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디 데뷔 첫 올해의 선수”…LCK, 데이터로 증명한 e스포츠 성장
데이터 기반 분석과 팬 참여를 결합한 e스포츠 리그 운영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LCK는 성적 중심의 전통적 시상 체계를 넘어, 세분화된 인게임 데이터와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어워드를 통해 리그 자체를 하나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2025 LCK 어워드가 향후 글로벌 e스포츠 산업에서 경기 데이터 표준화 경쟁을 촉발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리그 운영사 라이엇게임즈는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NM 센터에서 2025 LCK 어워드를 열고 KT 롤스터 미드 라이너 비디디 곽보성을 데뷔 이후 첫 올해의 선수 수상자로 발표했다. 곽보성은 올해의 선수상과 베스트 모먼트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올해의 선수상은 시즌 및 국제대회 전반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보인 선수에게 돌아가는 LCK 개인 부문 최고 권위 상으로, 그간 성과 중심 시상에서 상징성을 갖는 지표로 자리해 왔다.

곽보성은 수상 과정에서 한화생명 이스포츠 바텀 라이너 구마유시 이민형, T1 미드 라이너 페이커 이상혁, 젠지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 등 리그 최정상급 선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정규 시즌에서 단 1패만 기록한 젠지를 상대로 2025 LCK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3대 2 역전승을 이끌며 KT 롤스터의 월드 챔피언십 진출을 확정지은 장면이 높게 평가됐다. 이후 4강에서 다시 젠지를 격파해 팀 창단 첫 월드 챔피언십 결승 진출까지 견인하며 미드 라이너 포지션의 전략적 가치를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T1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을 벌이며 패배했지만, 고난도 라인전 지표와 주요 한타 기여도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다. 올해의 선수상 부상으로 1000만 원이 주어졌으며, 월드 챔피언십 진출 확정 직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팬덤 내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며 베스트 모먼트 상으로 연결돼 2관왕이 완성됐다. 정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를 평가하면서도, 정성적 팬 반응을 별도 시상에 반영한 구조다.
LCK는 신인 발굴과 장기적인 선수 육성 생태계를 고려해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루키 오브 더 이어를 운영 중이다. 올해는 BNK 피어엑스의 디아블 남대근이 선정됐다. 루키 오브 더 이어는 단순 KDA나 승률 외에도 데뷔 시즌 성장률, 팀 내 기여도, 메타 적응 속도 등 복합 지표가 반영되는 만큼, 데이터 기반 스카우팅 및 육성 시스템 고도화와 맞물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고의 팀 성과를 이끈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베스트 헤드 코치에는 젠지 김정수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팀 단위 성과에서는 정규 시즌 지표를 바탕으로 2025 올 LCK 퍼스트 팀 전 포지션이 젠지 선수들로 채워졌다. 정규 시즌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 POM 최다 선정자인 젠지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은 모스트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와 정규 라운드 MVP를 모두 수상했다. 정규 라운드 MVP 부상은 1000만 원, 모스트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 부상은 400만 원으로 책정됐다. POM은 경기 내 챔피언 선택, 주요 교전 기여도, 오브젝트 관여율 등 다수 데이터 지표를 합산해 산정되는 만큼, LCK 측은 이를 통해 미시적인 플레이 수준까지 기록하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운영할 수 있다.
포지션별 올해의 선수는 정규 시즌과 국제 대회 성과를 함께 반영해 선정됐다. 올해의 탑 선수는 젠지 기인 김기인, 올해의 정글 선수는 T1 오너 문현준, 올해의 미드 선수는 젠지 쵸비 정지훈, 올해의 바텀 선수는 한화생명 이스포츠 구마유시 이민형, 올해의 서포터 선수는 T1 케리아 류민석이 각각 수상했다. 탑과 정글은 라인 주도권과 오브젝트 컨트롤, 미드는 라인전 지표와 팀 파이트 영향력, 바텀과 서포터는 골드 수급 효율과 비전 컨트롤 등 포지션 특화 지표를 반영하는 구조다. 기존 단일 MVP 중심 구조보다 역할 기반 세분 평가가 가능해지며, 팀 편성 및 연봉 협상에서 활용 가능한 지표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LCK 후원사들이 직접 시상하는 특별상은 게임 내 여러 지표를 스포츠 비즈니스 상품으로 재가공한 사례다. 정규 시즌 주간 골드킹 최다 수상자인 KT 롤스터 바텀 라이너 에이밍 김하람은 우리WON뱅킹 골드킹 상을 받았다. 골드킹은 경기당 평균 골드 획득량, 라인전 CS 수급, 타워·오브젝트 관여 등을 합산한 수치로 산정된다. 젠지 바텀 라이너 룰러 박재혁은 KDA 부문 1위로 업비트 베스트 KDA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KDA는 킬과 어시스트 합을 데스로 나눈 수치로, 공격성과 생존 능력을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전자 스포츠 지표다.
