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 계도 1년…정부, 규제·지원 병행 시동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제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첫 국가 차원의 법제화가 내년부터 본격 가동된다. 정부는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을 통해 그동안 권고와 가이드라인 중심으로 움직이던 정책을 법적 체계로 전환하고, 동시에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을 두어 산업 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고지 의무, 고영향 인공지능 사업자 책무 등 핵심 규범이 처음으로 명문화되면서, 규제와 지원이 맞물린 새로운 거버넌스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인공지능 산업 발전과 안전·신뢰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한 인공지능 기본법이 내년 1월 22일부터 시행된다. 법에는 인공지능 연구개발, 학습용 데이터 구축, 인공지능 도입 및 활용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등 국내 인공지능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 규정이 담겼다. 그동안 개별 사업이나 예산 사업 차원에서 이뤄지던 지원을 법률에 근거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동시에 인공지능 투명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무 조항도 포함됐다.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고영향 인공지능의 기준을 정하고, 관련 사업자의 책무를 규정하는 한편, 인공지능 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설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규범도 담겼다. 특히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자동 생성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이용자가 인공지능이 개입했는지를 사전에 알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한다는 점이 법 조항으로 명시됐다.
정부는 새로운 법 규범이 산업계에 급격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최소 1년 이상 과태료 계도기간을 운영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등 직접적인 제재보다, 안내와 점검을 통해 기업이 스스로 제도를 이해하고 이행 체계를 갖추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제품과 서비스의 안전성 및 신뢰성 검증과 인증에 필요한 비용을 할인 지원하고, 인공지능 영향평가 제도가 시장에 안착하도록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계도기간에는 인공지능 투명성과 안전성, 고영향 인공지능 기준 등 새로 도입되는 안전·신뢰 제도에 대해 기업별 맞춤 안내와 상담이 이뤄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소·스타트업을 포함한 다양한 규모의 인공지능 기업들이 법 시행 초기부터 과도한 규제 비용을 떠안지 않도록 하고, 제도 적응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과태료 유예가 단기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만, 향후 본격적인 집행 단계에 대비해 조기 내부 통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인공지능 기본법과 함께 디지털 플랫폼 관련 규제 환경도 손질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동안 일부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주요 부가통신서비스 사업자의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 시스템을 내년 2월 12일부터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도록 개선한다. 대상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를 지는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 쿠팡, 넷플릭스, 티빙, 콘텐츠웨이브, 애플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다.
개편된 제도 아래에서는 서비스 이용요금 부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이용자가 인공지능 기반 상담, 챗봇, 전화 자동응답 시스템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이용자가 원할 경우에는 상담원을 통한 실시간 상담도 필수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모든 요구사항은 원칙적으로 실시간 처리 대상이며, 실시간 처리가 어렵다면 접수일로부터 3영업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법령 해석 등 정당한 사유로 이 기간 내 처리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사유와 예상 처리 일정을 이용자에게 알려야 하고, 약속한 기한 내 답변을 완료해야 한다.
연구개발 생태계 정비를 위한 법제 통합도 병행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업부설연구소 제도를 단일 법률로 체계화한 기업부설연구소등의 연구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과 하위 법령을 2월 1일부터 시행한다. 지금까지 기업부설연구소 제도는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 등 여러 법령에 흩어져 운영되면서 규정 간 중복과 해석 혼선이 반복돼 왔다. 법조문과 행정 절차가 분산돼 기업이 연구소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참조해야 할 규정도 복잡했다.
새 법은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신고에서부터 변경 신고, 보완 명령, 인정 취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법 체계 안에서 규율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연구조직을 신설하거나 확대할 때 필요한 행정 절차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기업부설연구소와 연구개발전담부서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근거도 단일 법률에 포함돼, 향후 세제 혜택, 인력 지원, 인프라 연계 등 후속 지원 정책 설계에도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해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실제 연구개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 플랫폼 민원 대응 의무 강화, 기업부설연구소 제도 정비가 맞물리면서,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동시에 이용자 신뢰, 데이터 활용 안정성까지 고려한 복합적인 정책 패키지가 구축되는 모습이다.
국내외에서 인공지능 윤리와 데이터 보호, 알고리즘 책임성을 둘러싼 논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번 법 시행은 한국이 인공지능 산업 정책과 인공지능 규제 정책을 동시에 정비하는 첫 단계로 평가된다. 산업계는 새로운 규범이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느 수준에서 집행 강도가 조정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 경쟁과 더불어 제도 설계와 집행 역량까지 국가 경쟁력 변수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향후 성장 경로를 좌우하는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