 복합적인 조건을 충족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산업계는 리벨리온이 제시한 ‘5년 내 엔비디아와 같은 링’ 구상이 실제 시장에서 어느 정도 실현될지, 그리고 한국 AI 반도체 생태계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인프라, 자본과 제도가 맞물려야만 엔비디아 중심의 질서를 흔드는 두 번째 선택지가 등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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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엔비디아#ai반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