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안 된다”…쿠팡 로저스 대표, 국회 청문회서 고성 공방
정책 책임 공방과 증인 태도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국회를 뒤흔들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 문제를 둘러싼 진상 규명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와 청문위원들이 통역 방식, 답변 태도, 책임 소재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대표는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했다. 지난 17일 1차 청문회에서 동문서답과 오역 논란이 거세게 불거진 뒤 열린 자리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당초 국회는 같은 논란을 막기 위해 동시통역을 준비했지만, 로저스 대표는 자신이 대동한 통역사를 고집했다. 청문회 개의 직후 최민희 위원장이 동시통역기 사용을 거듭 요구하자 로저스 대표는 “통역사의 대동을 허락받았다”, “제 통역사를 사용하고 싶다”고 맞섰다. 이어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제기하고 싶다”고까지 말해 청문회장은 시작부터 긴장감이 높아졌다.
최 위원장은 쿠팡 측 통역을 상대로 지난 청문회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는 “지난번에 중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주는 이자에 대한 질문 있었다. 로저스 대표가 ‘로이스트 레이트’라고 했는데 그때 의원들에게 어떻게 통역했느냐”고 물었다. 통역이 “낮은 편에 속한다”고 답하자, 최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했다. 그렇게 통역하면 안 된다. 그렇게 윤색해서 통역하시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청문회 중반에는 오역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로저스 대표가 쿠팡 내부 조사 지시자를 묻는 질문에 “정부 기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답변을 되풀이하자, 최 위원장은 “오역이 되는 것 같다”며 통역사에게 자신의 발언을 단어 단위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날 청문회에는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대표 등 핵심 인사 세 명이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모든 질의 공세는 로저스 대표에게 집중됐다. 의원들은 개인정보 유출 의혹, 쿠팡 물류센터와 배송기사의 과로사 의혹, 불공정 거래 문제를 잇달아 제기했다.
로저스 대표는 제주 새벽 배송 도중 사고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 고 오승용 씨와 관련한 질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유족에게 사과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산업재해 인정 여부와 보상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가족 대표자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만 반복했다. 여야 의원들이 구체적인 조치와 시점을 따져 물었지만,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고 장덕준 씨 과로사에 관한 노동 강도 축소 지시 의혹에서도 태도는 비슷했다. 청문위원들이 김범석 의장이 노동 강도를 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문서와 자료를 차례로 제시하자, 로저스 대표는 “이 문서들의 진위가 확인된 바 없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김범석 의장 책임을 둘러싼 공방도 거셌다.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김범석 의장이 사태에 책임이 있나”라고 묻자, 로저스 대표는 김 의장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저는 쿠팡의 한국 대표로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만 말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위를 모르면 당사자인 김범석에게 물어봐야지, 왜 묻지 않나. 김범석이 신인가. 김범석이 이랬을 리 없다고 그냥 믿는 거다. 신앙의 영역”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쿠팡 측 또 다른 증인인 박대준 대표가 관련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자, 최 위원장은 “책임 있는 자리가 기억이 안 난다고만 할 일인가”라고 질타했다.
개인정보 유출 조사 과정에서 김범석 의장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도 답변은 모호했다. 로저스 대표는 “쿠팡의 자체 조사는 없었다. 정부의 지시에 따라 했던 조사다. 왜 이 점을 부인하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김 의장의 역할 언급을 피했다. 의원들이 “내부 결정 구조와 보고 라인을 명확히 말하라”고 압박했지만, 그는 “정부 기관의 지시에 따라 조사했다”는 취지만 거듭 강조했다.
답변 태도와 언행을 둘러싼 충돌도 이어졌다. 최 위원장은 로저스 대표를 향해 “대화가 안 된다”,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범석 씨는 왜 한국말의 함의를 모르는 사람을 내세워서 이런 장난질을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문위원들이 ‘예, 아니요’식 단답형 답변을 요구하자 로저스 대표는 의원들의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이며 맞받아쳤다. 영문 사과문에 쓰인 ‘false’ 표현 관련 질의에서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저희가 정부에 협력하지 않고 있다는 허위 정보가 있다. 저희가 자의적으로 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격앙된 어투와 몸짓에 청문회장은 술렁였다.
정일영 의원이 “됐다. 그만하라”며 답변 중단을 요구하자, 로저스 대표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Enough”라고 응수했다. 이어 그는 정부기관으로부터 구체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한국 국민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을 원치 않나. 왜 이 정보를 한국 국민에게 감추고 있나. 이해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을 마친 뒤에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로저스 대표가 거듭 “정부 기관의 지시에 따랐다”고 주장하자 최 위원장은 “쿠팡이 대한민국 정부까지 끌어들여서 간 크게 진실게임으로 몰아가려는 돼먹지 않은 전략을 벌이고 있다”고 직격했다. 국회가 규명하려는 사안의 책임을 민간 기업이 국가기관으로 분산시키려 한다는 비판이다.
국회는 향후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불출석한 핵심 인사들에 대한 재소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여야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 문제 진상 규명을 둘러싸고 로저스 대표의 태도와 발언을 두고도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며,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관련 입법과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