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AI로 지능형 IPTV"…업계, 규제혁파 요구 거세져
생성형 AI와 메타버스가 미디어 소비 방식을 바꾸는 가운데 IPTV 업계가 규제 체계의 전면 재설계를 촉구하고 있다. 국내 유료방송 사업자는 콘텐츠 투자 여력과 플랫폼 경쟁력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와 격차를 보이고 있어, 산업성 중심의 규제 프레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구조적 쇠퇴가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정부도 인공지능 기반 방송 제작 기술과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제도 완화와 연구개발 확대를 예고해, AI·디지털 기술을 축으로 한 미디어 산업 재편이 분수령을 맞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IPTV방송협회는 1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25 IPTV의 날 행사를 열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대응을 위한 산업 전략과 규제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병석 한국IPTV방송협회장은 개회사에서 미디어 산업이 공적 책임을 지는 만큼 다양한 의무와 제약을 감수해 왔지만, 글로벌 OTT와 동일선상에서 묶이는 현행 규제 구조로는 경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료방송 사업자가 이미 망투자와 지역채널 운영, 공공 정보 제공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서비스 특성과 사회적 역할을 반영한 맞춤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협회장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 변수로 생성형 AI와 메타버스를 꼽았다. 대형 언어모델과 영상 합성 기술을 활용하면 시청자 취향 기반 맞춤 추천, 인터랙티브 광고, 가상 스튜디오 제작 등 새로운 경험을 구현할 수 있지만, 현재 규제 체계는 이 같은 실험을 뒷받침하기보다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IPTV와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전반이 생존을 넘어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차별화된 콘텐츠 발굴, 규제 혁파 수준의 제도 정비, 지속 가능한 투자 기반, AI 기반 지능형 미디어 플랫폼 전환이라는 네 가지 축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업계가 말하는 지능형 미디어 플랫폼은 단순 채널 전송에서 벗어나, AI로 시청 로그와 콘텐츠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편성 전략을 자동 최적화하고, 시청 중 맥락을 인식해 관련 VOD·광고를 실시간 제안하는 구조를 가리킨다. 또한 생성형 AI를 활용해 자막·더빙·하이라이트 클립을 자동 제작하고, 메타버스형 3차원 공간에서 실시간 생중계와 소셜 기능을 결합하는 등 전통적 방송 제작 방식을 디지털 네이티브 방식으로 재편하는 구상도 포함한다. 이런 서비스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알고리즘 고도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 활용 규제와 콘텐츠 의무편성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구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업계 요구에 일정 부분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도성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미디어진흥국장은 축사에서 대외 환경 변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를 언급하며, 기존 방송 규제를 완화하고 방송 미디어 분야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에 예산과 정책을 집중하고, 10대 AI·디지털 기술을 기획·제작·유통 전 과정에 적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AI 기반 자동 편집 시스템, 품질 저하 없는 초고속 압축 코덱, 실시간 시청 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업계는 규제 완화와 R&D 확대가 연계되지 않으면 글로벌 격차 해소가 어렵다고 본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플랫폼은 이미 추천 알고리즘과 A/B 테스트 체계를 통해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반면 국내 IPTV 사업자는 채널 및 콘텐츠 의무편성, 지역·장애인 대상 공익 채널 운영,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으로 민첩한 실험이 저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특히 글로벌 OTT는 국가별 세부 규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가격정책과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반면, 국내 플랫폼은 공과금·망비용·규제비용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행사에서는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현장 인력에 대한 포상도 진행됐다. 유료방송 산업 발전에 기여한 업계 관계자 6명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명의의 표창을 받았고, IPTV산업 유공자 7명은 한국IPTV방송협회장상을 수상했다. 네트워크 운영, 시청자 보호, 콘텐츠 공동 제작 등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수상자들은 규제 환경이 개선되면 실제 서비스 혁신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콘텐츠 경쟁력을 둘러싼 화두도 이어졌다. 한국IPTV방송대상에서는 드라마와 중소 방송채널 부문에서 각기 수상이 이뤄졌다. 연속극 부문에서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보물섬, 실시간 시청 대비 주문형비디오 이용 비율이 높은 언더커버 하이스쿨이 드라마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바둑TV, 뽀요TV, 하이라이트TV 등 중소 채널들이 별도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장르 특화 채널과 키즈·교육 채널이 여전히 IPTV 이용자의 충성도를 이끄는 핵심 자산임을 보여준다. 업계는 이런 장르 채널과의 상생 구조를 지능형 플랫폼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별 강연에 나선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사업본부장은 콘텐츠와 플랫폼 상생 방안을 찾아가는 11가지 키워드들을 제시하며, 국내 미디어 산업이 현재와 같은 구조를 유지할 경우 글로벌 플랫폼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AI 기반 시청 데이터 공유, 수익 배분 구조 개선, 중소 제작사 대상 기술 지원 등을 통해 IPTV와 콘텐츠 사업자가 공동으로 성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제작 초기 단계부터 시청 패턴 데이터를 활용해 기획·캐스팅·편성 전략을 세우는 데이터 공용 플랫폼이 없다면, 국내 제작사는 글로벌 OTT의 의사결정 체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규제 혁파와 AI 기술 도입이 동시에 추진될 경우 IPTV가 단순 유료방송에서 개인화된 미디어 허브로 재정의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공공성 약화와 데이터 독점 우려, 지역 채널 축소 문제 등도 제기되는 만큼, 정부와 업계, 시청자 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 구조가 필요해 보인다. 산업계는 지능형 IPTV 전환을 위한 제도 개편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고,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