KT 롤스터 정글러 커즈 문우찬은 드래곤 스틸 횟수 1위로 포스코 판타스틸 상을 받았다. 드래곤 스틸은 핵심 오브젝트를 상대 스킬 타이밍을 제치고 확보한 횟수로, 리스크 관리와 시야 장악을 포함한 고난도 의사결정 능력을 보여준다. BNK 피어엑스 랩터 전어진은 한 해 동안 퍼스트 블러드를 가장 많이 기록해 올해의 카스 퍼블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디플러스 기아 쇼메이커 허수는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챔피언을 기용한 선수로 LG 울트라기어 최다 챔피언 픽 플레이어 상을 받았는데, 챔피언 풀 다양성은 메타 변화 대응력을 보여주는 핵심 전략 지표로 활용된다.
솔로킬 최다 기록을 세운 디플러스 기아 탑 라이너 시우 전시우와 한화생명 이스포츠 탑 라이너 제우스 최우제는 모스트 솔로킬 상을 공동 수상했다. 솔로킬은 동일 라인 1대1 상황에서 상대를 처치한 횟수로, 개인 기량과 라인전 압박 능력을 상징한다. 부진을 극복하고 장기적인 재도약을 이룬 선수에게 주어지는 리라이즈 상은 젠지 서포터 듀로 주민규에게 돌아갔다. 모스트 솔로킬 상과 리라이즈 상은 각각 로지텍과 시크릿랩이 부상을 제공하며, 하드웨어 및 주변기기 업체가 e스포츠 경기 데이터를 브랜드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숏폼 영상 소비를 겨냥한 베스트 쇼츠 어워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 암베사 성대모사 영상으로 약 3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윤수빈 아나운서에게 돌아갔다. 짧은 시간 안에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콘텐츠를 별도 시상하는 구조는, 경기 데이터뿐 아니라 미디어 소비 지표까지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전략과 맞닿아 있다. 경쟁자·팬·동료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리는 올해 신설 스포츠맨십 상은 페이커 이상혁이 수상했다. 장기 경력 선수의 태도와 리더십을 계량화하기 어려운 비정량 지표로 인정해 별도 카테고리를 만든 셈이다.
곽보성은 기자회견에서 과거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나에 대한 믿음도 확신도 없이 지나간 시즌들이 많았지만 계속 노력하며 스스로를 믿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온다고 강조했다. 또 올해의 선수상을 개인 자격으로 수상했지만 내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늘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왔던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제로 느낀 한 해였다며 2025 시즌을 마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고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면서 내년에 대한 확신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선수 개인 심리와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메시지는 팬덤 결속과 리그 브랜드 강화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는 대목이다.
글로벌 e스포츠 산업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기반 경기 분석,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 선수 피로도와 집중도를 모니터링하는 바이오 센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북미와 유럽 리그는 경기당 수천 개의 이벤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중계, 팬 서비스, 스폰서십 패키지 설계에 활용하고 있다. LCK 역시 골드, KDA, 오브젝트 스틸, 솔로킬 등 핵심 지표를 시상 체계에 전면 배치하면서, 향후 머신러닝 기반 승부 예측 모델과 선수 가치 산정 알고리즘 개발의 기초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e스포츠 데이터 활용이 고도화될수록 선수의 생체 정보 도입, 개인 훈련 데이터의 상업적 활용 등 기술·윤리 논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AI 코칭 시스템이 전술 결정을 대신하는 수준으로 진화할 경우, 인간 코치와 선수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의할지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아직 e스포츠 데이터 활용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별도 법제는 부재하지만, 스포츠 진흥 정책과 개인정보 보호 규제가 교차하는 영역에서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25 LCK 어워드로 한 시즌을 마무리한 LCK는 오는 1월 9일 2026 시즌 오프닝을 시작할 예정이다. 경기 데이터와 팬 참여 지표를 동시에 확장하는 현 흐름이 이어질 경우, LCK가 단순한 국내 리그를 넘어 글로벌 e스포츠 데이터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